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타그램]과거를 보는 망원경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이 지금까지 인류가 관측한 것 중 가장 오래된 활동성 초대질량 블랙홀을 포착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130억 광년 떨어진 곳, 빅뱅 5억7천만년 후 태양 900만배 크기의 블랙홀이라고 했다. 광년은 거리이면서 시간이다. 130억 광년이라고 하면, 130억 년 전의 모습이란 뜻이다. 이토록 머나먼 과거가 우리 시점으로는 현재란 말이다. 지금 그 블랙홀은 어떤 모습일지, 존재하는지 사라졌는지를 알려면 130억 년을 기다려야 된다는, 천문학적 세계관이 필요하겠다.
인류가 최초로 '촬영'한 블랙홀 사진이 공개된 게 불과 얼마 전인 2019년 4월이었다. 익히 보아왔던 상상도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직접 촬영한 첫 사진이라고 했다. 이것을 촬영한 망원경 이름이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이라고 했다(그렇다, 카메라가 아니라 망원경이다). 지구 대륙 곳곳의 전파 망원경들이 촬영한 정보를 합산(합성이 아니라)해서 커다란(지구 크기의) 망원경으로 촬영한 것과 같은 이미지를 얻었다고 했다. 사람의 두 눈이 거리와 입체감을 인지하는 기능을 하듯 지구 대륙 8곳에 떨어져 있는 망원경들은 지구만 한 눈이 되어 머나먼 우주의 천체들을 입체적으로 관측하고 거리를 측정할 수 있게 했다. 하나의 실체가 아닌 여러 망원경이 연결된 시스템과 유무형의 작업공간들과 연산 과정들을 합쳐서 부른 이름이 '사건의 지평선'이다. 장비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개념의 총합인 작전명 같은 것이라 하겠다. 여러 시점의 합(合)으로서 지구 크기 망원경이라는 개념은 과학적이면서 회화적이다. 또한 (우주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차원의 철학적 세계관도 포함한다. 과학은 인간의 상상에서 출발한 우주의 이치를 실체적으로 증명하는 일을 한다. 불가능의 영역에 있는 것들을 가능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과학 기술이다. 그 중요한 자리에 상상이란 것이 있다. 상상은 지금과 여기를 벗어나 나보다 크고 넓은 시각의 세계관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인간의 기술로 드디어 그 까마득한(얼마나 소박한 표현인가) 거리의 우주 한 토막을 실제로 촬영해냈다는 사실과 함께 그 망원경의 이름이 주는 상징과 은유에 마음이 설렜다. '사건의 지평선'은 과학적 사실을 탐구하는 이름이지만, 철학적이고 문학적이었다. '사건'이라는 단어에는 철학의 지분이 크고, '지평선'은 문학적 용처가 많은 명사다. 두 단어가 만나 과학적이고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따라서 인간적이고 총체적인 이름이 되었다. 지평선은 우리가 실제로 바라볼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다.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볼 수 없다. 과학은 볼 수 없는 것들도 다른 방식으로 증명하고 사실을 보여준다. 블랙홀의 실제 모습이라고 보여준 붉은 타원형 빛 테두리 사진은 그동안 봐 왔던 기술적 상상도와 비슷해서 낯설지 않았다. 가설이 틀리지 않았다는 의미다. '진짜'라는 아우라만이 사진을 둘러싸고 묵직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붉은 테두리를 보고 더욱 자신 있게 '블랙홀'이라 부르게 됐다. 과학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에는 수십 명의 과학자가 오랜 연구 결과로써의 사진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현장에서 "붉다(It's Red!)"며 환호하는 장면이 나왔다. 수많은 과학자가 합심해 우리 같은 사람은 봐도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알 길이 없는 다차원 수식을 몇 년에 걸쳐 풀이한 끝에 나온 답이 '붉은색'이다. 숫자도 물질도 아니라 맨눈으로 볼 수 있는, 평범하기까지 한 붉은색 말이다. 수억 광년 저편 우주의 사실이 인간의 감각에 와닿은 결과로써의 붉은색이다.
붉은 테두리 안의 검은 구멍에는 무엇이 있고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직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강한 중력은 빛까지 빨아들인다는 것 정도다. 시공간의 왜곡이라는 범접할 수 없는 전제에서 나는 그것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일을 하는지 피상적으로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더라도 존재하는 사실의 외피인 붉은 테두리는 어쩌면 언어로 도달할 수 있는 시야의 끝과 같다. 검은 구멍 안은 상상이나 가설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붉고 둥근 지평선, 언어의 바깥은 구멍의 안쪽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아도 말할 수 있는 것, 보이지만 말로 다가갈 수 없는 것 모두 언어의 바깥이다. 언어가 도달하는 사물의 바깥, 언어로 도달할 수 없는 세계로서 언어의 바깥은 모두 감각과 상상이 만들어낸 이미지의 일이다. 언어는 바깥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에게 안을 들여다보게 한다. 언어로부터 전이된 감각과 상상, 반대로 감각으로부터 상상을 거쳐 그려진 언어, 모두가 이미지라는 유무형의 세계를 통한 투영이다. 다시 말하자면 번역된 감각이다.
과학 기술은 본다는 것의 의미를 시각적 외형에서 더 확장해 소리나 파동 같은 움직임이나 변화의 모든 조짐을 아울러 인간의 감각에 도달하게 한다. 개념이 상상을 만들고, 상상이 이미지를 만들어 가설을 만들고 과학은 그것들을 실현하고 증명하는 일을 한다. 결국 상상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없다면 인간의 사고와 기대는 실현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최초의 블랙홀 사진이 공개된 지 3년 후에는 ‘사건의 지평선’은 우리 은하계의 중심에 있는 또 하나의 블랙홀을 촬영해서 보여주었다. 우리 은하계의 크기라는 것이 상상으로도 가늠이 안 되지만 그 중심에 블랙홀이 있다는 사실(혹은 사건)은 경이롭다. NASA는 최신 우주 망원경 제임스 웹으로 촬영한 우주 사진을 계속해서 공개하고 있다. 이전 사진들보다 훨씬 선명하고 깊고 더 많은 별과 은하들이 보이는 새로운 사진들이다. 거리는 시간이고 빛은 시간을 전달하는 매개체다. 과거는 빛이라는 그릇에 담겨 멀리 미래라는 다른 시간으로 배달된다. 시간도 빛도 그래서 아득한데 숫자는 구체적이다. 과거라는 생각의 마차를 타고 돌아가 우리가 먼지 한 톨도 아니었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생각하면 더욱 아득하다. 과학과 기술은 우리에게 점점 더 오래된 과거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보여주는 것을 넘어 데려다준다. 과거는 지나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점점 우리 눈앞에 가까워지고 선명해진다. 선명한 사진으로 나타나 "과거는 지금이다"라고 말한다.
편집자주 - 즉각적(insta~)이지 않은(un~) 사진(gram)적 이야기, 사진의 앞뒤와 세상의 관계들에 대해 천천히 생각하고 씁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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