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학맥]⑩원로배우 신영균·'문화특보' 유인촌은 동문…문화예술 인재 창고 한성고
김성환 의원, 연원정 비서관, 장하준 교수도 동문
김주익 설립자, 교육 통한 독립 꿈꾸며 개교
편집자주 - 한국 사회는 거대한 그물망 사회다. 학연, 지연, 혈연이 얽혀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 관심을 끈 것은 학맥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하버드대, 서울법대, 충암고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 것이 상징적이다. 연결망은 단순한 인연에 그치는 경우도 있지만, 정책 결정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아시아경제는 새롭게 주목되는 고등학교들을 중심으로 인맥을 살펴보는' 新 학맥'을 격주로 토요일에 보도한다. ①충암고 ②경문고 ③마포고 ④경기고 ⑤여의도고 ⑥현대고 ⑦중앙고 ⑧신일고⑨학성고⑩한성고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있는 한성고등학교(한성고)는 독립신문이 발간된 독립관에서 1928년 9월 개교했다. 겸산(謙山) 김주익 선생이 설립했다. 민족혼을 일깨우고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은 오로지 교육뿐이라는 신념으로 설립했다고 한다. 학교 이름은 옛 서울의 지명인 한성(漢城)에서 따왔다. 그렇게 민족 교육을 시작한 한성고는 정·관계는 물론 문화·예술계, 재계에서 활약하는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현재 한성학원이 한성중·고교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사유지 4000평을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을 건립하기 위한 부지로 내놓겠다는 의사를 밝힌 원로배우 신영균 (한성중 2회·한주홀딩스코리아 명예회장) 씨가 한성고를 졸업했다. 신 회장의 부지 기증 의사는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이승만 대통령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발족식 회의 때 나온 얘기로 알려졌다. 신 회장 고향은 황해도 평산으로, 이 전 대통령과 고향이 같다. 신 회장이 기증을 제안한 땅은 강동구에 있는 그의 사유지 약 2만4000평의 일부로 현재 그린벨트에 묶여 있다. 신 회장은 "정부가 결정한다면 기념관을 지을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신영균은 1960년 영화 '과부'로 배우로 데뷔했다. 1960~1970년대 대스타로 활약하며 '상록수', '연산군', '빨간 마후라', '미워도 다시 한번' 등 3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제15·16대 국회의원을 지낸 뒤 2010년 자신이 소유한 충무로 명보극장(현 명보아트홀)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등 500억원 규모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한성고 14대~16대 동문회장(1997~2003)을 지냈으며, 1988년 제1회 '자랑스러운 한성인'을 수상했다.
전원일기 '양촌리 김 회장댁 아들'로 잘 알려진, 유인촌 대통령비서실 문화체육특별보좌관(19회)도 한성고 출신이다. 총동문회 21대 회장(2011~2013)을 역임하기도 한 유인촌은, 동문회 고문으로도 활동하며 모교 발전을 위해 큰 노력을 하고 있다고 동문은 강조한다.
한 한성고 동문에 따르면 2010년 8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자격으로 강원도에서 열린 '봉평 달빛극장 페스티벌'을 찾은 유 특보는 현장에서 한성고 후배들을 만났는데 "오늘 한성 후배 두 명이나 만나네" 하며 악수를 하고,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살뜰히 챙겼다고 한다. 이에 앞서 2008년 11월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한성인의 밤' 행사에도 참석하는 등 유 특보는 '선후배들을 잘 챙기는 동문'으로 통한다.
박준희 총동문회장(24회)은 "유 특보가 총동문회장을 할 때, 제가 부회장이었다. 옆에서 볼 때 학교를 위해, 그리고 선후배 동문을 위해 정말 애를 많이 썼다. 또 문화부 장관에 이어 특보로도 활약하고 계셔서, 너무 자랑스럽다. 동문이 특보 발탁 기념, 축하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 특보는 제 3회 '자랑스러운 한성인상'을 수상했다.
유인촌에게 한성고는 단순한 고교 시절 추억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성고 2학년 때 평생의 직업인 연기와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2014년 유 특보의 '월간조선'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추수감사절 연극을 준비하고 있던 유인촌의 한 고교 친구가 유인촌에게 연출과 연기를 부탁했다고 한다. 유인촌의 큰형이 방송계에 있어서 동생도 뭔가 문화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얼떨결에 친구 부탁으로 시작한 공연을 마치고 난 뒤, 박수갈채를 받은 유인촌은 '평생 내가 할 일은 이거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길로 아예 공부는 접어두고 친구들과 무전(無錢)여행을 떠나거나, 서울 명동 국립극장 프로그램이 바뀔 때마다 찾아가서 연극을 구경했다고 한다. 한성고 재학 시절 일종의 연기 연습을 시작한 셈이다. 유 특보는 '전공'을 살리기 위해 중앙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했다.
유인촌의 큰형 유길촌은 1967년 TBC에서 일하다 1969년 MBC로 자리를 옮긴 뒤, 1980년대 MBC 드라마 황금기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작으로는 드라마 '여인열전-장희빈'(1981) '조선왕조 500년 임진왜란'(1985∼1986) '수사반장'(1971∼1989) '최후의 증인'(1987) 등이 있다. 1998년 MBC 퇴직 후 유인촌이 지은 공연장 유시어터 대표를 맡기도 했다. 2022년 4월 폐렴에 의한 합병증으로 별세했다.
한성고가 배출한 또 다른 관계 인물로는 강종석 통일부 기획조정실 실장(23회), 유영환 전 정보통신부 장관,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 방기선 기획재정부 제1차관(33회), 연원정 대통령비서실 인사기획관실 인사제도비서관(36회) 등이 있다. 공직에는 김동욱 잠실세무서장, 신덕용 수출입은행 부행장, 정계에는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32회·서울 노원병)이 있다. 88서울올림픽 유치 신청부터 대회 후 청산 절차까지 전 과정에 관여한 전상진 전 한국외교협회 회장(3회)도 한성고 출신이다. 고인은 1950년 제1회 고등고시 외교과(후일의 외무고시)에 합격, 1950년 11월부터 외교관으로 일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 씨도 한성고를 나왔다.
학계·의료계에서도 한성고 동문은 크게 활약하고 있다. 장하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경제학과 교수(31회)가 모교를 빛내고 있다. 부친이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장재식 전 국회의원이고,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는 사촌이다. 제24회 '자랑스러운 한성인'상을 받았다. '경제학 레시피'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낸 경제학자다.
이외에도 박중원 국립암센터 소화기내과 교수(26회),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을 지낸 곽승준 고려대 정경대 경제학과 교수(28회), 임영문 대진대 총장(31회) 신응진 부천 카톨릭 병원장 등 다수의 한성고 동문이 학계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학계 인사 중 임영문 대진대 총장은 2022년 2월 '자랑스러운 동문 방문'에 선정된 바 있다. 당시 동문회에서는 대진대를 방문 임 총장과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한 동문은 "(대학교 총장인)임 총장이 (동문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모습에, 친근감은 물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꽃을 피웠다"고 말했다. 이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질 때 조그만 선물까지 챙겨주는 섬세함과 총장실에서 출입문까지 배웅해 주는 모습을 볼 때 동문으로서 따스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재계·금융계 인사로는 윤경근 케이티아이에스 대표이사 사장 (20회), ??최규복 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24회), 김창권 한길리서치 회장, 김용성 미쯔비시엘리베이터 회장, 계명재 에이치케이(HK) 대표이사 사장(26회), 박재순 쿠첸 대표이사 (28회), 장규성 네오코리아 대표이사 (28회), 이종석 삼표시멘트 대표이사 부사장(30회),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31회), 권영설 형지어패럴 기획조정실장 사장(31회), 이원재 두산연강재단 대표이사(33회), 김형곤 동방그룹 회장(36회) 등이 활약하고 있다. 김윤세 인산가 회장, 박노봉 엔타스그룹 회장, 서승원 전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도 한성고가 배출한 인물이다.
그런가 하면, 한성고는 태권도 명문고로도 유명하다. 태권도부는 1975년 9월 창설했다. 이대훈 태권도 남자 국가대표팀 코치(60회)를 배출했다. 이 코치는 한성고 재학시절 대표로 선발된 뒤 11년 동안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한성고의 위상을 높였다. 아버지 역시 한성중·고를 나온 태권도인이다. 이 코치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차례나 정상에 올랐고, 아시안게임 태권도 사상 첫 3연패를 달성했다. 올림픽에선 2012년 런던에서 남자 58㎏급 은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에선 68㎏급에서 동메달을 땄다.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에선 메달 획득을 하지 못했고, 이후 은퇴했다.
한성고 출신들은 방송·언론·문화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탤런트 서재경의 아버지이자, 국립극단 배우로 활동한 故 서희승(20회), 노재덕 전 한국사진기자협회장, 장두석 개그맨(25회), 배기완 전 SBS 편성본부 아나운서팀 부국장(28회), 양승욱 전 전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쇄·편집인(28회), 김정렬 개그맨(29회), 김일우 탤런트(31회), 김종서 가수(33회), 이규석 가수(기차와 소나무) 등이 모교를 빛내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는 동문을 위해, 총동문회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중 각계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는 동문을 직접 방문해, 사진과 함께 동정을 전하는 '자랑스러운 동문 방문일지'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중 서울 남대문 시장에 있는 '고려인삼백화점'을 운영하는 신명호 동문(24회)의 경우 동문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고 한다. 신 씨는 올해로 36년째 남대문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 출신 건물주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던 2020년 3월, 남대문시장에서 가장 먼저 임대료 인하를 결정해 각종 언론에 '착한 건물주'로 소개되기도 했다. 신 씨는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상인들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 임대료를 인하한 바 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동문은 "한성 출신 보물이다. 자랑스러운 '한성인'임에 틀림없다"며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활발하게 운영되는 동문회는 2010년 12월 미국 워싱턴지역 총동문회도 창립해 해외에 있는 동문도 고교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캐나다 토론토 한성고 동문이 모여 추억을 나누기도 했다. 이 밖에 소모임으로는 한성등산회, 한성골프회, 한성축구클럽, 한성마라톤, 한성럭비회, 한무회, 한음회, 상록수 등이 있다. 아울러 '한성장학재단'을 통해 재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대학 재학생에게도 장학금을 주고 있다.
박준희 총동문회장은 "한성고는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동문만 7만여명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만큼) 동문끼리 매우 끈끈하다. 형, 동생처럼 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코로나19로 동문회 모임이 힘들었는데, 올해부터 동문회를 활성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한 "모든 선·후배들께서 당당한 한성인 출신으로, 가슴 깊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모든 동문이 실망하지 않는 동창회를 만들겠다. 은사님, 교장 선생님, 고문님 이하, 선후배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민족교육 힘쓴 겸산 김주익 선생은 누구]
한성중·고에 따르면 겸산(謙山) 김주익(金周益) 선생은, 1928년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한민족 말살 정책이 극에 달할 때, 민족혼을 일깨우고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은 오로지 교육뿐이라는 신념으로 본교를 설립했다고 한다. 겸산은 1898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났다. 북청농업학교를 거쳐 경성법학전문학교(현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경도제대(京都帝大) 경제학부에서 신경제학을 공부하며, 범민족 단일 독립운동 단체인 신간회 초대(初代) 경도지부장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졸업 후 귀국해 현 연세대인 연희전문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학교 설립 후 교명을 옛 서울의 전통적 지명인 한성(漢城)이라고 짓고, 교장선생님으로서 한복을 입고 직접 학생을 가르쳤다. 특히 교문 입구에 서른한 개의 돌계단을 손수 만들어 놓고 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후학들에게 민족의 정기(精氣)인 3·1 독립정신을 일깨웠다고 한다. 1950년 한국 전쟁 중 사망했다.
조영상 한성고 교장은 "본교는 겸산 김주익 선생께서, 일제강점기인 1928년 교육 구국의 굳은 신념으로 설립한 민족사학이다. '습관은 의지보다 강하다. 좋은 습관을 들이자'라는 교훈 아래 모든 재학생과 교사가 합심해 명문 학교로서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소종섭 정치사회 매니징에디터 kumkang21@asiae.co.kr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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