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韓 가톨릭 대들보 "규칙보다 중요한 건 사람"
수녀님 등 女 역할 강화 강조
성직자 중심주의 경고하기도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은 한국 전쟁 중 태어났다. 가족은 어머니와 누나, 형까지 세 명. 아버지에 관한 기억은 없다. 남북 간 이데올로기 갈등과 공산주의가 득세하던 시절의 영향이었다고 추정할 뿐이다. 어린 시절 누군가가 "네 아버지는 실종되셨다"고 했지만 자세한 내막은 지금까지 알지 못한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못했지만 몹시 쾌활했다. 초등학교 시절 반장을 도맡았고, 교우관계가 두터웠다. 결단력이 있었고 단호했기에 어른들께 고집 센 아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누군가는 선택하는 길에 따라 큰 사람이 될 수도, 악명 높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다행히 한국 가톨릭을 넘어 교황 가까이에서 세계 교회를 아우르는 성직자로 성장했다.
책은 교황청 국무원 소속 신부가 유흥식 추기경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진행한다. 추기경의 개인 역사를 비롯해 사제·주교직, 오늘날 교회에 관한 내용을 포괄한다.
유 추기경이 천주교와 본격적인 연을 맺은 건 고등학교 시절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이름을 딴 대건중학교를 졸업한 후 진학한 대건고등학교에서 천주 교리 지도를 받으며 세례를 받았다. 학업 성적이 우수해 고등학교 선택의 폭이 넓었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장학금을 주는 대건고등학교를 택했고 결과적으로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됐다.
유 추기경은 본인이 성직자의 길을 가게 된 데에는 많은 상황의 도움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대학 진학도 그중 하나. 세례받은 지 최소 삼 년이 넘어야 한다는 신학교 입학 자격에 발목이 잡혀 입학이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그해 신학교 입학생 수가 평년보다 줄면서 이례적으로 입학을 허가받았다. "주님은 그 일을 통해 제게 큰 가르침, 곧 규칙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들의 삶이기에, 매사에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두루 살펴보아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런 태도는 이후 여러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성경에서 금기시되는 이혼을 대할 때도 윤리 규범이나 교회법 조항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기준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셨다고 해서, 우리의 삶과 관련된 상황이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완벽해지지는 않았다"며 "그리스도교의 법률적 관점에서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고 하지 않더라도 삶은 계속될 수 있다. (중략) 사랑이 있어야 복음이 가르치는 환대도 가능하다. 완고한 편견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은총의 불꽃을 꺼뜨리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여성의 역할 강화도 같은 맥락이다. 신학교 학장 당시 수녀님이 신학생들의 정서적 성숙과 인간관계에 끼친 긍정적 영향을 강조하며 "여성이 맡는 역할에 대해 말로만 강조하거나 최소한의 인원만 배정할 일이 아니다. 여성도 신학생 양성에 핵심적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서적 성숙에 바탕한 인간관계의 부재는 친교를 제한하고 세상과 ‘동떨어진 곳’으로 만든다고 경고했다.
동떨어지지 않는 믿는 자들 간의 교제는 유 추기경이 유독 강조하는 부분이다. 관련해서 유 추기경은 성직자 중심주의를 경고한다. 그는 "자기를 남과 다른 사람이자 하느님에게 특별히 선택받은 우월한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일종의 안정감을 느끼는 사제가 있다"며 "이런 경향은 인간적인 나약함에서 비롯한다"고 지적한다.
교회를 거부하는 젊은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강조했다. 그는 "(몇몇 성직자들의) 머릿속에 특정 사람들에 대한 이론적 정의나 선입견이 이미 가득 차 있지 않은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며 "(젊은이들은) 의미를 주는 모범을 갈망하고 있다. (중략) 아름답고 진실한 증거를 드러내는 사람을 만나면 감동하고, 자신을 열며 자기를 내어놓는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근본적인 질문들을 가지고 다가가야 한다. 예를 들면 ‘네가 살면서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니?’와 같은"이라고 조언한다.
유 추기경에게 신앙은 말씀을 사는 삶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문화적 차원이나 도덕적 의무 준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던지는 질문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이 내 마음을 건드리도록 자신을 개방하는 것." 유 추기경은 신앙생활의 본질에 관해 이렇게 소개한다. "일상에서 말씀을 살아가고 이웃과의 나눔을 통해 사랑을 체험하는 일이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을 알기 위한 지름길"이라며 "그리스도교는 어떤 개념의 복합체가 아니라 ‘하느님과 형제들의 사랑을 통해 느끼는 기쁨의 친교 체험’이다. 이 체험이 우리의 신앙 여정을 지지해 준다."
라자로 유흥식 | 유흥식 라자로 지음 | 성연숙 옮김 | F. 코센티노 엮음 | 바오로딸 | 168쪽 | 1만3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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