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비야 제발 그쳐라... 작전판 대신 하늘만 보는 이정효 감독

서호정 기자 2023. 7. 2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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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최근 이정효 감독은 하루의 시작을 날씨 애플리케이션과 함께 한다. 많은 비가 예보되면 걱정이 앞선다. 집중호우 피해를 본 이재민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광주FC 역시 장마 기간에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못하는 피해자다. 훈련 인프라 문제 때문이다. 


광주는 3곳의 훈련장을 사용한다. 광주월드컵경기장을 일주일에 1~2차례 쓰고 나머지는 광주축구센터의 천연, 인조잔디 각 1면을 번갈아 쓴다. 홈인 광주축구전용구장은 경기를 위한 잔디 관리 때문에 거의 쓰지 못한다. 


문제는 광주축구센터다. 2020년 3월 옛 염주양궁장 부지에 개장한 이 곳은 여름철 많은 비가 오면 사실상 사용 불가다. 배수 문제로 인해 빗물이 빠지지 않고 고인다. 비가 오는 날은 물웅덩이가 곳곳에 생겨 제대로 된 훈련은 불가능하다. 비가 그치면 높아진 기온으로 물에 고여 있던 잔디가 썩는 괴사 현상이 발생한다. 


광주축구센터는 창단 후 줄곧 인프라 문제에 시달린 광주FC의 희망이었다. 2017년 말 광주시 종합건설본부가 모 건설업체와 잔디구장 조성사업 계약을 체결, 이듬해 착공해 2019년 초 준공했다. 하지만 준공 직후부터 하자 문제가 이어졌다. 첫해부터 천연잔디구장의 1/3이 괴사해 논란이 됐다. 광주 구단은 2021년에야 사용을 시작했다. 인조잔디 구장은 프로팀과 유스팀이 함께 쓰는데 이 역시 상태가 좋지 않다. 


광주축구센터의 위탁운영을 맡고 있는 광주시체육회는 건설업체에 하자보수를 잇달아 요구했지만 그 이후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현재 시체육회와 건설업체는 책임 소재를 놓고 갈등이 커져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릴 분위기다. 


문제는 당장 훈련을 하고, 경기를 준비해야 하는 광주 선수단이다. 일주일 내내 비가 쏟아진 지난주에는 실내 훈련만 해야 하는 날이 있었다. 좁은 복도에서 실내용 사이클을 타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이정효 감독은 속으로 화를 삯혀야 했다. 광주는 전지훈련이 아니면 하루 2회 훈련이 불가능하다. 1군 선수들도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비주전 선수들을 위한 맞춤 훈련은 언감생심이다.


6월에 3승 1무를 기록했던 광주의 리그 성적이 7월 들어 3무 1패로 180도 돌변한 것도 이 같은 사정이 무관하지 않다. 최근 이정효 감독은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운동장이 없으니 선수들을 성장시키기 어렵다"라고 토로했다. 말 그래도 훈련조차 할 운동장이 없다.


광주 구단도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단 축구 인프라가 좋은 호남대학교에 요청을 해 잔디 구장 1면의 사용 허가를 어렵게 받아냈다. 하지만 하루 사용료가 백만원 수준이고, 훈련 외에 선수 대기실이나 샤워실은 전용구장으로 돌아와서 써야 한다. 버스로 이동하는 데만 왕복 1시간 넘게 소요된다. 긴 이동 거리는 훈련 후 선수들의 근육에 쌓이는 젖산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대다수 지도자가 피하는 부분이다. 


광주시는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구단주인 강기정 시장이 조속하게 문제를 해결, 광주FC를 도우라는 지시를 했다. 당초 2025년 세계양궁선수권에 맞춰 전면 재보수 공사를 계획했던 시체육회도 일단 건설사와의 법정 시비는 별개로 예산을 꾸려 이번 하반기에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구단주의 관심으로 공사 타이밍을 앞당겼지만, 당장 훈련과 경기 준비 문제는 해소가 어렵다. 


시민구단의 현실과 한계라는 지적도 있다. 광주는 클럽하우스가 없다. 전용구장을 지으며 본관에 선수단 숙소와 식당, 운동기구를 배치할 작은 공간을 얻었지만 휴식과 훈련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클럽하우스라 말할 수준은 아니다. 준비, 훈련, 휴식을 원스톱으로 진행하는 것이 클럽하우스의 존재 이유인데 광주는 훈련장을 찾아 헤맨다. 그나마 있는 훈련장 시설 역시 위탁 운영 주체가 구단이 아니기 때문에 답답해도 직접 보수하는 것이 어렵다. 여름철만이라도 광주축구전용구장을 주 2회 가량 사용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조치를 취하면 되는데 그 역시 구단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광주FC는 세번째 승격에 성공한 올 시즌 팀 역사상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K리그의 전반적인 호조도 있지만 이정효 감독이라는 개성 강한 지도자와 충실한 내용의 축구가 팬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힘든 상황에서도 리그 6위를 유지하며 파이널A 진입을 위한 싸움을 이어가는 중이다. 

홈, 원정에 많은 팬들이 발걸음을 이어가 축구 불모지 탈출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이미 6월까지의 티켓, MD 판매 수입으로 구단 역사상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물이 들어올 때 더 힘차게 노를 저어야 하는데 노는 커녕 선수들이 타고 가야 할 배가 부실하다. 작전판과 개인 컴퓨터를 보며 분석에 몰두해야 하는 이정효 감독은 하늘만 바라보며 비가 그치길 빌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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