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경제학자의 끔찍한 예언... 국민의 전반적 상태 걱정된다 [전강수의 경세제민]

전강수 2023. 7. 21. 11: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강수의 경세제민] 민주주의의 후퇴, 불평등이 근본 원인이다

[전강수 기자]

 지난 5월 14일 오후 서울 명동거리가 붐비고 있다.
ⓒ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시절 아래의 인용문이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부패한 민주정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성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악한 자는 더 악한 자에 의해서만 쫓겨날 수 있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 그리하여 결국 존경도 받게 되는 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어서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한다. … 부패한 민주 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1879년에 발간된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의 <진보와 빈곤>(김윤상 역, 비봉출판사)에 나오는 구절인데, 오래전에 쓰인 내용임에도 이명박 정권의 성격과 당시 한국 사회의 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한다고 여겨져 여러 사람이 인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8, 2009년에는 부동산 때문에 한국 국민의 도덕성도 타락한 듯 보였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주민들이 앞장서서 뉴타운 사업 지정을 요청했고, 2008년 총선에서는 서울의 48개 선거구에서 40개 의석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이 차지했을 정도다. 당시 한나라당 후보들은 한결같이 뉴타운 사업으로 부동산 자본이득을 안겨주겠다고 공약했다. 그래서 혹자는 당시의 한국 정치를 '탐욕의 정치'라고 묘사했다. 유권자의 탐욕에 기대 표를 얻으려 했다는 뜻이다. 

헨리 조지는 '토지 중심의 경제학'을 복원하고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설파한 경제학자다.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신자유주의의 실패가 분명해진 요즘, 그의 경제사상은 전 세계에서 유력한 대안 사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가 남긴 불후의 명저 <진보와 빈곤>과 <사회문제의 경제학>(전강수 역, 돌베개)에는 뛰어난 경제사상이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군데군데 탁월한 정치적 견해도 담겨 있다.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지적한 헨리 조지
 
 1880-1890년경 헨리 조지
ⓒ 위키미디어 공용
헨리 조지의 정치사상에는 두드러지는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지적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가 부패할 때에는 국민의 도덕성도 타락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정치적 자유와 평등이 사회를 진보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민주주의가 도입되고 정치적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면, 부와 권력의 평등한 분배도 실현된다. 

문제는 평등한 부의 분배 상태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사회가 진보하면서 토지가치가 상승하면, 토지가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기 시작하고 그로 인한 불평등이 심해지는데, 그것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형해화시킨다. 헨리 조지는 형식적 민주주의는 일정한 조건만 있으면 간단히 전제체제로 변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제체제가 국민의 이름과 힘으로 진전되기 때문이다. 민주 공화정을 가장 야만적이고 잔인한 전제체제로 바꾸는 데는 헌법을 고치거나 보통선거 제도를 포기할 필요가 없다.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토지독점으로 불평등이 심해지고 민주주의가 형해화하면, 국민성도 부패한다. 기득권층은 자신의 권리를 추구하느라 눈이 멀어 국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법이 없다. 형식적 민주주의 하에서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가 폭정을 일삼아도, 그를 매수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한 맞서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꾸준히 불어나는 재산을 바라보며 '이대로!'를 외칠 뿐이다. 그렇다고 가난한 대중이 국가를 정의롭게 만들고 국민 전체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일에 나서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힘들어 허덕이고 답답한 상황에 불만을 품고 부글거리기는 하지만,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게다가 "권력이 세습되지도 않고 가장 미천한 지위의 인간이 부패를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서는 모습을 늘 보게 되는 곳에서는 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된다." 헨리 조지의 말이다. 기득권층도, 대중도 참 자유와 평등에 무관심해질 때, "정치꾼들이 권력을 손에 넣고 로마 황제 근위대처럼 매관매직을 일삼거나, 선동가가 권력을 잡고 한동안 휘두르다가 더 악랄한 선동가로 대체될 뿐이다." 이것도 역시 헨리 조지의 말이다. 모두(冒頭)의 인용문에서 헨리 조지가 "부패한 민주 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고 비관적으로 단언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헨리 조지의 패러다임에 비춰본 한국 사회  
 
 정부의 규제완화 덕에 급매물 거래가 늘면서 전국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가 지난 4월 10개월 만에 반등했다.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는 두 달 연속 오르고 상승 폭도 커졌다.
ⓒ 연합뉴스
 
헨리 조지가 제시한 패러다임에 비추어 오늘날 한국 사회를 진단하면 어떻게 될까? '촛불혁명'으로 부패한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민주 정부를 수립하자, 전 세계는 대한민국을 주목했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남북한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노력은 각광을 받았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떠올랐다. 때마침 K-컬처가 전 세계를 휩쓸었고, 코로나 방역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면서 한때 문재인 전 대통령은 '글로벌 대통령'으로 칭송받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찬란했던 민주국가가 순식간에 박정희·전두환 치하의 독재국가처럼 변했다. 군인들이 총칼을 사용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도 아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현 정권의 집권 과정에 불법과 무력이 동원되지도 않았다. 민주주의의 형식적 절차가 훼손되지 않았는데도, 정권의 성격이 급변했으니 국민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헨리 조지에 따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일은 너무도 쉽게 일어난다. 원인은 바로 불평등에 있다.

그러고 보니 문재인 정부는 외형상 화려해 보이는 일에 몰두하느라 사회 안에서 불평등이라고 하는 암종이 자라나는 것을 방치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 5년 동안 부동산값은 역대 정부 최고로 폭등했고, 한 곳의 투기를 잡으면 다른 곳으로 번지는 풍선효과는 역대 정부 최다로 발발했다. 부동산문제로 인한 불평등은 노력소득의 격차로 인한 불평등에 비해 국민의 도덕성에 훨씬 나쁜 영향을 끼친다. 

생산적 투자에는 관심 없이 비업무용 땅 사재기에 올인하는 기업, 대출받아서 갭투자 하는 데 관심과 정력을 다 쏟은 회사원, 부동산 특강 강사를 따라 아파트 사냥 투어에 나섰던 부녀자, '영혼'까지 끌어모아 주택을 매입한 2030 세대, 건물주가 꿈인 중학생 등이 한때 우리 사회의 상징처럼 떠오른 것을 떠올려 보라. 

부동산 과다보유자들과 토건족들은 희희낙락했고, 부동산 투기의 바람에 올라타지 못한 사람들은 원인을 따지지 않은 채 불만을 품고 부글거렸다. 우리 사회 다수의 사람들이 정의와 자유를 실현하고 국민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촛불 정부의 실력자들도 매일매일의 지지율 동향에 전전긍긍하면서도 개혁적 부동산 정책을 과감하게 펼치는 데는 소홀했다.

찬란했던 민주 정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위해 돌출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국민 다수의 불만과 분노는 보통선거 제도하에서 소위 '검찰 정권'을 탄생시키는 쪽으로 표출되었고, 찬란했던 민주 정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기본 인권을 마음껏 누리던 국민은 짧은 기간에 아주 사소한 일에서조차 정권의 탄압에 신경 써야만 하는 군색한 처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권력을 손에 넣은 정치꾼들은 신난 듯 그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가 펼쳤던 몇 안 되는 불평등 완화 정책조차 모조리 후퇴시키고 있다. 우리 국민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외면한 후과(後果)가 너무 크다. 

헨리 조지는 국민이 깨어나서 권력자를 제대로 제어하지 않으면, 더 악한 선동가에게 권력이 넘어갈 것이라 예언한다. 다음번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정권이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품은 사람들에게는 실로 끔찍한 예언이다. 

관건은 국민 다수가 국민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며 살 것인지 아닌지에 달려 있는데,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자기를 희생해 나라를 살리려는 의로운 부자도, 애국심과 정의감에 불타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정치인도, 부동산 투기가 아니라 땀 흘려 먹고 살겠다고 결단하는 건강한 시민도, 열심히 공부해서 기업을 일구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학생도 찾아보기 어려우니 말이다. 많은 사람이 정권의 횡포에 분노하지만, 나는 우리 국민의 전반적인 상태가 걱정스럽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