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냥은 못 죽어유, 꼭 한글 알고 죽을 거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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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자 기자]
2주 전 마을 학교 수업하러 가는 날 담당 주무관의 전화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오늘 수업하러 가시지요? 인원수 미달로 이번 달 말일까지 수업하고 종료해야 해서 연락드렸어요."
분명 지난달엔 인원수 적어도 교재는 끝내야 하니까 교과서 끝날 때까지 수업하라고 이 담당 주무관이 말했었다. 그렇게 말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수업 중단 통보라니, 어쩔 줄 모르겠는 마음. 나부터 진정이 필요했다. 어르신들 마음은 어떻겠는가?
이번 달에 종료라면 통보 날 포함 딱 4일 남았다. 4년 넘도록 하던 수업을 하루아침에 무 자르듯 딱 잘라 중단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해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까? 또 어떻게 설명해야 충격을 가장 적게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아마도 고민한 것을 헤아리면 밤하늘에 떠 있는 별만큼 될 것 같다.
수업 중단 통보 날부터 계산해서 수업 끝내야 할 날짜가 날자 수로는 2주이지만 실제 수업은 4일뿐(수업은 주 2회). 짧은 시간에 가장 이상적이고 지혜로운 이별 준비를 해야 하는 고민 속으로 풍덩 빠졌다.
▲ 마을학교 수업모습 마을학교 수업 모습 |
ⓒ 이상자 |
단 하루 남은 수업 준비를 했다. '정말 이분들과 마지막이구나.' 여느 날과 달리 천만근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수업 준비를 해 가방에 넣고 막 지퍼를 올리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마지막 수업 3일 전 화요일 오전 10시 30분(금요일이 마지막 수업 날), 담당 주무관이다.
"윗분들과 회의한 결과 남은 교과서 두 권 끝날 때까지 수업을 계속하기로 결정이 났어요."
난 한 편으로는 '잘되었구나' 하고 기쁜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왜일까? 헤어질 준비를 해서일까? 불과 한 달 사이에 이랬다 저랬다 하는 행정 처리 때문일까? 아무튼 기분은 야릇했다. 내 마음을 나도 잘 알지 못할 묘한 마음을 밀폐해야 할 용기의 뚜껑 닫듯 꽉 눌러 닫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들이 좋아하시겠어요. 최OO 학생이 시내버스로 45 정거장이나 되는 먼 길로 공부하러 버스 타고 가지 않아도 되겠네요. 주무관님의 따뜻한 배려로 어르신들이 학업을 마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애쓰셨습니다."
이 분들의 연세가 86세~89세 까지다. 수업을 여기서 종료하면 초등부과정 공부는 영원히 끝날 것이란 마음에 두 번의 수업 시간 동안 4년을 돌아보고 정리하는데 할애했다. 마을 학교 학생 모두의 출판기념회 영상을 눈물 속에 아쉬움 달래며 시청했다. 두 분의 개인 그림책 출판기념 영상도 시청했다.
수업을 중단하게 되면 서운할까 봐 한 달 분량의 과제도 준비했다. 어르신 학생들이 가장 좋아했던 것으로 준비했다. 일하며 공부하느라 애쓰셨다고 손 편지도 썼다. 이 학생들이 4년 넘는 세월 한글을 배웠다고 선생인 내게 마지막 감사의 편지도 보내왔다. 이런 과정이 있어서 내 마음이 야릇한 것일까?
어르신들이 수업 중단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편지가 이런 결정을 내리게 한 것일까? 어르신들이 개사해서 부른 <밀양아리랑 >의 효과가 있는 것일까? 아마도 4년여 공부하고 2권만 수업하면 초등부 과정을 마칠 수 있는 것을 중도에 중단하기 어려웠음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리라.
관련기사 :
"다 틀렸네, 다 틀렸네... 공부하긴 다 틀렸네" https://omn.kr/24mqk
수업종료 3일 전, 어르신들 '인생책' 영상 보며 웁니다 https://omn.kr/24lr9
어르신들을 위해서 정말 훌륭한 결정이라 감사하다. 마음 따뜻한 주무관님이 수고를 많이 해서 이렇게 좋은 결정이 됐으리라.
"제가 힘이 없어서요. 죄송해요."
이렇게 말은 했어도 윗분들에게 구구절절 어르신 사정을 고했을 것이다. 평생의 한, 배우지 못한 한을 초등학교 과정을 마쳤다는 자부심으로 남은 생을 살게 되었으니, 어르신들에게 더없이 기쁜 일이다.
공부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어서 입학한 최OO 학생은 오일장에 장사 다니느라 결석하는 날이 많아서 이제 조금씩 읽기 시작하는데 잘됐다. 죽기 전에 한글을 알아야 눈을 감고 죽을 수 있다는 학생이다. 큰 수술을 받은 후로 오일장 장사를 그만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이 학생이 다른 곳에서라도 공부하고 싶다 하여 다른 마을 학교를 소개해 드렸었다. 87세 연세에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도보로 8분 - 버스로 45정거장- 걸어서 12분 정도 소요해야 하는 곳이라 사전 답사 하라고 말했었다. 금요일 수업 날 가서 이 소식을 전하면 그 안에 그 먼 길을 다녀올 것 같아 저녁에 전화했다. 뛸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너무 잘됐네유. 그런디 선생님한테 배워도 한글 다 물르면 어떻게 한 대유? 두 권 끝날 때 되면 나 한글 다 알 수 있을까유? 나 소원 풀어야 되는디. 물건 파는 다라이에 내 이름 못 써서 당한 수모 때문에라도 난 그냥은 뭇 죽어유. 꼭 한글 알고 죽을 거여유. 선생님 있을 때 반드시 한글 다 배울 수 있어야 되는데 그렇게 될 수 있겄쥬? 그렇게 해 주셔유."
이 학생이 오일장마다 좌판을 펴고 장사할 때 겪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남은 물건을 보관할 때 이름을 써 보관한다고 했다. 이름을 쓸 줄 몰라 옆에 장사하는 사람에게 이름 써주기를 부탁해 맡겼다고. 다음 장날에 물건을 찾으러 갔더니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고 했던 그 사건.
이 사람들이 왜 웃었는지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름을 쓴 것이 아니라 "개 OO년" 이렇게 쓰여 있다고 주위에 있던 사람이 말해줬단다. 이 말이 최 학생에게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은 것이다. 이 분의 삶에서 글 몰라 겪은 수모가 이뿐이겠는가. 어떤 말로 이분 가슴에 시퍼렇다 못해 까맣게 멍든 응어리를 풀 수 있으랴!
"네. 제가 그 소원 풀어드리겠습니다. 꼭 소원 풀어드릴게요."
※ 마지막 수업 3일 전이란(마을 학교는 주 2회 수업이라 날자 수는 3일 이지만 수업할 수 있는 날은 1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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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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