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4개월 만에 창업… “제 힘으로 이룬 건 하나도 없어요”
아무 날도 아니지만 케이크를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12년차 종합 디자인 회사인 ‘케이크커뮤니케이션즈’의 이름을 들었을 때도 그랬다. 기부·후원자를 예우하는 카드와 팸플릿 제작이 사업의 95% 이상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크커뮤니케이션즈의 권소현(36) 대표를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권 대표는 요즘 말로 ‘인싸(인사이더)’다. 학창 시절 내내 반장을 했고 서울여대에서는 총학생회장을 했다. 졸업생 총동문회 청년위원장이라는 현재의 직함을 굳이 끌어오지 않아도 됐다. 그런 리더십과 친화력으로 권 대표는 사업을 시작했다. 기독교학과를 졸업한 지 4개월 만에 벌인 일이다.
졸업반이던 2012년쯤 권 대표는 영국에 사는 친척 집에 잠시 머물 때 일상에 스며든 기부 문화에 감명을 받았다. 한 어린이재단의 파티를 봉사자로 섬길 기회가 있었는데 참여자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기부금을 냈다. 별일 아닌 날에도 서로에게 전하는 종이카드 문화도 그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창업 희망서를 작성해 무작정 교내 창업 보육센터 교수를 찾았다. ‘종이카드는 승산이 없다’는 조언에 따라 마케팅 기법으로 제시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기독교 동아리와 교회 친구 등 지인 6명을 모았다. 총학생회를 이끈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당시 모바일 시장은 마땅한 수익 모델이 없었다. 기부·후원자 예우 산업으로 눈을 돌렸고 사무실 인근 지역에서 클라이언트(고객사)를 물색했다. 서울대 어린이병원 후원회 등에 모바일 가입 회원 수를 근거로 영업을 했다. 권 대표는 “지금 생각해보면 젊은 친구들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순수하게 말한 것밖에 없었다”며 “아무것도 없는 우리를 믿고 일을 맡겨주신 곳은 여전히 VIP로 모신다”고 했다.
계약은 성사될 수 있지만 유지하는 건 다른 차원의 얘기다. 케이크커뮤니케이션즈의 재수주율은 98%에 달한다. 권 대표는 “그들이 고객사가 아닌 코워커(동료)라고 생각하고 일한다”며 “기부를 끌어내고 기부·후원자를 예우하는 것을 함께 고민하고 나중에 문제점을 찾는 것까지도 전심을 다한다”고 했다.
국제구호기구 NGO인 굿네이버스의 가족 그림·희망 편지 쓰기 대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케이크커뮤니케이션즈는 전국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각각 70여만, 280여만장의 리플릿이 뿌려지는 기부 행사에서 디자인 제작과 발송을 지난 4년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권 대표의 교회 유치부 교사 15년 경력이 발휘되던 순간이었다. 그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걸 경험과 주변 교회 교사들에게 묻고 파악해 실물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며 “방글라데시 아이가 이 기부를 통해 학교에 다니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했다”고 했다.
권 대표는 디자인 프로그램을 다룰 줄 모르는 디자인 회사 수장이다. 그는 적재적소 직원 배치와 권한 부여가 대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권 대표는 “우리 직원은 내부 클라이언트나 다름없다”면서 “집보다 더 오랜 시간 함께 있는 공간에서 그들이 행복하진 못해도 불행하진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졸업 후 바로 창업한 터라 처음부터 대표였던 그에게 직원 경험이 없는 것은 최대 약점이었다. 그가 지인 인스타그램에 ‘회사 다닐 맛 난다’는 식의 글이 올라오면 바로 전화 걸어 물어보는 이유다. 그는 수시로 직원으로부터 회사의 문제점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권 대표는 새로운 입찰에 대한 성과급, 3년마다 부여하는 유급 휴가, 매달 마지막 금요일 ‘문화데이’, 육아기 직원 재택근무 등을 도입했다.
권 대표는 “직원이 불행하면 대표인 저도 불행해진다”며 “직원 개개인의 자존감이 올라가면 회사 성장의 선순환으로 돌아온다고 믿는다”고 했다. 2013년 직원과 함께 간 일본 출장 중에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제작한 불빛에서 색이 변하는 종이카드가 온라인 소품 사이트에서 판매 1위를 하기도 했다.
케이크커뮤니케이션즈는 현재 대학과 대학병원의 발전 기금 관련 기관, 대형 NGO 단체 등을 맡고 있다. 종이카드에서부터 팸플릿 책자 굿즈(후원하며 받는 기념품)까지 사업 영역이 확장됐다. 권 대표는 “직원 규모가 한정적이라 제안이 들어와도 거절하는 기관이 생긴다”며 “우리가 진짜 필요한 작은 단체와도 일하고 싶다”고 했다. 이는 회사와 권 대표가 작은 기관을 후원하면서 품은 꿈이다.
권 대표는 최근 다시 창업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26년 지기 친구와 함께 올 4월에 AI 연구 겸 개발사를 설립했기 때문이다. 지금껏 쌓인 디자인과 이미지 데이터를 처리하고 활용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며 “AI를 다룰 줄 아는 디자인 회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권 대표는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치열하게 달렸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최근에서야 “내 힘으로 한 게 하나도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종이카드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제가 생각했던 회사 모습과 완전히 달라요. 회사를 지금껏 지켜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큰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그분이 제게 주신 재능으로 소명을 이뤄 가려 합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크리스천 여성 리더로 말입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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