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인재인 이유
[김형욱 기자]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데이스> 포스터. |
ⓒ 넷플릭스 |
2011년 3월 11일 이른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은 물론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지진의 여파로 섬나라 일본에 초대형 쓰나미가 들이닥쳐 수많은 물적 인적 피해를 양산했고 최악의 원자력 사고로 길이남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불러왔다. 말 그대로 폭발한 것이었다. 25년 전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에 비견되는 참사였다.
10년이 지난 2021년 4월에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오염수를 방류하겠다고 결정했다. 사고 당시 녹아내린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투입한 냉각수와 지하수가 합쳐진 게 오염수다. 물론 최첨단 기술로 핵물질을 제거한 후 바다로 떠나보내겠다는 방침이다. 이 결정은 전 세계적으로 논란을 일으켰고 지근거리에 있는 우리나라에도 당연히 큰 논란을 불러왔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찬반이 나뉘었다.
한쪽에선 인체에 무해하다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선 인체에 유해하다 주장한다. 어느 순간부턴 서로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만 이어져, '진짜' 맞는 얘기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와중에 2023년 7월에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최종보고서를 통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안전기준에 부합한다고 결론 내렸다. 지금 당장 방류해도 이상할 게 없는, 최상위 기구의 허가를 받은 것이나 진배없는 것이다.
사고 이후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니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귀추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시기에 기막히게 부합하는 시리즈 한 편이 나와 세간의 화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데이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안팎으로 들여다본 일본 드라마다.
▲ 넷플릭스 <더 데이스>의 한 장면. |
ⓒ 넷플릭스 |
동일본 지역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지진이 덮친다. 후쿠시마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있었는데, 경보가 발령되며 필수 인력을 제외한 모두가 원전에서 떨어져 있는 면진중요동으로 대피한다. 와중에 15m에 달하는 쓰나미가 몰려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강타한다. 지상은 물론 지하까지 침수되며 발전소 내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 거기에 언제 발전소가 폭발할지 알 수 없다. 제1원전 요시다 마사오 소장이 진두지휘한다.
하지만 정작 총리대신 이하 정부 고위 관리들은 사태를 제대로 알지도 못할뿐더러 조금씩 알아가는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안 하고 있다는 게 맞겠다. 현장을 이끄는 요시다 소장에게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고, 요시다는 개인적으로는 반항하지만 국가공무원으로서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른다. 이미 원전 수소 폭발이 있었고 계속해서 방사능량이 올라가 추가 대폭발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빠른 대응이 필요한데...
한편 원전 내부에 남아 있는 필수 인력들은 목숨을 걸고 조를 짜서 밸브를 개방하기 위해 방사능량이 한계치를 훌쩍 넘어선 곳으로 향한다. 그래야 원전을 다시 가동해 노심 냉각을 위한 냉각수 공급 순환 펌프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요시다 소장이 노심 냉각을 위해 해수를 가져다 쓰는 방법, 소방차로 물을 공급하는 방법 등을 고심하지만 여의치 않다. 과연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운명은?
자연재해 아닌 인재인 이유
잘 알려져 있다시피,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 여파가 일본은 물론 전 세계를 흔들 것이다. 그런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을 보면, 안타깝고 또 아쉬운 부분들이 눈에 띈다. '그때 왜 그런 결정을 해야 했을까?' 하고 말이다. 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닥친 건 자연재해라고 하지만 이후 대응에서 인재라고 하는 이유다.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이라면 단연 원자로를 식히는 데 해수를 발 빠르게 이용하지 않은 것이다. 고위층 입장에선 해수를 끌어오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는 이유였는데,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을 것이다. 결국 비교가 불가할 정도의 차원이 다른 손실을 입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토록 심각한 상황을 총리대신 이하 정부의 핵심 고위층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
이뿐만 아니다. 엉망인 대응이 복합적이었는데, 상하 구조와 분업화가 확실한 일본식 관료주의가 문제의 중심에 있다. 자기 일이 아니면 아예 모르거니와 자연스레 책임을 타 부서 혹은 부하 직원에게 떠넘기는데, 정작 자기 일에 대해 가장 잘 알아야 할 기업의 대표라는 작자가 관료 출신의 낙하산 인사라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무능의 극치이자 총체적 난국.
▲ 넷플릭스 <더 데이스>의 한 장면. |
ⓒ 넷플릭스 |
그럼에도 희망적이었던 건 현장에 있던 이들이다. <미생>에서 한석율이 허구한 날 "현장이지 말입니다"를 외치고 다닌 게 떠오르는데, 현장 직원들은 원전을 살리고자, 나아가 가족들과 지역 주민들을 살리고자 자기 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사지로 나아갔다.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끔찍하리만치 높은 방사능량으로 몸이 어떻게 될지 예상되는 바였다. 그들을 영웅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 지점이 이 작품을 즐기는 데 딜레마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지만 최소한의 각색이 있었을 것이니, 실제의 영웅적인 행동을 조금 더 영웅적으로 분위기 메이킹했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드라마가 드라마일 수 있는 데 '드라마틱'이 중심에 있을 테니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건조하거니와 오버가 거의 없다시피해 작품 자체로는 재미가 없는 축에 속하니 만큼, 미화라고 보기엔 어폐가 있을 수도 있겠다.
4년 전, 명작 드라마로 길이 남을 <체르노빌>이 우리를 찾아왔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더불어 인류 역사상 유이한 국제 원자력 사고 7등급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의 전말을 그린 작품. <더 데이스>는 필연적으로 <체르노빌>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작품성으로 비교하자면 <체르노빌>의 압도적인 승리(?)일 텐데, 그럼에도 <더 데이스>는 만들어진 것 자체로 박수 받아 마땅하다.
사고 직후 검증하고 선언하고 증언하고 책으로, 다큐로, 영화로, 드라마로 만들어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다시금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 야쿠쇼 코지, 타케노우치 유타카, 코히나타 후미요, 코바야시 카오루 등 얼굴만 보면 누구나 알 만한 일본 유명 주조연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논란으로 시끌시끌한 지금, 이 작품을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