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에서 오감만족 하는 방법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오래된 시저스 팰리스 호텔 1901호에 들어서자마자 발견한 거울 속 나는 어쩐지 서울에서보다 훨씬 더 발랄한 모습이었다. 귓가에 울려퍼지는 1960년대부터 2020년대를 오가는 각종 장르의 음악, 눈에 담기 힘든 휘황찬란 조명, 테마파크에서만 볼 수 있는 코스프레 퍼포먼서 같은 사람들이 가득 찬 거리. 누구나 꿈꾸는 일생일대의 행복과 일탈을 느낄 수 있는, 잘 짜놓은 세트장 같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내 안에 숨겨진 오색빛깔을 느꼈다. 오감을 만족시켜 준 라스베이거스에선 영화 같은 순간만 펼쳐졌다.
어딜 가나 보이는 팔짱 낀 고든 램지 사진을 보며, 라스베이거스가 준비한 미식세계에 풍덩 뛰어들리라 마음먹었다. 처음으로 혀의 감각을 깨운 곳은 벨라지오 호텔 가든에 자리한 ‘새들스’. 웨스 앤더슨의 영화처럼 동화 같은 곳에서 올드 팝과 클래식을 들으며 즐긴 ‘새들스 타워’는 갓 잡은 것처럼 신선한 연어가 층층이 쌓인 메뉴다. 참고로 라스베이거스 연어는 노르웨이산 만큼이나 싱싱하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메이 페어’에선 라이스 크래커에 참치 타르타르를 즐겼지만, 어찌 된 일인지 참치의 풍미를 능가하는 스트립 쇼가 펼쳐졌다. 천장에 매달려 빙글빙글 도는 댄서를 바라보며 ‘이보다 다이내믹한 식사가 가능할지’ 의문을 품다가 다음날 그 의문이 풀렸다.
그것도 〈미슐랭 가이드〉 2스타에 빛나는 ‘와쿠다’에서 세계적인 셰프 테츠야 와쿠다의 손길이 닿은 오마카세를 음미하면서 말이다. 신선한 와규, 달콤 매콤한 미소 소스와 핑거 라임을 얹은 방어, 형형색색의 회들이 다이내믹하게 등장하는 광경을 보며 망설임 없이 주문한 칵테일. 몽키47 진과 새콤한 레몬, 콩가루가 들어간 스노 몽키를 음미했다. 적당히 마실 순 없는 법. 리조트 월드 라스베이거스에 들어선 ‘개츠비 칵테일 라운지’와 시가 바 ‘에이트 라운지’에서 한껏 취기를 올린 뒤, 알코올 대장정의 대미를 장식한 곳은 ‘반달펌프 파리’다. 연기가 폴폴 피어오르는 칵테일, 코코 샤넬 향수병에 담은 칵테일, 장미를 얹은 칵테일 등. 각기 다른 퍼포먼스를 뽐내는 칵테일의 모습에 눈은 연신 동그랗게 커졌다.
현존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집합체라 할 만큼 모든 영역에서 오감만족을 자극하는 이곳. 라스베이거스 3대 쇼라 불리는 ‘태양의 서커스’ 소속 예술가들이 찰랑이는 물과 밖을 넘나드는 ‘오쇼’는 엔터테인먼트의 정점을 찍는다. 초현실주의에 얹은 로맨스 서사를 세계적인 수준의 곡예사와 싱크로나이즈드 수영 선수들의 수상 공연으로 표현했다. 어딘가 기괴하면서도 묘하게 빠져드는 오쇼. 반면 스탠드 코미디와 아슬아슬한 서커스가 결합된 ‘압생트’는 친근한 매력을 뽐낸 쇼였다. 두 쇼에서 수중과 공중을 넘나드는 곡예가 안겨준 충격은 가히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은 사막 풍경으로 옮겨갔고, 울퉁불퉁한 질감의 사막을 작고 날쌘 버기를 타고 연신 달렸다. 손바닥이 닳을 만큼 핸들을 꽉 쥐고 달려 사막 한가운데 도착했을 땐 골똘히 사색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지난 3년간 이만큼 완벽한 행복을 느낀 적 있었나?’ 팬데믹과 엔데믹은 이제 가물가물하지만, 달콤한 여행의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멈춰 있던 라스베이거스의 시간도 다시 빠르게 흐른다. 나를 버기 주차장까지 태워준 운전수 ‘마이클’은 매일 사막을 달려 사람들을 태우고, 또 달리기를 반복하지만 정말 행복해 보였다. 마치 ‘웃기만 하라’고 쓰인 대본에 따라 연기하는 마이클처럼 라스베이거스의 모든 풍경은 완벽한 한 편의 연극이었다. 그것도 보고 또 보고 싶은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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