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에서 죽고 다치는 청년들... 이 연극은 노래한다

김성호 2023. 7. 2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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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무대만세 8] 극단 그린피그의 <발목>

[김성호 기자]

누군가는 말한다.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노력만 하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시대가 아니냐고 말이다.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은 과거 어느 시대와 비할 수 없고, 일인당 국민소득 또한 어느 선진국과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다. 도심엔 화려한 마천루가 솟았고 티비 속 세련된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냐고 물어오는 듯하다.

그러나 흔히 믿어지는 것과 다른 현실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다른 누구의 수고에 빚지고 있는 것과 같은 현실 말이다. 이를테면 도시가 배출하는 쓰레기는 그 도시가 감당하지 못하여 멀찍이 떨어진 다른 지역에서 처리되고 심지어는 곳곳에 무단투기 되어 말썽이란 뉴스를 심심찮게 듣고는 한다. 또 도시는 그 도시에서 생산하는 전력으로 턱없이 부족하여 멀찍이 떨어진 다른 지역에서 만든 전력을 상당한 비용을 치러가며 들여오기도 한다. 어디 그뿐일까.

정부가 불법체류 외국인을 단속할 때마다 농민들이 속앓이를 한다는 이야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미 한국 농업은 외국인 노동자가 지탱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실정인데, 가격경쟁력이 좋지 않은 한국 농업이 불법체류 외국인이 아닌 노동자를 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에 사는 평범한 이들이 감당하고 싶지 않은 조건의 노동을 기꺼이 해내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로써 겨우 돌아가는 산업 또한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된 세월이 10년을 훌쩍 넘어섰다는 것, 이것이 모두 우리가 사는 2023년 한국의 초상이다.
 
▲ 발목 포스터
ⓒ 그린피그
 
지금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는

여기 차마 알기 불편하여 보지도 듣지도 않는 이야기를 하는 연극이 있다. 서울 회기로 KOCCA 콘텐츠문화광장에서 이달 17일부터 21일까지 공연된 <발목>이 바로 그 작품이다. 한국 연극 가운데는 보기 드물게 이주노동자의 노동문제가 전면에서 다뤄져 특히 인상적이란 평이다.

극은 한 남자와 또 한 여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군 입대를 앞둔 젊은 청년으로,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 화력발전소에서 일한다. 말이 화력발전소지,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는 한국의 현실답게 청년이 일하는 곳은 열악한 하청업체다. 자동화된 화력발전소 설비를 관리하는 것이 이 업체의 역할이지만 현실은 그와 동떨어져 있다. 발전소는 노후화돼 설비를 개선해야만 하는 일이지만, 하청업체가 원청에 설비를 개선해달라고 요청하기는 어려운 탓이다. 그랬다가는 원청으로부터 재계약은 없다는 통보를 받아들기 십상이다. 결국 하청업체는 제 직원들에게 열악한 현장에서 일하도록 요구할 밖에 없다.

그 어느 날 문제가 일어난다. 2인 1조가 원칙이라지만 세상에 쏟아지는 수많은 산업재해 기사처럼 현장엔 남자 혼자뿐이었던 날이었다. 설비에 석탄이 끼여 문제가 생기고, 남자는 끼인 석탄을 밀어내려다 제 다리가 빨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한다. 그렇게 그는 한쪽 발목을 잃는다.
 
▲ 발목 연극 발목 무대
ⓒ 그린피그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노동현장에 대하여

이번엔 여자 이야기다. 여자는 이삿짐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이삿짐 업체는 몽골 이주노동자들을 직원으로 채용하곤 하는데, 그 이유는 역시 가격이다. 현장에선 최저임금조차 지키지 않는 업체가 허다하고, 최저임금을 지급한다고 하더라도 격한 업무를 이 가격에 소화할 내국인을 찾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극은 몽골인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는 한국인 업주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 우리 시대 어딘가에서 펼쳐질 법한 부조리한 상황을 관객들이 대면하도록 이끈다.

<발목>이 그리는 건 미디어에선 좀처럼 주목하지 않는 열악한 노동현장이다. 열악하지만 사회가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직종으로, 우리 중 어려운 자가 그 자리를 채우는 현실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화력발전소에서 발목이 잘린 노동자는 부모가 없는 고아 청년으로 그려지며, 이삿짐센터에서 온갖 부조리를 감내하는 여성은 몽골에서 건너온 기댈 곳 없는 젊은이다.
 
▲ 발목 가수 안지
ⓒ 그린피그
 
연기하는 배우 곁에서 가수는 노래한다

극은 역경을 맞이한 이들 청년이 서로 기대어서 어려움에 맞서는 과정을 담는다. 그 도중에는 산재 신청을 어떻게든 막아내려는 회사 상사가 있고, 다친 노동자의 임금을 떼어먹으려는 악덕 업주도 있다. 수많은 사례 가운데 어쩌다 하나씩만 보도가 되는, 그렇게 보도된 뉴스조차 금방 잊히고는 하는 오늘의 현실 가운데 이 극의 사실성은 주목할 만하다고 하겠다.

서사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적으론 현실에 다가서고 형식적으로는 모험을 거듭하는 태도는 적잖이 인상적이다. 무대 바닥에 놓인 미끄럼틀 모양의 틀은 화력발전소의 컨베이어벨트였다가, 노동자를 밀어 떨어뜨리는 어려움처럼 변하기도 하고, 그밖에도 여러 가지 쓸모를 발휘하여 흥미를 자아낸다.

무엇보다 무대 한편에 자리한 가수 안지는 필요한 순간마다 기타와 보컬로 적절한 끼어들기를 시도한다. 그럴 때면 공연장은 흡인력 있는 콘서트장처럼 변하는데, 연극과 음악이 호응하는 이 같은 순간은 그리 흔하게는 마주할 수 없는 것이어서 색다른 인상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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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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