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대축제' 일본 개최로 보는 KBS의 미래

하성태 2023. 7. 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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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의 사이드뷰] '무리수'가 현실화되는 과정이 우려스럽다

[하성태 기자]

"이 시간부로 비상 경영을 선포한다."

비장하다. 지난 10일 김의철 사장이 윤석열 정부의 TV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과 관련해 직원들에게 사과하며 KBS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에 담긴 표현이 그랬다. 김 사장은 "KBS의 신규 사업을 모두 중단하고, 기존 사업과 서비스는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이며 이를 위해 비상 경영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비상 경영 선포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9년 양승동 사장 시절 KBS도 '비상경영계획 2019'을 통해 연간 600억원, 2023년까지 2,600억 규모의 비용 절감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플랫폼 다변화 시대를 맞은 광고수익 급감으로 인한 구조적인 적자 위기 타개책이었다. 당시 언론노조 KBS본부는 "가장 큰 책임은 경영진의 능력부족"을 지적하기도 했다.

핵심은 그때와 지금의 비상 경영은 차원 자체가 다르다는 점이다. 지난 11일 리투아니아 순방 중이던 윤 대통령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재가했다. 13일엔 현직인 KBS 윤석년 이사를 해임했다. 윤 이사는 과거 TV조선 재승인 점수 조작 의혹으로 지난 3월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둘 다 전자결재까지 동원했다. 말 그대로 일사천리였다.
 
 TV 수신료와 전기요금의 분리 납부가 가능해진 첫날인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전력공사 남서울본부 전력사업처에서 고지서 작업을 하는 관계자의 모습. 그 앞으로 취재진 요청으로 부착된 수신료 분리 납부 관련 안내문이 보인다.
ⓒ 연합뉴스
 
지난해 KBS의 수신료 수입 6935억. 전체 수입 1조5300억 원의 45% 수준이었다. 전문가들은 수신료 분리징수 이후 KBS의 수신료 수입이 지금의 1/6 수준, 연간 4천억 이상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즉각 KBS1의 광고 도입이나 경쟁력이나 상업성 약한 채널이 폐지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EBS 역시 후폭풍이 예고됐다. EBS는 2500원의 KBS 수신료 중 월 70원을 배정받고 있다. 연간 194억 원의 수신료 수입 또한 근간부터 흔들리게 됐다. EBS는 지난 12일 "상업적 재원이 70%에 달하는 기형적 재원구조"라며 "대표적 수익사업인 방송광고매출과 교재매출 마저 방송환경 변화와 원가상승으로 인해 악화되고 있다. (수신료 수입으로도) 시청자들을 위한 공적책무를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수신료 납부 회피를 야기할 분리징수 시행은 현실적인 이유로 올해 말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영방송 제도의 존폐"라는 우려가 현실화되는 가운데 KBS가 향후 어떤 후폭풍을 맞을지, KBS와 EBS 프로그램들의 존폐나 방향이 어떻게 흘러갈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뜬금없는 이상 조짐이 포착됐다. 바로 KBS의 대표적인 연말 가요 프로그램인 < KBS 가요 대축제 >의 일본 개최 소식이었다.

< KBS 가요 대축제 > 일본 개최 소동극

이상 조짐이 불거진 시점은 수신료 분리징수 논란이 가열되던 지난달 중순이었다. 커뮤니티 등지에서 돌던 소문이 언론 보도와 KBS 측의 확인으로 기정사실화 됐다. 올해 12월 9일로 예정된 2023 < KBS 가요 대축제 >가 일본 사이타마현에 위치한 베루나 돔(세이부 돔)에서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KBS 시청자센터 청원란에 '가요대축제 일본 개최 반대'글들이 쏟아진 건 당연지사. 언론 취재가 시작되자 당시 KBS 측은 "일본 개최를 검토 한 건 사실이나 확정된 바는 없다"며 말을 아꼈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

"특히 2023년은 지난 몇 년간의 팬데믹으로 막혀있던 K-POP 해외 공연이 가능해지면서 우리나라 가수들을 직접 보고 싶어 하는 글로벌 팬들의 요청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KBS는 이에 부응하기 위해 올해 하반기에도 멕시코, 일본 등 <뮤직뱅크 월드투어>를 지속적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KBS 제작2본부 예능센터가 '일본 개최 반대'청원 글에 답변한 내용 중 일부다. KBS는 30일 동안 1000명 이상이 청원에 동의하면 해당 부서 책임자가 답변을 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KBS 예능센터는 "기존의 < KBS 가요 대축제 >를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뮤직뱅크 월드투어- 글로벌 페스티벌 (가제)>로 확대하여 국내와 해외에서 함께 개최하는 방안도 검토" 중임을 전제로 올 연말 < KBS 가요 대축제 >의 일본 개최를 가시화했다. 일각에서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KBS는 일본 개최를 전면 부정하지 않음으로써 지난달부터 이어져온 의혹을 기정사실화한 셈이 됐다.

일본에서 K팝 열풍이 대세인 것도, 미일중 3개 시장이 가장 큰 K팝 시장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KBS가 K팝 가수들의 스케줄 조정을 위해 MBC, SBS와 머리 아픈 스케줄 조정을 거쳐야 하는 연말 가요 프로그램을 구태여 일본에서 개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케이블 채널 등이 주최하는 '마마 어워즈'(MAMA AWARDS),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Asia Artist Awards)의 해외 개최도 국내 K팝 팬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하다. 전 세계인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유튜브 시대다. 팬데믹을 거치며 온라인 콘서트마저 성과를 확인한 바 있다.

국내보다 월등한 티켓 값을 고려하더라도 일본 현지 촬영 비용이 곱절은 더 소요되지 않을까. "공영방송 맞나?"란 시청자들의 원성이 나오는 건 자연스런 수순일 것이다.

KBS의 미래 
 
 서울 여의도 KBS 본관의 모습.
ⓒ 연합뉴스
 
KBS의 이상 기운이 감지된 사례는 또 있다. 최근 KBS는 클래식 음악 방송인 1FM 폐지 논란을 해명하느라 홍역을 치렀다. 이번에도 발단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였다. 지난 10일 이후 '수신료 분리징수에 따른 KBS 비상경영 추진(안)'게시물이 큰 호응을 얻었다.

해당 게시물 내용 중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 바로 클래식 방송 폐지 내용이었다. '클래식 방송까지 폐지하는 공영방송'에 대한 비판이 쇄도했다. KBS는 해당 게시물을 이른바 '지라시'로 규정하고 관련 내용을 일축했다. 비상 경영 내용 안에 여러 방안이 검토되고 있지만 외부에 알릴 상황은 아니라는 취지였다.

KBS 지라시로 규정한 'KBS 비상경영 추진(안)'항목엔 '대규모 명예퇴직, 연차촉진 등 인건비 감축, 지역국 광역화, 미니시리즈 및 일일 드라마 폐지, 1라디오(시사)와 1FM 등 일부 라디오 채널 반납'등 실현 가능하거나 논의될 수 있을 만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포함돼 있었다.

향후 KBS가 구체화시킬 비상경영의 청사진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 KBS 가요 대축제 > 일본 개최가 기정사실화되는 과정을 되새길 필요가 있어 보인다. '검토 중'이라는 답변으로 잠시 논란의 소나기를 피한 이후 일본 개최라는 무리수가 현실화되는 과정은 무척이나 상징적이지 않은가.

수신료 분리징수의 현실화 국면을 맞아 공영방송의 역할과 재원 구조, 공공성 자체를 대수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힘을 얻고 있다. 반면 수신료 분리징수가 가져올 공공성의 타격을 진지하게 고민했다기보다 내년 총선이란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현 정권의 정치적 유불리를 따진 폭압이란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개별 프로그램들의 향배는 부차적인 문제다. 상업방송의 길로 들어서게 될 KBS의 공공성은 시청자도, 구성원들도 크게 의식하지 않을 만큼 옅어져 갈 것이다. <다큐 인사이트>를 비롯한 KBS의 무수한 품질 높은 다큐가, <추적 60분>과 같은 사회비판 탐사보도가, <이웃집 찰스>와 같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양 프로그램들이 어느새 채널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김의철 사장의 비상경영 선포와 < KBS 가요 대축제 > 일본 개최가 KBS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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