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어느 은퇴 목사 부부의 말년
마흔 중반의 이미선(가명)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폭력 성향을 띤 우울 증상인데 9년 전쯤 암투병을 하면서 증세가 심해졌다. 그는 지금 충북 음성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다. 얼마 전 집에서 아버지를 심하게 때려 어머니가 할 수 없이 경찰에 신고했고, 병원으로 옮겨진 것이다. 1954년생 동갑인 이상용·김정애씨 부부의 팔다리엔 딸에게 맞아 생긴 상처가 군데군데 있다.
칠순을 코앞에 둔 이들은 은퇴 목사 부부다. 25년 넘게 지방에서 빈민 사역을 펼치다가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 사역을 접고 조기 은퇴했다. 건강과 재정 상황이 크게 나빠지면서다.
이들 부부는 충북 충주에서 월세 30만원짜리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10여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이 목사는 당뇨에 고혈압, 전립선 질환 등을 앓고 있다. 암투병 중인 아내 김씨는 허리디스크가 심해 진통제를 달고 산다. 매월 노령연금(100만원)에 따로 나가 사는 아들이 보태주는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사역을 접으면서 각종 후원은 모두 끊겼다.
이들 부부에게도 ‘왕년’이 있었다. 경기도 평택을 시작으로 충북 제천과 청주 일대에서 사역을 이어가던 때다. 마흔 넘어 목회의 길에 들어선 이 목사는 간호사 출신의 아내와 함께 노숙인들에게 매일 도시락 200개씩 만들어 나눠줬다. 그들 사역을 돕는 교회나 단체들과 함께 의료·이미용·반찬나눔 봉사와 복음 전도 사역도 이어갔다. 이들 부부의 사역 소식은 본보와 여러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사역 대상이 대부분 노숙인과 독거노인이라 이들 부부는 헌금을 만져본 적이 별로 없다. 대부분 후원금에 의지했지만 이마저도 들쭉날쭉했다. 할 수 없이 김씨는 식당 일을 하면서 남편 사역을 도왔다. 고기 불판을 닦아내느라 몸은 힘들었지만 남은 반찬 등을 얻어와서 도시락을 만드는 데 보탤 수 있어 감사했다.
한평생 월급을 쥐어본 적도, 자가용을 구입한 적도, 자기 집을 가져본 적도 없는 이들 부부의 은퇴 후 삶은 척박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지난 3년간 이들 부부는 ‘퇴짜 맞는’ 목사 부부의 삶을 이어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활이 힘들어 경기도의 어느 큰 교회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해당 지역에 주소지를 둔 교회만 돕는 게 교회 방침이라며 외면당했다. 또 다른 교회에 전화를 해도, 손편지를 써서 도와 달라고 호소를 해도 부교역자 선에서 ‘커트’ 당하기 일쑤였다. 이들 부부는 그럴 때마다 ‘우리가 작은 교단 출신이라 그런가 보다’라며 넘어갔다.
더 씁쓸한 건 은퇴 뒤 신앙생활이었다. 지역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은퇴 목사 부부라는 신분이 노출되니 교회 측에서 오히려 부담을 느끼더라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에 소속되기 쉽지 않아 결국 이들은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들이 처한 현실은 퇴직금이나 연금 등 아무것도 없이 사역을 내려놔야 하는 작은 교회 또는 선교사들의 노후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들 가운데 일부도 이 목사 부부처럼 자칫 퇴짜 맞으며 살아야 하는 말년을 맞닥뜨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2~3년 뒤면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 목회자·선교사들의 은퇴 시기(70세 전후)가 도래한다.
이 목사 부부를 보면서 불쑥 의문이 들었다. 이들이 헌신하며 이어왔던 사역은 성공일까 실패일까. 목회자 부부로 살아온 그들은 인생의 승자일까 패자일까. 영혼 구원 사역을 인간의 잣대로 판단하려는 것 자체가 주제넘는 일이지만 이들 부부의 말년이 안타까운 건 사실이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친’ 은퇴 사역자들의 말년도 사뭇 궁금해졌다. 바라기는 1981년 결혼해 100차례 가까이 거처를 옮겨 다녔다는 이 목사 가정이 더 이상 보금자리를 옮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픈 딸의 회복과 함께 이 가정의 안녕을 빈다.
박재찬 종교부장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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