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처럼 생긴 이 곤충, 잔반을 퇴비로 만듭니다 [ 단칼에 끝내는 곤충기]

이상헌 2023. 7. 21. 13: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몸무게의 4배나 되는 음식물 먹어치워 친환경 퇴비로, 아메리카동애등에

팍팍한 세상에서 잠시 기분전환 할 수 있는 재미난 곤충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 맞춘 흥미로운 이야기이므로 얘깃거리로 좋습니다. <기자말>

[이상헌 기자]

"나, 지금 떨고 있냐?"

지난 1995년에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끈 TV드라마 <모래시계>의 유명한 대사다. 태수역을 맡았던 최민수가 사형장으로 가면서 친구인 우석역의 박상원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했으며 방영일이면 거리가 한산해질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5.18 민주화 운동을 정면으로 다뤘기에, 신군부의 만행을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드마라이기도 하다.

송지나 작가의 상상력과 김종학 PD의 연출이 콤비를 이루어 당시 계엄군에 희생된 광주 시민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다. 당시로선 신인이었던 이정재는 백재희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으며, 혜린역의 고현정이 체포된 정동진역은 유명 관광지로 변모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음식물 잔반 먹어치워 비료로 만든다
 
▲ 아메리카동애등에의 컬러풀 한 겹눈. 더듬이를 위아래로 흔들어 벌을 흉내낸다.
ⓒ 이상헌
 
살아있는 모래시계를 제 뱃 속에 품고 있는 녀석이 곤충 세상에는 있다. 정확히 말하면 모래시계처럼 보이는 몸통이다. 바로 음식물 잔반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우는 아메리카동애등에(Hermetia illucens)다. 원산지인 북미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중이므로 우리나라에서도 수년 전부터 계속해서 관찰되고 있다. 성충의 몸 길이는 15mm 내외이며 삼각뿔 모양의 얼굴에 무지개빛 겹눈을 갖고 있다.
배마디의 절반이 투명하여 내부 장기의 살아있는 움직임을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다. 등판은 날개에 가려 있지만, 배면을 보면 가느다란 내장을 통해 소화액이 흐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치 수도꼭지에서 새는 물처럼 나오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속명 Hermetia는 '밀봉' 되었다는 뜻이며 illucens는 '밝은 조명을 비추다'는 의미로서 영단어 Illuminate가 여기서 왔다.
 
▲ 배마디가 투명한 아메리카동애등에. 모래시계 닮은 소화기관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 이상헌
 
애벌레는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4배나 되는 음식물을 먹어치워 친환경 퇴비로 바꾼다. 번데기는 물고기나 가금류, 돼지 등의 사료로 이용한다. 서구권에서는 개 사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단백질 함량이 40퍼센트나 되므로 사람도 먹을 수 있다.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배설물, 껍질, 남은 먹이 등등)은 비료로 쓰인다.
 
▲ 아메리카동애등에 등판. 말벌을 흉내내어 배마디가 가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 이상헌
 
모래시계처럼 보이게 하는 가느다란 몸통은 북미에 사는 말벌(Trypoxylon politum)을 의태했다. 질척한 흙으로 알집을 만들기에 진흙미장이(Mud dauber)라고 부르는 녀석이다. 아메리카동애등에 암놈은 한 번에 200~600여 개의 알을 낳는다. 4일 만에 부화한 구더기는 각종 분뇨와 퇴비 같은 유기물을 먹어치우며 20~35일 정도 자란다.
 
▲ 기생말벌(Trypoxylon politum). 거미를 마취시켜 알을 깐다.
ⓒ Judy Gallagher from Wiki
 
번데기 기간은 약 2주 정도이며 어른벌레로 날개돋이하여 10일 정도 산다. 물과 음식이 안정적으로 제공되는 인위적인 환경에서는 45~75일 정도 생존이 가능하다. 꿈틀거리는 애벌레를 보면 징그럽다고 느낄 수 있으나, 이들은 자연계의 필수 분해자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상업적 대량생산은 아직 걸음마

최근 들어 동애등에를 이용한 폐기물 처리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다른 파리류와는 달리 유기물을 분해시키면서 악취를 발생시키지도 않는다. 집파리와 검정파리 등은 튼실한 주둥이로 침을 뱉어 음식물을 녹여서 핥아먹으므로 질병을 옮길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파리를 본능적으로 기피하는 진화적인 이유다.

동물의 똥이나 사체를 먹던 파리는 그대로 각종 유해균이 섞인 침을 역류시켜 음식물을 오염시킨다. 그러나 동애등에 애벌레는 잔반을 소화시켜 퇴비로 만들고 성충이 되어서는 꽃 꿀이나 수분을 섭취한다. 종에 따라서는 입이 퇴화되어 아예 먹을 수 없는 녀석도 있다. 물거나 쏘지도 않고 비행능력이 파리에 비해 약하므로 잘 날지도 않기에 옥내에 침입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 범동애등에. 습지에서 볼 수 있으며 자기 몸 만큼이나 많은 난괴를 낳는다.
ⓒ 이상헌
 
이러한 가능성에 주목해 서구권에서는 가정용 음식물 잔반을 처리할 수 있는 사육장이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다. 대한민국 농가에서도 동애등에 농장을 만들고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 있다. 버려지는 음식물로 약 2주간 키운 후 냉동건조시켜 가축의 먹이로 쓴다. 동애등에는 잔반을 3 ~ 5일 안에 80퍼센트 이상 처리한다. 분해시 나오는 분변토는 비료로 쓴다.

현재 농촌진흥청에서 동애등에 사육기술을 보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상업적인 이용은 걸음마 수준이다. 농림축산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곤충판매액은 160억 원에서 400억 원 정도로 2배 이상 늘었다. 종류별로는 굼벵이(흰점박이꽃무지)가 189억 원으로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으며, 그 뒤를 이어 동애등에가 60억 원 수준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추후 한국우취연합의 월간 <우표>에도 게재 예정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