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전형적인 바비'와 '이상한 바비' 모두 필요하다
[고은 기자]
▲ 영화 <바비> 포스터 |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켄은 그냥 켄"
올바르게 번역된 포스터 속 카피 문구를 본다. 영화 <바비> 포스터 개봉 당시 '바비는 모든 것(Barbie is everything)'을 그냥 '바비'로 오역하고 '대법관 바비', '의사 바비' 포스터를 누락시켜 논란을 불렀던 게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다. 영화 <바비>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개봉하기도 전에 '모든 바비의 목소리'를 소거시켰을지 궁금했다. 걱정 섞인 기대가 무색하게 영화는 넓은 품으로 모든 관객을 끌어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바비의 드림하우스를 두 손가락으로 쭉 확대해 옮겨 놓은 세트장과 화려한 춤이 더해진 경쾌한 OST까지. 이야기와 볼거리 모두 충분한 영화다.
▲ 영화 <바비> 스틸컷 |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영원히 까치발을 딛고 살아가는 '바비'들이 있다. '바비랜드'에 사는 모든 바비 중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바비가 있다는데... 바로 배우 마고 로비가 연기한 '전형적인 바비'다.
'전형적인 바비'는 '바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가진 인형이다. 8등신 기럭지에 굴곡이 강조된 몸매, 윤기 나는 금발에 하얀 피부로 대표되는 서구의 미인상이다. 1959년, 세상에 존재를 알린 '바비'는 그동안 아기 인형으로 육아 시뮬레이션을 하던 여자 아이들을 해방시켰다.
그러나 혁명적인 첫 등장과 환호도 잠시였다. 페미니즘이 확산되면서 '전형적인 바비'는 외모지상주의 속에 어린 여성들을 옥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인형이 재현하는 여성의 성역할이 '엄마'에서 '사치하는 젊은 여성'으로 이동한 것 또한 문제였다.
마텔사는 이러한 비판을 돌파하기 위해 다양한 인종과 획일화된 미의 기준에서 벗어난 바비들을 출시하며 소비자의 호응을 다시 얻는다. 과학자, 운동선수, 의사 등 폭 넓은 직업인 바비의 등장은 '성 상품화'와 '제한적인 성역할'이라는 딱지를 조금은 벗겨낸 것 같다. 지난해 마텔사는 바비 브랜드로만 2조 원에 근접한 매출을 올리며 건재함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바비들이 시대를 거치며 사랑받는 동안 모든 미움과 증오를 떠안은 '전형적인 바비'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영화 <바비>는 '전형적인 바비'가 세상을 여행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백치미, 머릿속 꽃밭이라고 폄하되는 '전형적인 바비'에게 '죽음'이라는 철학적 사고가 끼어들면서 모든 일상이 흔들린다.
하이힐에 딱 맞는 까치발이 평평해지고 허벅지에 셀룰라이트가 붙으며 인형다움(완벽함)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단단히 큰일 났음을 직감한 바비는 해결의 실마리가 있는 '현실 세계'로 건너간다. 모든 바비들 중 생존 능력도, 사회적 지위도 가장 없어 보이는 바비의 여정이라니. 그가 새로운 세상을 통과하며 느낄 감정과 성장을 기대하며 응원을 보내게 된다.
▲ 영화 <바비> 스틸컷 속 '이상한 바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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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바비'가 평평한 발이 되자 다른 바비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이상한 바비를 찾아가!". 이상한 바비는 정말 이상했다. 사방으로 뻗친 짧은 머리에 삐삐 롱스타킹 같은 원피스와 부츠를 입고 신은 채 다리를 쭉쭉 찢는다. 가장 큰 반전은 그가 사실 '전형적인 바비'였다는 것. 가지고 놀던 아이가 가위로 머리를 자르고 온몸에 낙서를 한 결과 '이상한 바비'로 재탄생했다.
그가 마텔사의 완제품이 아니라 험한 아이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바비여서일까. 그는 '바비랜드'와 '현실세계'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아이의 인형 놀이는 인형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투영하는 과정인 만큼 전형적인 바비의 '죽음' 생각은 아이에게서 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바비는 모험의 여정에 무임승차한 켄을 데리고 아이가 사는 현실 세계로 간다.
바비가 현실에서 아이를 찾는 동안 켄은 남성이 지배하는 세계에 매료되어 정신을 못 차린다. 바비가 아이를 찾아 다시 바비랜드로 돌아갈 때 켄은 가부장제를 품에 숨겨온다. 바비가 돌아왔을 때는 한 발 더 민첩했던 켄이 이미 가부장제를 바비랜드에 퍼뜨린 뒤였다. 바비의 드림하우스가 켄의 매력하우스로 바뀐 '켄랜드'를 목격하고 바비는 크게 좌절한다. 이때 집 앞에 쓰러져 있던 바비를 들쳐 옮긴 인물은 다름 아닌 '이상한 바비'다.
신기하게도 이상한 바비는 '바비랜드'와 '켄랜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바비 사이에서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바비, 켄 사이에서는 트로피 애인으로 둘 의향도 없는 바비가 바로 '이상한 바비'다. 그는 제도권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가부장제에 대한 면역 없이도 켄랜드에 세뇌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기울어진 현실을 제대로 체험하고 온 '전형적인 바비'는 면역 덕에 살아남고 '이상한 바비'와 현실에서 건너 온 워킹맘 글로리아와 연대해 '바비랜드'를 되찾는다.
영화는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퀴어한 바비를 통해 주류가 아닌 생각이 제도권에 균열을 내거나 혼란한 세상에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전한다. '이상한 바비'의 전신이 '전형적인 바비'였다는 반전은 양극단에 놓였다고 오해받는 두 여성이 사실 위기의 순간 단단히 손잡을 만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해주는 것 아닐까?
▲ 영화 <바비> 예고편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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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는 모든 이들의 생각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다. 마텔사가 바비랜드의 플라스틱 도로를 깔았다면 아이들은 집을 짓고 옆집 바비에게 경쾌한 안녕을 건네며 일상을 만들어 갔다. 가상의 세계에서 "바비는 모든 것!"을 외치던 아이들이 정작 커가면서 켄이 중심인 세상에 타협해야만 하는 모순을 떠올린다.
누구보다 연약해 보였던 바비가 자아를 찾아 자신의 엔딩을 선택하는 결말은 '걸스 캔두 애니띵'을 새로 쓴다. 멀리서 보면 영화 <바비> 또한 커다란 생각 단위이자 상상이다. 이 판타지가 스크린 넘어 현실의 굳은 생각을 조금은 말랑하게 해주기를. 생각의 틀을 깨는 모든 여성에게 따뜻한 위로로 닿기를 바라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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