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어린이와 놀이공간] 아마존 열대우림은 알지만 움직이는 구름 본 기억은 “글쎄요”

문정임 2023. 7. 2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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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
제주남초등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맨발로 걷고 있다. 이날 행사는 아이들의 자연 지능을 일깨우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제주도교육청 제공

예전 부모 세대와 지금 아이들의 놀이는 무엇이 가장 크게 달라졌을까. 영국에서 재미있는 조사가 있었다. 놀이 정책 실행기구 play England에 참여했던 놀이 컨설턴트 팀 길(Tim Gill)은 한 지역에 대대로 살아온 어느 가족의 세대별 아동기 활동 영역을 분석했다. 그 결과 증조할아버지는 8세 때 해당 지역의 반경 9.6㎞를 걸어서 활보했지만 그다음 세대인 할아버지는 1.6㎞, 엄마는 1㎞, 손자는 300m로 후세대로 갈수록 급격히 좁아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상에서 아이들의 이동 거리가 줄어든 것은 도시화의 영향이 크다. 동네 아이들이 뛰어놀던 골목은 차들이 점령했고, 바빠진 부모는 위험한 도로에 아이들을 내보내는 대신 자가용에 태워 이동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차를 이용한 덕분에 아이들의 이동 경로는 넓어졌다. 하지만 발로 걸어 움직이는 ‘탐색의 영역’은 대폭 감소했다.

아이들이 자연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아마존의 열대우림은 알지만, 숲을 걷거나 들판에 누워 바람 소리를 듣고 구름이 흘러가는 걸 쳐다보는 일은 좀처럼 없다. 자연은 영상을 통해 주로 시각적인 정보를 얻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아이들이 놀던 흔적. 떨어진 가지와 잎, 크고 작은 돌로 여러가지 놀이를 생각해낸다.


창의력에 관해 연구해 온 케임브리지 대학 사이먼 니콜슨 건축학과 교수는 “발명과 같은 창의적인 방법으로 어떤 것을 발견할 가능성은 주변 환경 안에 있는 변수의 개수와 종류에 정비례한다”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환경의 변수’를 아이들이 직접 체험하는 활동이나 활동 과정에서 체득한 유무형의 지식과 지혜로 본다면, 탐색 영역의 축소는 창의력의 감소로 이어진다고 이해할 수 있다.

자연에서 노는 것과 아스팔트 위에서 노는 것을 비교한 연구 결과도 있다. 자연환경과 인공 환경에서의 놀이를 비교하는 연구는 여러 대학에서 계속되고 있는데, 결과는 녹색 공간에서 아이들이 더 건강하고 즐겁게 놀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아스팔트 위에서 노는 아이들은 방해를 많이 받기 때문에 놀이가 짧은 단위로 나누어지고, 자연에서 노는 아이들은 모험극을 만들어 며칠 동안 놀이를 이어나간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인공적인 놀이 구조물이 많은 환경에서 아이들이 체격이나 힘을 통해 서열 구조를 만들어간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반면 자연 공간에서는 신체적 능력보다 언어 능력, 창의성, 발명 능력에 의해 서열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성장 과정에서의 경험치에 따라 자연은 아이들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이들에게 자연은 여러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떤 아이들은 빗소리를 들으며 진한 흙냄새를 떠올리지만, 어떤 아이는 그저 물이 떨어지는 소리로 생각한다. 땅을 관찰하다 이름을 알게 된 곤충은 더 가치 있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자연에서의 느낌은 훗날 아이들이 성장한 뒤 어려움을 겪을 때 인내하고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 준다는 여러 학자의 연구 결과도 눈여겨봐야 한다.

어른들이 보기에 아이들은 얼추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처럼 느껴진다. 학교가 파하면 학원으로 가고, 주말이면 종종 가족과 야외로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 접하는 기회는 아이마다 편차가 크다.

제주의 아이들도 다르지 않다. 도농복합도시에 살고 있어 조금만 나가면 자연을 만날 수 있지만, 맞벌이 부부가 많고 자영업 비율이 높아 주말에도 바쁜 부모가 많다. 도내 학교급별 사교육 참여율은 초등학교(79.4%, 2022 통계청)가 가장 높다. 돌봄 기능과 연관한 사교육비 지출도 적지 않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제주 삼성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아이들이 한라생태체험학교에서 경운기 타기, 지게 지고 숲 길 걷기 등 자연을 온몸으로 느껴 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제주도교육청 제공


제주 재릉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아이들이 젖소에게 건초를 주고 있다. 이날 아이들은 우유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알아 보았다. 제주도교육청 제공


다행히도 이미 많은 학교가 아이들에게 다양한 자연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텃밭을 가꿔 농작물이 성장하는 과정을 알게 하고, 숲으로 체험 활동을 떠난다. 흙 위를 맨발로 걷거나, 우비를 입고 빗속을 걸으며 아이들의 자연탐구 지능을 되살리기 위한 이색 활동을 하는 학교도 생겨나고 있다. 학교 숲을 정비해 아이들의 놀이 공간을 확대하는 곳도 늘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 환경교육이 강화되고 있다. 덩달아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연의 혜택을 얼마나 누리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

많은 활동가들은 아이들이 실외에서의 활동, 특히 자연과의 접촉을 늘릴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으로 학교 활동에 기대를 걸고 있다. 초등학교는 아무리 학원을 많이 다니는 아이들에게조차 제외될 수 없는 의무교육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래 친구를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학교에서의 활동은 소풍을 넘어 자연을 더 가까이에서 이해할 수 있는 활동으로 영역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IQ에 이어 새롭게 떠오르는 자연 탐구 지능의 핵심은 동식물과 구름, 바위 등 자연 요소를 식별하는 능력이다. 자연을 자주 접해야 비로소 키워질 수 있는 능력이다.

글·사진=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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