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나누고… 우리 곁에 있는 경건의 공간 속으로
한자 비어 있을 공(空)과 사이 간(間)이 빚어낸 단어 ‘공간’은 사전적 의미로는 ‘빈 곳’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그저 비어 있는 곳이 아닌, 누구나 무엇이든 채울 수 있고 어떤 일도 일어날 가능성의 시선으로 보면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를 마주하게 된다. 그 공간이 온기와 기독교 신앙으로 채워진다면 그 가능성은 십자가와 복음에 견줄 만한 영향력을 갖는다. 후쿠오카 켄세이의 ‘즐거운 불편’엔 이런 말이 있다. “자신의 둘레 1㎞에서도, 자기가 죽는 날까지 걸어도 다 맛보지 못할 만큼 기쁨들이 숨 쉬고 있다.” 수도권 도심은 물론 일상 공간에서 몇 걸음 나서면 다다를 수 있는 곳, 누구에게나 예수 그리스도의 온기가 느껴지는 ‘힙 플레이스’들을 찾아가기 위해 지도를 펼쳐보자.
지난 11일 오후 7시, 비 내리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골목. 고풍스러운 샹들리에 아래 놓인 U자형 테이블, 송이버섯 모양의 은은한 조명이 인상적인 공간에 사람들이 하나둘 채워졌다. 나이 성별 직업 모두 제각각인 남녀 13명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작은 팻말 앞에 앉았다. 공통점은 저마다 손에 마틴 로이드 존스의 ‘영적 침체’를 들고 있다는 것. 잠시 후 기독 출판사 복있는사람의 판매담당자 홍하은씨의 인도로 책 내용을 오디오북으로 듣고 서로 생각을 나누기 시작했다. 1년째 매주 화요일 저녁 진행되는 북 토크 모임의 모습이다.
이곳 공간 이름은 ‘이어진 라운지’. 공간 지기 심영섭 대표는 목회자의 길을 걸었던 신학도로 20대를 보냈다. 전도사 시절 독학으로 영상 제작과 편집을 배워 교회 방송실 직원으로도 근무했다. 그는 “카메라 제조사 입사, 카메라 대리점 운영 등 여정을 거치며 사람들이 자신을 찾기 위한 깊이 있는 대화 나누기를 절실하게 원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대리점 옆에 ‘나를 찾는 사진관’을 열고 인터뷰와 사진 촬영이 함께 이뤄지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소셜 클럽 형태의 공간에 대한 생각은 확장을 거듭했다. 그 결과물이 ‘이어진 라운지’다. 지금도 운영은 공간 대여와 나를 찾는 사진관으로 이뤄진다. 매주 목요일 저녁엔 심 대표가 직접 진행하는 북 토크, 금요일 저녁엔 ‘메시지 성경’ 읽기와 기도로 이어지는 밤이 릴레이처럼 펼쳐진다.
멋진 카페와 맛집, 패션 거리가 골목골목을 채우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한편엔 사진 관련 서적으로 채워진 북카페와 다양한 시각 예술 작품들이 사색으로 이끄는 모던한 공간이 있다. 카페 ‘룩인사이드(Look-in-Side)’다. 2개 층에 북카페와 갤러리로 나누어진 공간에선 사진작가 심재창 대표가 손님들을 맞이한다. 그는 서울신학대 선교영어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떠나 그라피티 아티스트 키스 해링을 배출한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에서 공부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지난 13일 찾은 이곳엔 레고 블록을 모티브로 현대인의 자기 회복을 표현한 작가 이름(E REUM)의 작품과 심 대표가 ‘목욕탕’을 주제로 공모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그는 “비기독교인도 매력을 느끼고 찾아올 수 있는 공간에서 환대를 누리고 좋은 음악, 커피, 예술작품으로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한양도성 성곽으로 넘어가는 언덕배기엔 C S 루이스의 소설 ‘나니아 연대기’를 모티브로 한 문화 공간 ‘나니아의 옷장’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옷장 문을 열고 들어가 만난 새로운 세상처럼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전경은 한 폭의 그림 그 자체다.
이재윤 주님의숲교회 목사가 운영하는 이곳은 개성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스튜디오로 사랑받고 있다. 온라인 생중계 공연이나 뮤직비디오 촬영 등이 이미 수차례 진행됐다. 다양한 콘텐츠 제작이 이뤄질 수 있도록 카메라, 마이크, 키보드, 기타 앰프, 오디오 믹서 등 유튜브 방송과 녹음에 최적화된 모니터 시스템이 준비돼 있다. 찬양 사역자 김 브라이언이 2주마다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하는 CCM 아티스트 초대석도 눈길을 끈다.
지역 사회에 문화적 콘텐츠와 높은 퀄리티의 커피를 소개하고, 크리스천 아티스트들에겐 다양한 컬래버를 시도하게 해주는 사랑방 같은 공간도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아트 오브 커피’다. 커피 로스터인 한종철 작가와 주예진 디자이너 부부가 합작한 이곳은 예술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일상 속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평일엔 갤러리이자 주민들의 책 모임 공간으로, 주일엔 예배 공간으로 변신하는 기독교 영성 나눔 공간도 있다. 서울 광진구 광장동의 ‘레 미제라블’은 도심 속 기도처를 표방하며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갤러리형 카페를 운영하던 안영술 김효경 산돌교회 목사 부부가 지난해 광장동에 새로 둥지를 튼 곳이다. 주소지는 바뀌었지만 기독교와 세상의 경계에 서 있는 이들을 위한 문화선교적 공간을 지향하는 점은 그대로다. 수요일엔 직장인들을 위한 정오기도회도 열린다.
카페 거리와 용암천 산책로가 이어지며 수도권의 명소로 떠오른 경기도 남양주 별내동엔 독서와 함께 아늑한 쉼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오롯이 서재’란 이름의 책방이다. 의미 그대로 ‘고요하게 그리고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동의 서재 같은 곳이다.
4m에 달하는 층고에 큰 창문과 흰 커튼 사이로 스미는 햇살이 인상적인 이곳은 이춘수 목사가 코로나19로 교회가 셧다운 됐을 때 책을 마중물 삼아 동네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소설 시 에세이 그림책 등 기성 출판물과 독립출판물을 함께 판매하는 서점이자 카페이기도 하지만 독서·낭독 모임, 북 콘서트와 연주회 등이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별내동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경기도 용인 수지구엔 손곡천의 맑은 물을 마주하고 숲으로 둘러싸인 채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공간이 있다. ‘감사’를 뜻하는 히브리어로 이름을 지은 카페 ‘토다의 숲’이다.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통한 감사를 경험하길 바라며 지어진 이름이다.
때론 지저귀는 새소리와의 합주가 이뤄지는 연주회장으로, 어느 때는 계절의 옷을 입은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미술 전시회장이 되기도 하는 이곳은 사실 교회다. 카페지기 임성원 움직이는교회 목사는 “교회 안의 문화만이 기독교 문화가 아니라 창조 세계 모두가 기독교 문화”라며 “공간이 다양하게 변주되며 활용될수록 따뜻한 문화가 지역에 온기를 전한다”고 했다.
심리·성격 상담과 함께 요리, 뜨개질 등 다양한 분야의 수업이 이뤄지는 ‘분당 살롱’(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장안로), 문화예술 사역 극단 ‘광야’가 지난달부터 가오픈 형식으로 운영해오다 지난 17일 정식 운영에 돌입한 국내 최초 회원 전용카페 ‘카페 물러남’(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독특한 색깔로 이웃과 소통해가는 동네책방 ‘민들레와 달팽이’(경기도 김포시 양촌읍)도 수도권 내 주목받는 공간으로 꼽힌다.
이 외에도 독서를 중심축으로 복합문화공간을 제공하는 동네책방 ‘숨’(광주광역시 광산구 수완동), 25년간 한자리에서 기독교 문화공간으로 쉼을 제공하는 ‘프라미스랜드’(부산 중구 대청동) 등 수도권 외 지역에도 온기 머금은 공간들이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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