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어린이와 놀이공간] 도시화와 함께 등장, 시작은 모래 상자
1800년대 프뢰벨(1782~1852)과 같은 교육학자들은 루소나 페스탈로치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어린이가 모래나 물 같은 자연 요소를 가까이 접하며 자유롭게 놀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뢰벨이 아이들을 위한 최초의 교육시설 ‘킨더가르텐’(유치원·1837)을 설치한 것도 이 무렵이다. 비슷한 시기 베를린의 공원에는 아이들의 놀이를 위한 모래 더미가 설치되곤 했다.
세계 최초의 공공 놀이터는 1859년 영국 맨체스터의 한 공원에 들어섰다. 당시 영국은 식민지를 통해 확보한 시장과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산업혁명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었다. 도시마다 산업시설이 빽빽이 들어서고,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기 시작했다. 한창 배우고 자라나야 할 아이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공간도 점차 사라졌다. 도시화와 아동 인권에 대한 문제 인식이 싹트면서 공공복지 차원에서 놀이터에 관한 관심이 증대되기 시작했다. 공업이 번성한 영국 제1의 산업도시 맨체스터에 세계 최초의 공공 놀이터가 생겨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편 독일에서는 모래 놀이장이 학교와 가정 등에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자주 보이던 모래 상자는 여성과 아동의 인권에 관심이 많던 한 독일계 미국인에 의해 미국에 소개된다. 그의 주도로 1886년 미국 보스턴 일대에 놀이를 위한 모래 더미가 놓였다. 당시 미국에서 sand garden이라고 불리던 모래 상자는 이후 playground로 명칭이 바뀌며 현대적 놀이터의 시발점이 된다.
이듬해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근처에도 그네와 미끄럼틀 등을 갖춘 현대식 놀이터가 만들어졌다. 미국 최초의 상설놀이터다. 시카고, 텍사스, 뉴욕 등 미국 전역에 놀이터 설립 붐이 일었다. 1906년 루스벨트 대통령을 명예회장으로 하는 놀이터 협회가 설립됐다. 이처럼 유럽과 미국이 놀이터에 관심을 가진 것은 산업화 가속화로 이민자가 증가하고, 도심 속 아이들의 놀 공간이 점차 축소되는 사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모래 상자 단계를 넘어선 초기의 놀이터들은 지금과 그 형태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네, 미끄럼틀, 시소를 기본으로 회전 놀이기구와 공중 놀이기구, 오르기 기구 등이 설치됐다. 초기 놀이기구들은 높이가 높고 안전장치가 미흡했다. 높이가 4~5m에 달하는 기구가 부지기수였다. 미끄럼틀은 지금과 달리 양옆에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대가 없이 긴 널빤지 형태였다. 그네는 지금보다 훨씬 다양했다. 바이킹 모양의 그네, 옆으로 흔들리는 그네, 요람 같은 그네, 높은 그네 등 여러 형태를 띠었다.
1900년대 초반 나타났다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사라진 놀이기구도 있다. 자이언트 스트라이드다. 기둥 위에 손잡이가 달린 밧줄이 매달린 형태다. 여러 명이 각각 손잡이를 잡고 회전하는 방식이다. 속도가 빨라 손아귀에 힘이 약한 아이들은 떨어져 나가기 일쑤였다.
1920년대 미국에선 정글짐이 인기를 끌었다. 원숭이 본능을 충족시킬 수 있는 놀이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한 미국인이 고안해 특허를 취득했다. 바닥 면적이 좁은 수직 구조물에 여러 아이가 놀 수 있고, 다양한 신체 근육을 발달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뉴욕에만 수백 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추락 위험 때문에 거의 사라졌다.
1943년엔 세계 최초의 모험 놀이터가 덴마크 코펜하겐 엠드럽 주택가에 등장했다. 아이들의 놀이는 자연 요소만으로 부족하고 어른의 일과 생활 기술을 흉내내며 습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 몇몇 이들이 중심이 됐다. 놀이 재료는 폐목재, 버려진 벽돌, 버려진 천, 폐타이어 등이었다. 놀이터의 역사는 사회 운동과 흐름을 같이 했다. 아동 인권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 박애주의자들이 놀이 공간의 필요성을 주창했고, 사회개혁가와 자연주의자들이 놀이터 운동을 이끌었다. 모험놀이터 역시 전후 기성세대에 저항한 젊은 68세대의 자유의 정신을 타고 유럽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엔 1957년 9월 16일 자 대한뉴스에 대전 어린이 놀이터 신설 소식이 실렸다. 충남 경찰국에서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마련했다는 내용이다. 뉴스 화면에는 그네, 미끄럼틀, 회전 놀이기구 등이 보이고, 한복을 입은 엄마와 아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모습이 담겼다. 1963년에는 서울 남산 어린이 놀이터가 개장했다.
한국의 놀이터 역시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도시 공간이 재정비되기 시작한 시기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후 1970년대 대규모 주택공급 정책과 함께 지금의 획일화한 형태로 전국에 보급됐다.
1990년대엔 기존 놀이터의 시설 현대화 사업이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놀이시설물은 기존과 유사하지만 철제에서 목재로 재료가 바뀌었다. 2000년대엔 섬유 강화플라스틱이 놀이시설의 재료로 이용되면서 디자인이 화려해졌다.
2010년 이후에는 기존의 놀이터가 단조롭고 지루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모험놀이터, 창의놀이터, 자연놀이터 등 다른 형태의 놀이터가 증가하고 있다. 주 이용자인 아이들이 설계 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제시하는 아동참여형 놀이터도 생겨났다. 전체적인 놀이터 환경을 아이들의 요구와 지역 여건에 부합시키려는 노력이 중요시되고 있다.
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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