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인기 최고... 여성농악단 시초가 여기랍니다

이완우 2023. 7. 2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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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여성농악단의 12발 상모놀이 공연한 박복례씨를 만나다

[이완우 기자]

 12발 상모
ⓒ 이완우
 
남원 광한루원이 여름철 무성한 왕버드나무의 숲으로 푸르다. 광한루원의 연못에는 지리산에서 흘러온 요천(蓼川)의 냇물이 유입된다. 오천 강변은 예로부터 습지 식물인 여뀌가 군락을 이루어 여름철에 피어나는 진분홍빛 꽃차례가 인상적이었다. 여름밤의 초저녁에 반딧불이가 깜박거리며 허공을 가르는 요천의 풍경은 잊을 수 없다.

지리산을 배경으로 요천의 맑은 물이 흐르는 남원 광한루원은 판소리 춘향가와 고전소설 춘향전의 주요 무대이다. 이곳은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 수백 년간 판소리를 비롯 이 지역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재창조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장맛비가 잠시 멈추고 햇살이 밝은 지난 19일 오후에 남원 지역의 향토 사학자 강경식씨를 광한루에서 만나서 이 지역 전통문화의 역사를 알아보았다.
 
 대담 장면(박복례 씨와 강경식 씨)
ⓒ 김태윤
 
1960년 전국 최초의 여성농악단이 남원에서 결성되었다. 광한루 경내에 있던 남원국악원의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 운영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남원여성농악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해 3월 26일~27일에 농악의 전통 보존과 계승을 위하여 제1회 전국농악경연대회가 서울운동장(야구장, 현재 동대문디자인센터 자리)에서 열렸고, 이 대회에서 남원여성농악단이 참가하고 우승하여 여성 농악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활짝 열었다.

남성 중심의 농악에서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농악단을 만들어 전국대회에 출전하였으니 대단한 도전이고 창의적인 발상이었다. 혜성처럼 나타난 남원여성농악단은 시대를 앞서간 걸그룹이었고 그 활약은 참신한 충격을 주었다. 

남원여성농악단은 전국대회 우승 후에 30여 명의 공연단을 구성하여 전국 순회공연을 하였다. 전국 각 지역에서 공연 계약을 하기 위하여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한다.
 
 명창 안숙선 기념관과 조갑녀 살풀이 명무관
ⓒ 이완우
 
1960년 전국 최초로 남원 지역에서 광한루를 구심점으로 한 예술적인 전통 토양에 바탕을 두고 결성한 여성농악단은 전국 순회공연을 하면서 '포장 걸립'이라는 새로운 공연 문화를 활성화 하였다.

농경문화가 생활의 중심이었던 그 시절에는 마을마다 주민들로 구성된 풍물패의 길굿과 판굿이 일상적 풍경이었다. 마을마다 정월보름날 등에 행해지던 걸립굿을 남원여성농악단은 여러 지역으로 이동하며 상업적으로 농악단 공연을 하는 '포장 걸립'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포장 걸립'은 강변이나 공터에 포장(천막, 휘장)을 담장처럼 둘러서 공연장을 만들고 입장하는 관객들에게 입장료를 받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판소리, 창극과 농악 공연을 하는 형태였다. 때로는 외줄타기 등도 공연했다고 한다.

이 시절에 서커스나 판소리를 공터 마당에 천막을 치고 행하는 공연은 인기 있는 행사였다. 그러나 걸립굿 형태를 '포장 걸립'으로 발전시켜 공연을 시작한 것은 남원여성농악단이 최초였다.
 
 12발 상모놀이 준비
ⓒ 이완우
 
남원여성농악단의 순회공연이 성황을 이루자, 1961년에는 남원 지역에 춘향여성농악단이 추가로 결성되었고 전국적으로 여러 지역에서도 여성농악단이 생겨났다.

광한루에서 가까운 곳에 60여 년 전에 남원 여성농악단으로 활동한 분이 살고 있었다. 강경식씨의 안내로 1961년에 춘향여성농악단에 참여하여 12발 상모놀이를 공연한 박복례(남원시 쌍교동, 78세)씨를 만났다.

박복례씨는 강경식씨와 대담하며 60여 년 전에 15세의 나이로 여성농악단 활동을 추억하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포장 걸립으로 징, 꽹과리, 소고, 장구를 치며 판굿을 시작하면 어깨춤이 들썩여지고 신명이 났지요. 12발 상모놀이를 공연하면 인기가 제일 많았고 관중석에서 환호가 나왔어요. 머리에 쓴 상모에 달린 긴 띠가 고갯짓과 몸짓에 따라 겹겹이 원을 그리며 하늘을 날아서 움직이면 황홀했지요. 12발 상모놀이를 연습할 때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기도 했어요. 상모의 긴 끈을 돌리려면 끈의 첫머리가 조금 무거워야 하는데 그때는 자전거 체인 토막을 달았어요. 연습하다가 이게 허리에 감기기라도 하면 얼마나 아팠는지요."
 
 잔디밭 12발 상모
ⓒ 이완우
 
박복례씨는 광한루 인근의 명창 안숙선 기념관과 조갑녀 살풀이 명무관의 마당에서 채상이라고 하는 12발 상모놀이를 잠시 시연하였다. 한여름의 햇볕이 뜨거운데 80세에 가까운 박복례씨가 전립을 갖춰 입고 상모를 썼다. 고갯짓 한 번에 12발 띠가 공간을 가르며 더운 날씨의 마당을 가득 채웠다.
12발 상모놀이는 여성농악대 공연에서 제일 인기가 많았다. '포장 건립'의 공연에는 꼭 들어가야 했다. 박복례 씨의 12발 상모놀이의 짧은 시연으로도 12발 상모놀이가 농악대 공연의 핵심 공연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12발 상모놀이는 남성들도 어렵다고 하는데 여성농악대에서 거뜬히 공연하였으니 박수를 받을 만했다.
 
 12발 상모놀이 시연 준비
ⓒ 이완우
 
박복례씨는 12발 상모놀이의 주역이었지만, '포장 걸립'의 진행 순서로 춘향전 창극을 공연할 때는 '후배 사람'이라고 방자 밑에 있으면서 방자를 건드리며 해학적인 언행을 구사하는 역할도 하였다고 한다. 춘향전의 중심 인물인 성춘향과 이도령의 조연으로 방자와 향단이가 있는데, 방자와 향단을 다시 조연하는 '후배 사람'이라는 역할이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되었다.

남원여성농악단과 춘향여성농악단은 남원 광한루를 거점으로 하는 조선시대의 남원부 교방과 일제강점기의 남원권번을 거쳐 남원국악원으로 이어지는 전통문화의 역사적인 흐름과 토양에서 결성되었다.

남원 광한루에 춘향사당을 짓고 제향을 올려 전국 최초의 지역 축제인 춘향제를 1931년에 태동시키는 데 최봉선씨가 중심 역할을 했다. 최봉선씨의 춘향 사랑 정신과 춘향제 제의의 전통이 1960년의 남원 지역의 두 여성농악단 출발의 바탕이 되었다. 남원 지역 여성농악단에서 출발한 전국적인 여성농악단의 활동은 농악을 대중화하는 역할을 하면서 공연예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남원 광한루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토양으로 태동한 여성농악단의 활동 상황을 알아보고 12발 상모놀이의 시연을 보니 감동적이었다. 남원 여성농악단의 활동과 역사는 더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12발 상모놀이 시연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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