"상상할 수 없는 피해 온다" 기후위기시대 대한민국의 현실
[이준목 기자]
2023년 7월 15일, 충청북도 청주의 평범한 출근길에 뜻하지 않은 비극이 들이닥쳤다. 청주시 오송읍의 궁평2지하차도가 폭우로 인해 침수되어 무려 24명에 이르는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
자연재해라고 하지만 예상된 장마였고 큰 태풍이 온 것도 아니었다. 재난대비 시스템을 갖춘 현대의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다고 하기에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참사였다. 이미 지하차도 침수 몇 시간 전부터 홍수경보가 발령되고 주변 통제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있었음에도 당국의 부실한 대응이 피해를 키운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KBS1 <추적 60분> 한 장면. |
ⓒ KBS1 |
7월 21일 방송된 KBS1 <추적 60분>에서는 '긴급르포-극한호우, 대한민국을 삼키다'편을 통하여 기후위기와 대한민국 재난관리 시스템의 현 주소를 조명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벌어진후, 해당 버스에 탑승했던 희생자가 당시 내부를 촬영하여 자신의 친구들에게 보낸 동영상에는 사고 당시의 긴박한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또다른 희생자인 고 안선경씨는 가족들과 통화 중 "물이 들어오니까 창문을 깨고 나가라"는 버스 기사의 다급한 외침을 끝으로 통화가 끊겼다.
버스는 지하차도를 거의 벗어난 상태였지만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물살을 감당하지 못했다. 피해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생사의 갈림길로 내몰려야 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들은 백주대낮에 벌어진 사고에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며 여기저기서 통곡했다. 이 사고로 당시 버스에 탑승했던 10명중 기사를 포함한 9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 유족은 "통제만 했었다면,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안전 삼각뿔 몇 개만 세워놨었더라면 그런 사고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사고 이후 정부당국과 지자체의 책임소재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지난 16일 희생자 유족들은 충북도청 관계자와 면담에서 "이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라고 질타했다.
당일날 집중호우로 삽시간에 불어난 미호천 강물은 공사구간에 설치된 임시제방을 무너뜨리고 도로와 논을 넘어 직선거리로 수백미터 가량 떨어진 지하차도를 덮쳤다. 홍수통제소가 홍수경보를 알린 시간은 새벽 4시 10분, 사고가 벌어진 것은 아침 8시 40분이었다. 4시간이 넘는 골든타임동안 왜 사고를 막지 못한 것일까.
사고 당시 제방 둑 공사 현장을 살피던 세종이 행복도시건설청 공사 감리단장은 강물이 제방을 넘고 있다고 위급한 상황을 112에 신고했다. 통화녹취록에는 감리단장이 국도 아래를 가로지르는 궁평2지하차도가 잠길 수 있음을 직감하고, 주민대피와 차량 통제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정확히 전달했다. 궁평2지하차도까지 가장 가까운 파출소는 차로 5분 거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경찰은 마지막 신고가 있은 지 1시간이 넘어 지하차도가 완전히 물에 잠긴 뒤에야 뒤늦게 현장에 나타났다.
경찰은 다른 지하차도로 잘못 출동했다고 해명했지만, 이마저도 허위라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아무도 통제하지 않은 차도에 차량들이 계속 진입하는 가운데 강물은 빠르게 불어낳다. 높이 4.3미터, 길이 430미터의 지하차도 터널에 차량 17대가 고립되었고 시민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인 청주시와 충북도청, 임시 제방공사를 관할했던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 등은 저마다 서로를 탓하면서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에 바빴다. 그 사이에 피해를 입은 인근 마을 주민들은 속만 태우고 있었다.
오송 5구 침수 피해 주민 임준영씨는 구청 측에 피해 지원을 문의했으나 물품을 쓴뒤에 그만큼 구입해서 도로 반납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이없어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준영씨는 "삶의 터전이 사라졌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 피해받는 사람들은 알아서 복구해서 살아갈뿐, 바뀌지 않는다"며 씁쓸해했다.
우리의 평범한 이웃들이 일상의 공간에서 목숨을 잃는 동안, 국가와 지자체, 경찰과 소방의 재난 대응 공조 시스템은 무용지물로 드러났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음에도 반복되는 참사라는 점에서 일년 전 벌어졌던 이태원 참사의 데자뷔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장마기간(7월 9-19일)동안 전국 최고 강수량(누적 709mm)을 기록한 충남 청양군에서는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제방 붕괴로 축산 농가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충남 논산에서도 폭우로 축구장 1335개 규모의 농경지와 1523가구에 이은 농가들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전문가들은 제방이 붕괴된 것이 파이핑 현상(흙속에 물이 점점 스며들며 파이프 모양의 물길이 형성되는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방 유실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산 문제 등으로 인하여 제방 관리의 우선순위에서는 밀려나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물이 넘친 것은 제방만이 아니었다. 충북 괴산에서는 40년 만의 괴산댐 월류하며 하류지역 8개 마을이 피해를 입었다. 가장 피해가 심각했던 하문리는 급격히 불어난 물 때문에 주민들이 미처 물건을 챙길 시간도 없이 몸만 빠져나와서 대피해야 했다.
한수원 측은 괴산댐의 사전방류가 충분했냐는 제작진의 질의에 "메뉴얼대로 했지만 이례적으로 비가 너무 많이와서 막을 수 없었다"는 답변을 전했다. 그런데 애초에 피해를 막지 못하는 매뉴얼이라면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일까.
경북 예천에서는 다섯 마을에 걸쳐 산사태로 주민 1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호우경보가 내려진 예천군 백석리는 무너진 주택잔해와 토사가 뒤얽혀 거대한 펄밭으로 변해 버렸고, 구조대는 일일이 탐침봉으로 바닥을 찔러가며 실종자를 수색해야 했다. 또한 감천면 벌방리에서는 주택 80여채 중 열채 이상이 산사태로 매몰됐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주민들은 생사를 넘나들던 긴박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여기서 몇 세대를 살았는데도 이런 산사태는 처음이다" "전쟁터도 이런 전쟁터가 없다"면서 황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설상가상 사고 5일째에는 예천의 한 대피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까지 발생하며 가뜩이나 힘든 주민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극한호우'를 이번 사태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번 산사태에서 주목할 부분은 이번 호우피해 지역중 대부분이 본래 산림청이 관리하던 '산사태 취약 지역'에 해당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대부분이 해당 지역에서 오래 거주한 고령층임에도 이구동성으로 이런 산사태를 처음 경험해본다고 밝혔다.
이미 7월 초부터 계속된 비로 가뜩이나 약해진 지반이 단시간에 퍼부은 장대비로 무너져내린 것이 산사태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예측과 대비가 어려운 '이상 기후'는 미국, 인도 등 세계적으로도 사건사고가 속출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지구의 바다와 육지의 온도가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대기순환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비가 온후 바로 폭염, 다시 비가 내리는 식이다"라고 설명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20년에는 역대 최장기간인 무려 54일이나 장마가 계속되기도 했으며, 2022년에는 서울이 115년만의 폭우로 도심 한복판이 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올해부터 새롭게 도입한 극한호우라는 개념에 따르면, 1시간 누적 강수량 50mm, 3시간 누적 90mm 이상을 의미한다. 실제로 호우 피해의 80% 이상은 한꺼번에 비가 내리는 극한 조건에서 발생한다. 극한호우 개념을 도입하자마자 올해 벌써 한번 극한호우 경보가 내려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 나라의 도로와 시설들은 과거의 강수 기준으로 설계되었기에 극한호우 같은 새로운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가 취약하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대도시에서도 취약계층들이 주로 거주하는 반지하 건물 등은 침수에 취약한 실정이다. 2022년 관악구 일대 반지하 건물들에서 벌어진 침수사태 이후 지자체의 지원으로 침수방지 시설을 늘리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수동으로 관리해야하는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서울의 12만 가구 정도를 반지하 세대로 추정하고 있으며 약 20~25%에 이르는 2만 5천세대 정도가 침수에 영향을 받을수 있다고 분석하며 대비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 KBS1 <추적 60분> 한 장면. |
ⓒ KBS1 |
침수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2020년 부산 지하차도 침수참사로 3명, 2022년 포항 지하주차장 침수 참사로 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올해도 호우로 인한 인명피해를 막지 못했다. 그런데 희생자가 발생할 때마다 떠오르는 수사와 처벌 문제, 책임자를 찾아 죄를 추궁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재난 사고를 처리해온 익숙한 방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자연재해 담당은 고도의 전문성과 경험이 요구되는데 대부분 지자체의 재해담당 부서는 기피 1순위"라는 현실을 지적하며 "사고가 나면 책임을 물어야하는 상황이 담당자에게는 부담스러운 것"이라며 실무자에 대한 처벌만 남고 재난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과 대책은 외면하는 행태를 꼬집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역시 경찰 수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책임있는 관계자들은 재난 재발방지를 위한 역할과 고민보다는 눈앞의 수사 대처와 면피에만 급급하며 무책임한 이야기만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 2장에 따르면 공중이용시설에서 관리상 결함으로 사망자가 발생한다면 시민재해로서의 법적 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족들은 위험신호를 감지하고도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계당국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만약 이 법이 적용된다면 재난관리에 실패한 고위직 공무원과 최고책임자까지도 형사처벌하는 첫 사건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이제는 재난 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이정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선진국들은 재난에 있어서 사전 '예방'을 위한 비용이 많다면, 한국은 사후 '복구'에 더 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실정이다. 행정편의를 위하여 국토부, 산림청, 행안부 등으로 분리되어있는 재난 대책과 관리 시스템의 통합이 절실하다. "앞으로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피해가 올 수 있다. 이런 피해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하다"는 것이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금 내가 살아남은 것은 어쩌면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많은 인명피해를 발생한 대형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SNS에서 누리꾼들 사이에서 나오는 자조섞인 이야기다. 하루아침에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족들, 삶의 터전을 빼앗긴 피해 주민들은 지난 며칠이 무정부 상태같았다고 울분을 토한다. 수사와 처벌 보다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대책일 것이다. 제작진은 부디 정부가 작금의 기후 재난에 대하여 더 절박한 책임의식을 느낄 것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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