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륙기동헬기 사고와 해병 순직, 국가 책임 다시 생각할 때
[박광홍 기자]
▲ 부서진 마린온 회전날개, 사고 원인은? 2018년 7월 18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 비행장 활주로에 추락한 해병대 상륙기동 헬기 '마린온'의 메인 로터(회전날개)가 부서진 채 놓여있다. [헬기 사고 유족 제공] |
ⓒ 연합뉴스 |
지난 20일, 집중호우 피해 지역인 경북 예천에서 실종자 수색 중 급류에 휩쓸린 해병대원이 끝내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나의 머리에는 2018년 7월 17일의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사고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근무했던 연대본부는 사고가 벌어진 해군6전단 비행장과 바로 인접해있었고, 마침 그날은 내가 연대 당직부관을 맡는 날이었다.
바로 코앞에서 벌어진 사고였기에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연대 당직부관으로서, 상륙기동헬기 사고가 수습되는 과정을 사단 연락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헬기 추락 후의 화재는 50분만에 진화되었지만(17시 35분), 시신들을 수습하는 작업은 밤새도록 이어졌다(마지막 시신이 수습된 것이 23시 21분이다). 이후 나는 정훈장교로서 사고 수습 중 촬영된 날 것 그대로의 사진과 영상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참담함은 결코 형언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충격과 슬픔은 사건 이후로도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나 뿐만 아니라 사단 전체가 비탄에 잠겼다. 동료를 잃은 전우들의 한숨과 눈물. 몸을 가누지 못하고 오열하는 유족 분들의 모습. 포항 해병대 숙영지에 있던 모두에게 참으로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때 우리에게 절실했던 것은, 국가로부터의 진실된 '사과'와 '위로'였으리라 생각한다. 임무 수행 중이던 군인들이 나라에서 도입한 헬기 기체의 불량으로 존귀한 목숨을 잃고 말았으니, 국가 차원의 사과와 위로가 진행되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때의 우리들이 받은 것은 사과와 위로가 아닌 무책임한 '외면'이었다. 사고가 벌어진 직후 우리들이 깊은 슬픔과 충격에 빠져있을 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해당 사고가 '기체결함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발표했다. 마린온의 원형인 '수리온'의 성능과 기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자화자찬은 덤이었다.
그렇다면 사고의 책임은 헬기를 몰았던 순직 장병들에게 있다는 말인가. 우리로서는, 청와대가 사고의 책임을 사실상 희생자(와 일선 부대)에 돌린 것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민·관·군 합동 사고조사위원회는 2018년 12월 21일 사고의 원인이 헬기의 핵심부품 '로터마스트 결함'이라고 최종 결론내렸다. -필자 주). 정부의 발표를 듣고 있다보니, 도대체 우리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 상륙기동헬기 사고 순직장병들의 영결식을 앞둔 포항 해병대 도솔관 청와대 비서진은 영결식에 지각까지 하는 등, 정부여당은 순직 장병들에 대한 예우에 소홀했다. |
ⓒ 박광홍 |
전역과 복무연장 사이에서 계속되던 고민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 국가를 지키는 우리들의 희생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구나. 우리의 안위 따위는 국가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구나. 조국 수호의 최선봉에 있다는 자부심은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렸으니, 군 생활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상륙기동헬기 사고로부터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상륙기동헬기가 벌어졌을 때와 비슷한 시기에, 또 다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를 야기한 수색작전에서 구급조끼조차 지급되지 않는 등 해병대원들의 인명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는 상륙기동헬기 사고에 드리워져 있던 인명 경시의 그림자를 또다시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관련기사: 군인은 '그래도 되는' 존재입니까?).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고가 이미 벌어지고 말았다. 이제 남은 과제는 사과와 위로이다. 대통령실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고 채수근 일병의 순직을 진심으로 애도한다"며 "유가족분들과, 전우를 잃은 해병대 장병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고 한다(관련기사: 윤 대통령, 실종자 수색 중 사망한 해병대 일병 애도). 청년에게 국방의 의무를 부과하고 작전에 동원했던 국가의 책임은,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하라"며 군인과 경찰의 인력과 장비를 사고 수습에 투입하라고 거듭 지시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은 이 서면브리핑 하나로 완수되었다고 보아야 하나.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다. 국가의 책임으로 국군의 구성원이 생명을 잃은 상황에서, 국군통수권자 대통령이 서면브리핑 하나로 상황을 모면하는 것은 결코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믿고 아들을 군대에 보낸(혹은 보내도록 강제된) 유족의 심정을, 만신창이가 된 군심을 헤아릴 감수성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때다.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로서, 임무 수행 중 순직한 군인의 영전 앞에 예를 다하고 슬픔에 잠긴 유족들을 위로하며 꺾인 군의 사기를 보듬어야한다. 국가를 지키는 군인의 희생이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각오를 세상에 천명해야만 한다.
혹자는 '의전서열'이나 '국사로 바쁜 일정' 등을 이유로 대통령의 조문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를 대표하고 국군의 통수권을 가지는 대통령직에 있어 순직군인 추도보다 우선되어야 할 논리나 이유는 없다고 감히 단언하고 싶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위로의 과정이 또다시 생략된다면, 국가는 더 이상 국가가 수호되어야 할 당위성을 장병들과 국민들에게 설득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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