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먹고살기] 답이 안 나올 땐 질문을 바꿔 보라
놀라운 사실을 하나 말해주겠다. 행복의 기본 조건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는 것’일 텐데 정작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를 잘 모른다. 지자체나 도서관에서 글쓰기 또는 은퇴 이후의 삶 가꾸기 강연으로 만나는 분들에게 물어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신념을 가지고 얘기하는 분이 거의 없다.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살아왔고 나이 들어서도 자신의 기분보다는 세상의 기준부터 생각했으니 자유롭게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잊은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생각해 보라. 입학시험을 치를 때도 우리는 주관식 대신 네 개의 항목 가운데 정답 또는 가장 적당한 항을 고르게 하는 ‘4지선다’형 문제를 풀었다. 네 개의 보기 중에 반드시 정답이 있다고 믿고 살아왔던 생애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인생은 객관식이 아니라는 사실은 광고회사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드러났다. 흔히 좋은 광고는 좋은 광고주가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광고주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광고 목표를 잘못 선정하기도 한다. 한 임플란트 회사 광고를 준비할 때의 일이다. 그 회사는 치과의사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영업사원들의 도를 넘은 판촉 활동이 치과의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이에 회장님은 치과의사들과의 관계를 개선할 목적으로 새 광고를 만들기로 했다. 중요한 캠페인이었기에 서울에 있는 유수 광고대행사들이 모두 부름을 받았는데 캠페인 테마가 신박했다. ‘치과의사들이 인류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시켰다’는 메시지가 새 광고에 담을 숙제였던 것이다.
물론 칫솔의 발명은 획기적이었다. 하루만 칫솔질을 하지 않아도 입안은 온통 세균이 번식해 여러 가지 질병을 만들 뿐 아니라 혈관을 따라 심장, 신장, 뇌 등으로 침입해 사망에 이르게 하니까. 우리는 칫솔질 덕분에 세균성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치과의사들이 칫솔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다양한 구강질환 예방용품들을 개발해 인류의 수명 연장에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대한치과의사협회도 아닌 회사를 위해 그런 메시지로 광고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나는 광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서울대병원에 있는 치의학박물관까지 찾아가는 노력을 보였지만 결국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합격한 회사가 위대해 보였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아이디어를 냈기에 회장님의 까다로운 주문을 만족시켰던 것일까.
하지만 얼마 후 집행된 TV 광고를 보고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치과의사는 다 어디 가고 “아~해봐” 하고 어린아이 입 안을 살피는 어른들의 모습과 함께 “어릴 적 당신의 치아를 돌봐준 사람”이라는 내레이션이 나오고, 나이 든 부모님의 모습 위로 “이제 당신이 돌봐드릴 차례입니다”라는 메시지로 마무리되는 감성광고가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완전 다른 캠페인이잖아? 이건 약속 위반이야! 나는 흥분해서 외쳤다. 그리고 그 광고를 만든 회사의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의 전말을 캐물었는데 이야기는 의외로 간단했다. 그 회사의 팀장은 프레젠테이션장에서 회장님에게 “그렇게 광고를 만들어서는 원하시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우니 소비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감성광고를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준비해 간 다른 광고 아이디어를 제시했던 것이다. 질문 자체를 바꿔버린 것이다. 나는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단추를 다시 다 풀어야 하고 지휘관이 잘못된 목표점을 제시하면 병사들이 엉뚱한 곳으로 가다가 몰살을 당하기도 한다. 광고라고 다를까. 광고주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거나 매출을 올려줄 답을 간절히 원하지만 정작 정답이 뭔지는 모른다. 그래서 똑똑한 기획자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답이 나오지 않을 때는 질문을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글쓰기도 비슷하다. 리뷰가 잘 안 써지면 책이나 영화 내용을 쓰려 하지 말고 그 제목이 들어간 자유로운 글을 써보면 된다. 리뷰라고 해서 꼭 기자나 평론가처럼 그 작품에 대해서만 써야 한다는 법도 없지 않은가. 나는 2주일 전 시작한 글쓰기 교실 학인들에게 이런 방법론을 제시하며 ‘리뷰 같지 않은 리뷰’를 써보라고 했다. 어떤 글들이 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편성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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