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간 엄마부대, 기시다 관저 앞 민망한 시위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산케이뉴스> 20일자 보도에 실린 엄마부대의 사진 |
ⓒ 산케이뉴스 |
지난 2019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 수상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엄마부대가 이번에는 도쿄 수상관저 앞에서 또다시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발언했다.
<산케이신문> 온라인판인 <산케이뉴스> 20일 자 기사 "한국 보수계 단체 대표, 처리수 방출 관련해 '한국 의원들이 미안하다'(韓国保守系団体代表、処理水放出巡り 韓国議員が申し訳ない)"에 따르면, 지난 19일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는 약 30명의 시위대와 함께 수상 관저 앞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지지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는 한국 국회의원들이 일본을 방문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시위를 벌인 것을 겨냥해 "한국 국회의원들이 일본에 와서 끔찍한 일을 해서 정말 미안하다"라며 "처리수에 관해 일반 한국 국민들은 나쁜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발언했다.
주 대표는 방류를 반대하는 세력에 맞서 한·일 양국 정부가 힘을 합쳐야 할 필요성도 역설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수상은 아시아의 미래를 끌어가는 원동력"이라고 지칭한 그는 "방출에 반대하는 세력은 한국 내에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깎아내렸다.
"그렇지만 실제로 방출이 시작되면 한국의 국민 감정상 크고 작은 우려의 소리가 나오리라 예상된다"고 위험성을 경고한 그는 한국 국민들이 그렇게 나올 가능성에 대비해 "양국이 힘을 합쳐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유언비어의 불식에 협조해가기를 바란다"라고 주문했다.
"일본은 좋은 이웃나라", "우리는 IAEA 결정을 존중한다", "종북 주사파는 일본에 와서 한국용 정치선동을 하지 말라!" 등의 팻말과 플래카드를 든 이 시위대가 수상관저 앞에만 출현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일본 국회 앞에도 진출했다.
▲ <석간 후지>의 20일 자 기사 캡처 |
ⓒ ZakZak |
산케이신문사가 운영하는 <석간 후지>의 20일 자 기사 '한국 야당의 후쿠시마 처리수 유언비어에 한국 보수단체 엄마부대가 전투 선언(韓国野党の福島処理水デマに韓国保守団体 お母さん部隊が戦闘宣言)'에 따르면, 태극기 및 성조기와 더불어 일장기를 든 이 시위대는 "한일관계의 회복으로 양국은 세계로 나아가자"는 플래카드를 들고 국회 앞에서도 선전 활동을 펼쳤다.
<석간 후지>는 엄마부대를 오카상부대(お母さん部隊)로 지칭한 뒤, 이들이 일본에 전하는 당부의 말을 소개했다. 이 기사는 엄마부대가 오염수 방출 반대운동을 벌이는 위안부 운동가인 윤미향(무소속) 의원과 싸우고 있다면서 "엄마부대는 이러한 세력이 일·한 양국의 분단을 도모하려 한다고 경계를 호소"했다고 보도했다. 그런 다음, 기사 제목에 언급된 '전투 선언'의 내용을 이렇게 전했다.
"주씨는 윤씨가 향후 한국 내에서 후쿠시마 처리수에 관해 유언비어를 퍼트리거나 잘못된 정보를 발신하는 때는 항의 활동을 해나갈 것이라고 결의를 말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맞선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한일관계가 악화됐을 때인 2019년 8월 1일, 주옥순 대표는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문재인 정부를 향해 "당장 일본에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아베 수상님, 지도자가 무력해서, 무지해서 한일관계의 모든 것을 파괴한 것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라고 발언했다.
주 대표는 일본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위안부 운동을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위안부사기청산연대에 가담해 수요시위(수요집회)를 방해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베를린으로 날아가 위안부 소녀상 철거 시위를 벌여 독일인들까지도 의아하게 만들었다.
베를린 소녀상은 일본 정부가 특히 민감해하는 사안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작년 4월 28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철거를 직접 요청했을 정도다. 지난해 6월 14일자 <산케이신문> '한국 시민단체, 독일 위안부상 철거 요구하러 이달 말 방독'은 그런 일본 정부를 대신해 베를린으로 날아가는 주옥순 일행을 총리의 '원군'으로 표현했다.
엄마부대는 일본 정부가 경제 보복을 벌일 때 아베 신조를 응원했다. 이 단체 대표는 베를린 원정 시위를 벌여 총리의 '원군'이란 말까지 들었다. 그런 그들이 이번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로 고심하는 기시다 총리를 응원하고자 수상관저 앞에서 '미안합니다'라는 발언까지 했다. 한국의 이익이 아닌 일본의 이익을 지키는 일에 매몰된 한국 극우세력의 현주소를 반영하는 장면들이다.
▲ 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주옥순 위안부사기청산연대 대표가 지난해 6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부근에서 회원들과 함께 해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 권우성 |
일본 응원군이 된 한국 극우세력의 현실은 이들이 극우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음을 드러낸다. 극우의 핵심 특징인 자민족 중심주의를 이들에게서는 발견하기 힘들다. 자민족 중심주의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므로, 그것을 결여한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그 빈자리를 '일본민족 중심주의'로 채워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나 동유럽에서 주도권을 잡은 극우세력들의 사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극우세력의 성패는 대중적 기반의 구축 여하에 달려 있다. 자민족 중심주의가 그런 기반 구축에 결정적임을 감안하면, 한국 극우의 '흥행'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매우 불투명하다고 할 수 있다.
극우의 지지를 받는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는 2021년 중의원 선거에서 1위·3위 및 33.3% 및 6.1%를 기록했다. 반면, 2020년 21대 총선에서 기독자유통일당과 우리공화당을 비롯한 11개 극우 정당들은 도합 4.1%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한국이 아닌 일본을 편드는 세력이란 이미지를 떨쳐버리지 못한 것도 결정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엄마부대를 비롯한 한국 극우세력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일본을 편들게 되는 현실적 사정이 있다. 1990년대 초반의 탈냉전과 1997년 이후의 여야 정권교체가 이들의 재정 기반을 약화시킨 것과 무관치 않다.
미군정 이래로 한국 극우는 보수 정권의 재정 지원을 받으며 정권의 심부름을 해주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런 가운데 한국자유총연맹이나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같은 관변단체의 외형을 유지했기 때문에, 이들은 대중의 회비에 의존할 필요도 없었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탈냉전이 도래해 이들의 효용 가치가 낮아지고 이들과 국가의 관계가 약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1997년·2017년의 정권교체는 이들과 국가권력의 관계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예전 같은 고정적이고 전폭적인 국가적 지원을 더는 기대하기 힘들게 됐고,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집권기에 이들이 애물단지 같은 존재로 전락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지난 6월에 극우 유튜버들이 한국자유총연맹 자문위원으로 대거 위촉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극우세력이 관변단체와 결합해 국가 지원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이런 일이 윤석열 정부 하에서는 가능할 수 있지만, 다음 대선 이후에 어떻게 될지는 기약할 수 없다. 한국 극우와 국가의 관계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이로 인해 관변단체들이 극우 진영의 주도권을 잃게 된 현상은 전광훈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극우세력이 급부상한 현상과 무관치 않다.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도 교회 내에서 인력과 자금을 자체 동원할 수 있는 기독교 극우세력이 크게 부각된 것은 관변단체들이 힘을 쓰기 힘들어진 상황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일본은 사정이 다르다. 1990년대 이후로 일본에서도 정권교체가 잦았지만, 1997년에 일본회의(닛폰카이기)라는 거대 극우단체가 출현한 사실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일본 극우는 탈냉전의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었다. 그해에 등장한 새역모(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가 한일 교과서 분쟁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데서도 느낄 수 있듯이, 일본 극우의 역량은 탈냉전 이후에도 시들지 않았다.
대중 속에서 자생할 능력이 취약한 한국의 극우세력은 일본의 재정지원에도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다. 해외 학술회의 참석에 소요되는 경비까지 지원받는 일이 있다. 일본 극우가 한국 극우를 지원하는 이런 현상은 1990년대에 한국 극우는 약해진 반면 일본 극우는 오히려 강해진 데에도 기인한다.
일본 극우의 인적·재정적 기반이 비교적 단단하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자민당이 정권을 잃더라도 극우세력이 안정적인 기반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 극우가 볼 때는 한국보다 일본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비빌 언덕'이다.
한국 극우세력이 "아베 수상님 죄송합니다", "(기시다 총리를 향해) 미안합니다, 오염수 방류 괜찮습니다"라며 일본의 국익을 우선 추구하는 모습은 이들의 국내 기반이 그만큼 취약해졌음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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