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의 룰 변경, 케이팝에 대한 견제일까?

이현파 2023. 7. 2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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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사이트 다운로드' 제외, 빌보드의 결단

[이현파 기자]

 빌보드 차트 로고
ⓒ Billoard
 
케이팝의 위세가 어느때보다 국제적으로 확장된 지금이다.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 곡을 6개나 보유했고, 걸그룹 블랙핑크는 올해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공연했다. 국내 팬들의 시야에서 멀어졌던 트와이스는 미국의 스타디움 공연장을 매진시키고 있다.

이제 신인 아이돌 그룹들은 국내 시상식 대상이나 1위가 아니라 빌보드 차트 입성을 버킷 리스트에 꼽는다. 여러 국내 아이돌 그룹이 빌보드 핫 100 차트와 빌보드 200 차트(앨범 차트)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제법 많이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풍경이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최근 빌보드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D2C(Direct to consumer, 소비자 직접 판매) 사이트를 차트 집계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D2C는 특정 아티스트가 자신의 음원, 음반만을 판매하는 공식 온라인 스토어다. 테일러 스위프트, 아리아나 그란데, 저스틴 비버 등의 영미권 팝스타는 물론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스트레이키즈 등의 케이팝 아티스트들도 이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빌보드 핫 100 차트는 음원 스트리밍, 라디오 재생횟수, 유튜브, 싱글 판매량과 다운로드 판매량 등을 합산하여 산출된다. 2022년 미국 음반 산업 협회 RIAA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의 음악 감상 문화를 주도하는 것은 스트리밍이다. 전체에서 84%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이다. 그러나 케이팝 음악의 경우 스트리밍과 라디오 재생횟수에서 약세를 드러내기 때문에, 케이팝 팬들은 음원 다운로드에 많은 공을 들여 핸디캡을 극복하고자 했다. 

물론 방탄소년단의 'Butter'나 'Dynamite'는 스트리밍과 라디오에서도 두루 좋은 성적을 거둔 대형 히트곡이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의 지민이 지난 3월 발표한 'LIKE CRAZY'는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올랐다가, 바로 다음 주에 45위까지 하락했다. 단 5주 동안만 빌보드 핫 100 차트에 머물렀다. 발매 초의 높은 앨범 판매량과 다운로드 수치에 비해, 스트리밍 횟수 등 다른 지표가 저조했기 때문이다.

빌보드가 D2C를 집계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케이팝 아티스트들은 과거와 같은 성적을 내기 어려울 것이다. 국내 언론은 이를 두고 '케이팝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움직임'으로 간주했다. 지난해 빌보드는 '한 주에 다운로드 1건'만을 집계 대상에 포함하기로 규정을 바꿨던 바 있다 그리고 올해, 왜 다시 규정을 변경한 것일까?

빌보드의 룰 변경, 케이팝 막기 위해서라고?
 
 방탄소년단 지민의 'LIKE CRAZY'는 높은 다운로드 실적에 힘입어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올랐다.
ⓒ 뮤직비디오 캡쳐
 
물론 케이팝 뮤지션이 영미권의 팝스타와 달리 태생적 핸디캡을 안고 시작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타격이 더욱 클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빌보드가 케이팝을 축출하기 위해 규정을 바꾼다는 접근법은 다소 섣부르다. 불이익을 입는 것은 비단 케이팝 아티스트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2020년, 래퍼 식스나인(6ix9ine)은 충성도 높은 팬덤을 보유한 니키 미나즈와 함께 'TROLLZ'를 발표했다. 그는 의도된 편법을 통해 차트의 권위를 조롱하고자 했다. 여러 버전의 싱글을 발표하고, 충성도 높은 니키 미나즈(Niki Minaj)의 팬덤이 집단적인 다운로드에 나섰다. 식스나인의 실험은 통했다. 곧바로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올랐지만, 바로 다음 주에 34위로 하락했고, 발매 4주 후에는 핫 100 차트 바깥으로 밀려났다. 

2010년대 가장 성공한 팝스타인 테일러 스위프트는 2021년 연말 정규 앨범 < Evermore >를 발표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차트 집계 기간에 맞춰 'Willow'의 음원 가격을 크게 낮췄고, 스위프트의 팬덤 '스위프티'는 일제히 조직적인 다운로드 '총공(팬덤의 총력전)'에 돌입했다. 'Willow'는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불구하고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몰아내고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올랐지만 바로 다음 주에는 39위까지 하락했다.

이와 같은 사례가 보여주듯, 오늘날 차트는 순수한 경쟁이 펼쳐지는 곳이 아니다. 팬덤부터 기획사까지, 차트는 각자의 거대한 욕망이 개입되는 각축전의 장이다. 다른 상품에 음반을 끼워 파는 '번들' 판매, 음원의 가격을 절반 이하 수준으로 낮추는 '덤핑', 도배 수준의 리믹스 버전 발매 등. 사실상 모든 메이저 팝 가수들이 이와 같은 전략을 선택한다.

'내 가수에게 1위를 선물하겠다'는 팬덤의 욕망은 결코 케이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빌보드가 이 욕망을 방치하는 동안, 차트는 신뢰를 잃었다. 빌보드는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등 스트리밍 플랫폼에 빼앗긴 공신력을 되찾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규정 변경은 이 흐름 가운데 자연스러운 일이다. 케이팝 역시 언제까지나 충성도 높은 팬덤의 '총공'에 기대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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