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가져다 준 삶의 지혜

최승우 2023. 7. 2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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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승 사진 작가에게 원경, 중경, 근경으로 찍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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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우 기자]

 이명승 작가의 사진 작품
ⓒ 이명승
 
지긋지긋하게 내리던 장맛비가 잠시 그쳤다. 전주천의 물길은 그동안 내린 빗물이 모여 거친 물길을 쏟아내고 있다. 천변 길은 물폭탄의 흔적을 여실히 남겨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병, 뿌리가 잘린 나뭇가지와 한쪽으로 쏠린 풀잎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도서관 풀밭은 물 먹은 스펀지처럼 질퍽하고 버들 마편초는 빗물의 거센 공격에 굴복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전주의 특성화 도서관 네 곳은 7월부터 12월까지 후반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도서관 팀장님의 권유로 '예술 동네 길을 만나다. 마을 강연'에 참석했다. 행사의 첫 시작은 사진 작가와 '예술가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서학동 예술 마을은 2010년경부터 예술인이 이주하기 시작했어요. 한옥 마을이 활성화 되면서 집값이 오르고 정주하고 있던 예술인이 서학동으로 대거 이사오게 됐습니다."

칠십 중반을 넘긴 작가는 서학동의 산 증인이라며 서학 예술 마을의 역사를 전해준다. 작가의 이야기 속에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지방의 작은 도시 전주에도 예외없이 벌어졌다는데 씁쓸함이 다가온다.

작가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사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2000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해 각종 행사의 단체 사진을 담아주는 봉사 활동을 했다고 한다. 경험이 쌓이면 지식이 된다. 작가는 사진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기술이 전무한 채 생활 속의 사진을 찍다 보니 사진에 대해 알게 됐고 사진 작가가 되었다며 소탈한 웃음을 짓는다.

"2019년 사진 전시회를 가졌습니다. 사진 찍은 장소를 돌아보니 아버지와 겹쳤습니다. 그래서 전시회명을 '아버지의 공간'이라고 지었어요."

아버지와 사진 찍는 장소가 같았다는 것은 물리적·심리적으로 근접한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고 그것이 가족이 아닌가 생각한다. 작가는 첫 사진 전시회명을 '나의 공간' 혹은 '아들의 공간'이라고 이름지을 수 있음에도 애써 '아버지의 공간'이라고 이름 지었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전한 것 같아 따뜻함이 느껴진다.
  
 이명승 작가의 사진 작품
ⓒ 이명승
 
"사진을 왜 찍냐? 물건이 있으니까. 사진은 순간 포착입니다. 준비와 함께 운도 따라야 해요"라며 지금도 일상에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며 준비하는 자세의 가르침도 전해주신다.

"사진은 빛과 어둠이 없다면 찍지 못합니다. 예술을 하면서 세상의 조화를 알아갑니다."

모순되는 빛과 어둠이 조화를 이루어 사물의 실체를 구현한다는 오묘한 진실이 인생의 가르침으로 스며든다.

작가는 멀리 보이는 경치, 중간 정도에서 보이는 경치, 가까이 보이는 경치 즉 원경, 중경, 근경으로 사진을 찍어보라며, 사진을 찍는 경험 속에 사진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원경, 중경, 근경의 사진 찍기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원경과 중경 그리고 근경으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짐짓 복잡하고 힘든 상황을 남의 일처럼 먼발치에서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애매모호한 자세를 취한채 여기 저기도 아닌 척 하지 않았는지, 눈 앞의 작은 이익에 옆은 돌아보지 않은 터널 시야로 살아가지는 않았는지 여러 가지 생각이 겹친다.

전체를 조망하고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작가는 누군가가 찍어야 하는 단체 사진을 촬영하느라 정작 단체 사진 속에 자신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누군가를 기록하기 위해 기록의 저편에 서서 홀로 남은 자가 되었다. 그러나 단체 사진 속의 많은 사람은 단체 사진을 대할 때마다 작가의 노고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고마움과 감사함은 마음속 깊은 곳에 각인되기 마련이니까.

이래저래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 분명하다. 계획에 없던 사진 강연에 참석해 사진 찍는 법과 인생의 지혜도 얻었다. 오늘은 마음속에 한 컷의 사진이 찍힌 날이다. 우연이 가져다준 행운이다.
  
 이명승 작가의 사진 작품
ⓒ 이명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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