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문화정책 성토한 실험영화페스티벌 개막선언

성하훈 2023. 7. 2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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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박동현 집행위원장, 오세훈 서울시 문화 행정 작심 비판

[성하훈 기자]

 20회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EXiS) 개막식이 열린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 성하훈
 
"윤석열 대통령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겠다'는 유네스코가 제안한 팔길이 원칙을 윤석열 정부 문화정책의 기본으로 잡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서울개최영화제 보조금 지원사업'에서 모호하고 납득할 수 없는 심사로 서울국제영화실험영화페스티벌을 배제했다."

20일 저녁 서울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 막을 올린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아래 EXiS) 개막식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문화 행정에 대한 성토로 채워졌다. 개막선언을 위해 단상에 오른 박동현 집행위원장은 "스무 살 성인이 돼 축하받을 영화제인데, 그렇지 못하다"며 아쉬움을 전한 뒤, 준비한 성명서를 읽어 내려갔다. 평소 간단하게 개막선언을 했던 것과는 다르게 역대 가장 긴 개막선언이기도 했다.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은 2006년부터 17년간 서울시로부터 꾸준히 지원을 받아왔으나 올해는 '서울개최영화제 보조금 지원사업'에서 예외적으로 탈락했다. 평년 대비 1억 정도의 예산이 사라지면서 올해 개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관련 기사 : 20회 맞은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서울시는 홀대 https://omn.kr/24v6y)

"서울시가 함께 쌓아온 성과 무너뜨려"

박동현 집행위원장은 "실험영화를 전문으로 하는 국내 유일의 영화제이자, 아시아 최대최고의 실험영화축제인데, 그동안 서울시가 EXIS와 함께 쌓아온 성과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점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제를 통해 영화 예술의 기초가 되는 실험영화를 발굴하고, 배급, 아카이빙하는 공적인 역할을 지난 19년 동안 지속해왔고, 국제경쟁영화제로서 국내외 새롭게 창작되는 실험영화를 소개하는 장이나, 작가, 연구자, 교육자, 큐레이터들의 토론과 문화교류의 장으로 역할을 해왔다"면서 "지금까지 서울시의 지원은 이러한 실험영화의 공적인 역할에 대한 이해 속에서 이루어져왔다는 점에서 이번 예측불허의 급작스러운 결정은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개막선언을 통해 서울시 문화 행정 비판하고 있는 박동현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집행위원장.
ⓒ 성하훈
 
특히 "올해 보조금 지원사업은 기존의 지원영화제 외에도 기초자치단체의 문화행사로서의 영화제, 특정 분야의 캠페인성 행사로서의 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에 대한 지원으로 확대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탈락했다"면서 "비상식적이고 돌발적인 배제에도 합리적 이해와 타당한 설명 없이. 심사 결과에 대해 처음 들었던 말은 '정량평가의 영점 몇 점 차이로 탈락시켰다는 것' 하나뿐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동현 집행위원장은 보조금 심사과정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정보공개요청을 통해 받은 심사자료에서 확인한 것은 영화제의 전문성과 이해 없는 평가지표, 영화제 운영에 대한 고려가 없는 기계적인 정량평가, 영화제와 무관하고 이해는 물론이고 전문성이 없는 심사위원 구성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영화 관련 전문가 한 명 없는 심사위원 구성과 영화제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심사지표에 우리는 심사의 공정성, 형평성, 적합성, 전문성, 객관성에 문제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심사 기준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영화제 개최의 운명이 달린 해당 지원사업의 면접 PT에 주어진 시간은 단 10분이었고, 정량평가 지표 중 하나였던 '전년대비 관객수 증가율 또는 상영작 수 증감률'은 5점 만점에 1점이었다"며 "기준점을 알 수 없어 문의한 결과 만점인 5점이 되려면 전년 대비 관객 증가율이 15% 이상이 돼야 한다는 답을 받을 수 있었으나, 오랜 역사를 지닌 영화제는 극장이라는 한정된 환경으로 인해 상영작품 수와 관객 수의 증가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반문화적, 반지성적 관료행정의 결과"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의 반발은 단순히 지원사업 탈락에 대해 해명만을 요구하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국제적 위상과 가치를 쌓아온 공공의 문화자산으로 안착된 EXiS의 존폐를 서울시의 자의적 판단과 방향 없는 문화정책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반문화적, 반지성적 관료행정이 낳은 결과로 본다"는 입장처럼, 서울시 문화행정에 대한 불신을 담고 있다.

정산을 제대로 안 했다거나 보조금 유용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랜 시간 지속된 영화제의 지원을 끊는다는 것은 납득하기 쉬운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심사를 거쳤다고 해도 전문성을 인정할 수 없는 인사들이 참여했다면 불신을 살 수밖에 없다.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향해 "문화도시란 단지 랜드마크로 불리우는 건축물 몇 개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라며 "서울시의 문화정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했다.
 
 20일 저녁 20회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EXiS)개막식이 끝난 후 서울시 문화행정을 비판하는 성명서에 연명하고 있는 관객들
ⓒ 성하훈
 
박동현 집행위원장은 '영화제를 지원하는 것은 서울시민들이 문화적 기회를 얻는 것이지 서울시가 시혜를 베푸는 것은 아니다'라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많은 분들이 도움을 줘서 행사를 개최할 수 있게 됐다"고 고마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개막식에 참석한 대부분의 관객들은 개막식이 끝난 후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의 성명을 지지한다는 연명에 참여했다. 한 대학 영화과 교수는 "서울시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예전 작품을 출품했던 감독 역시 "지원사업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면서 "실험영화를 조금이라도 알고 나면 우리의 생각과 상상은 그 다음 단계로 자유함에 용기를 낼 수 있게 된다"고 EXiS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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