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발망이 만든 첼시 유니폼이라고?

김식 2023. 7.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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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잉글랜드에 등장한 캐주얼 훌리건은 이탈리아, 프랑스의 화려한 패션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라코스테, 휠라 같은 고급 스포츠 웨어를 즐겨 입던 이들의 취향은 1990년대 들어 변화를 겪는다. 변화무쌍한 날씨의 영국에서는 세련되고 견고한 옷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버버리, 프라다, 아르마니, 랄프 로렌, 스톤 아일랜드 등의 명품 브랜드를 훌리건은 즐겨 입기 시작했다.

당시 명품 브랜드는 축구와 얽히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축구는 노동자 계급의 스포츠였고, 폭력적 이미지를 가진 훌리건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축구 산업의 상업적 성공과 유명 선수가 하나의 브랜드로 진화하면서, 명품 브랜드도 축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축구 유니폼에도 유명 디자이너가 가세해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셔츠가 나타나게 된다. 일본 출신의 유명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와 아디다스의 협업이 대표적인 예다. 2014년 챔피언스리그에 나선 레알 마드리드는 아디다스 셔츠의 몸통에 전설적인 동물인 드래곤이 새겨진 키트(kit)를 선보였다. 야마모토는 셔츠에 드래곤을 디자인함으로써 레알 마드리드의 위대함과 영광을 표현할 목적이었다고 한다.

사비 알론소는 심플하고 혁신적인 새 셔츠가 맘에 든다며, 드래곤이 선수단에 많은 힘을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사진=레알 마드리드 홈페이지


2022년은 레알 마드리드가 창단된 지 120주년 되는 해였다. 또한 야마모토와 아디다스의 컬래버로 만들어진 브랜드 Y-3의 20주년이기도 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마드리드는 아디다스가 아닌 Y-3가 새겨진 셔츠를 출시해 2022년 3월에 열린 ‘엘 클라시코’에서 처음 선보였다. 하지만 경기는 마드리드의 0-4 대패로 끝났다.

유명 디자이너와 스포츠 제조사의 협업을 넘어, 럭셔리 브랜드가 키트 스폰서로 축구 시장에 직접 뛰어든 경우도 있다. 김민재 선수의 활약으로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나폴리는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스포츠 브랜드인 EA7과 2021-22시즌부터 키트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EA7은 비록 아르마니의 프리미엄 라인은 아니지만, 럭셔리 브랜드가 최초로 축구 셔츠 시장에 진출한 케이스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사진=나폴리 홈페이지


EA7이 새겨진 나폴리 어센틱 셔츠가 125유로에 판매되자 일부 언론은 축구 역사상 가장 비싼 키트가 나왔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는 명백한 오보였다. 같은 시즌 아디다스가 제작한 유벤투스의 셔츠는 140유로였고, 퓨마가 만든 AC 밀란의 가격은 120유로로 나폴리와 큰 차이가 없었다.

여러분은 혹시 “럭셔리 브랜드가 축구 키트를 제작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비싼 가격 등 여러 문제는 있다. 하지만 명품 브랜드와 축구가 이렇게 가까워질지 과거에는 예상도 못 했듯이,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근래에 들어 더욱더 많은 명품 브랜드가 유럽의 빅 클럽들과 패션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축구 스타를 앰버서더로 선정해 홍보 효과도 노리고 있다. 필자와 잠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필자가 선정한 클럽은 첼시다. 20세기의 첼시는 그리 성적이 좋은 팀이 아니었다. 1954~55시즌 우승, 1969~70시즌 FA컵 우승과 1970~71시즌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이 이들이 내세울 만한 성적의 전부였다. 하지만 1996년 루드 굴리트에 이어 1998년부터 감독을 맡은 잔루카 비알리의 지휘 아래 첼시는 여러 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어 2003년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를 새 구단주로 맞이하며 첼시의 전성시대가 열린다.  

하지만 20세기 특히 1950년대 이전 첼시의 성적은 초라했다. 이에 당시 코미디언들은 “첼시는 도대체 언제 우승하느냐”고 조롱하곤 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39 계단(The 39 Steps)’에 나오는 ‘미스터 메모리’라는 인물은 “첼시가 기원전 63년 네로 황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우승했다"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게다가 1930년대 첼시 공격수였던 잭 콕은 축구 영화 ‘The Great Game’의 주연이었고, 첼시 선수 여러 명이 찬조 출연했다. 이러한 이유로 첼시 선수들은 훈련장에서의 모습보다 유명 클럽에서 모델 혹은 배우들과 찍힌 사진이 더 잘 어울린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첼시의 홈구장 스탬퍼드 브리지는 켄싱턴과 첼시 버러(borough, 자치구)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1인당 연 소득이 6만 5000파운드(1억원)다. 전국 평균(1만 9500파운드)의 3배가 넘는다. 축구 팬으로 범위를 좁혀도 첼시 팬의 1년 수입은 웨스트 햄 팬보다 2배가 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 팬보다 각각 64%, 75% 많다. 따라서 잉글랜드 축구 팬 중에서 첼시 팬의 씀씀이가 가장 크다.

이 자치구의 나이트 브리지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고급 백화점 헤롯이 있다. 또한 뉴욕 최고의 쇼핑가인 5번가와 비교되는 슬론 스퀘어(Sloan Square)도 이곳에 있다. 슬론 스퀘어에는 고급 아파트, 다양한 명품 브랜드 상점 외에 세계적인 미술관인 사치 갤러리도 위치해 문화적 명소로도 이름이 높다. 필자도 이곳에서 서블렛으로 몇 개월 산 경험이 있는데, 눈요기할 것은 많았지만, 비싼 물가에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슬론 스퀘어나 근처에 사는 젊은 상류층 인사를 슬론 레인저(Sloane Ranger)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속한 대표적인 인물이 윌리엄 왕자의 어머니 다이애나와 부인 캐서린이다. 둘 다 왕실과의 결혼에 앞서 첼시에 살았다. 사진=윌리엄 왕자 인스타그램


이외에도 스탬포드 브리지 근처에는 유명한 킹스 로드(King’s Road, 17세기 찰스 2세의 전용 길에서 이름이 유래)가 있다. 킹스 로드는 런던 패션, 예술, 음악계의 중심지다. 전설적인 그룹 레드 제플린의 레코드 회사가 킹스 로드에 있었고, 데이비드 보위, 밥 말리 같은 유명 뮤지션도 근처에 살았다. 또한 런던 패션을 상징하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남자 친구 말콤 맥라렌이 운영해 펑크의 대중화를 이끈 ‘섹스 부티크’도 킹스 로드에 있었다. 영국에는 20세기를 상징하는 문화의 발상지인 킹스 로드와 첼시 FC를 동의어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필자가 발망이 디자인할 것으로 상상한 첼시 유니폼. 발망의 상징인 황금색 단추와 호화로운 디자인의 금색 자수를 넣었다. 사진=한자연 디자이너


과거의 첼시 선수들은 축구는 못했지만, 화려했고 자유로웠다. 최근의 첼시는 뛰어난 실력에 세련됨마저 갖췄다. 이에 첼시의 키트 스폰서로 필자는 프랑스의 럭셔리 브랜드 발망(Balmain)을 선정했다. 발망의 호화로운 색감과 현란한 디자인은 첼시가 가진 고급스러운 도도함과 멋진 조화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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