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 in]'한은寺' 별칭도 급여 앞에선 '무색'…한은맨들의 피켓시위
'평균 연봉 1억'인데도 핵심 인력 유출 고민
기재부 "발권력 있으면서 통제 안 받겠다니"
“한은법(한국은행법) 개정에 여러분의 급여, 복지가 달려있습니다.”
한국은행 노동조합은 지난 18일부터 임금결정권을 금융통화위원회로 이관해야 한다며 건물 앞에서 출근길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번 시위의 계기는 지난달 23일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한은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의 골자는 한은의 임금결정권을 기획재정부에서 금통위로 옮기고, 한은 예산을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국회 기재위에 제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는 한은법에 따라 급여성 경비는 기재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한은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금통위에서 자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은 노조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한은법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도 하고 있다.
한은의 지난해 직원 1인당 평균 보수액은 1억331만원, 신입사원의 평균 보수액은 5176만원이다.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은 시중은행보다 낮다. 지난해 평균 연봉은 하나은행이 1억1459만원, 국민은행 1억1369만원, 신한은행 1억970만원 등으로 한은 연봉을 넘어섰다. 시중은행이 영업실적 개선 등으로 임금을 올리는 반면 한은은 공무원 임금 인상률 등을 고려해 인상률이 1~2%대에 그쳐서다. 근 10년간 한국은행 임직원의 임금 인상률이 2%를 넘긴 건 2번뿐이다.
노조는 임금 결정을 자체 조직인 금통위 선에서 해야 인상률을 높일 수 있다 보고 개정안 통과에 힘을 싣고 있다. 한은 노조는 내부 인트라넷을 통해 배포한 개정안 설명자료를 통해 "(법이) 개정되면 자체적인 노사협상과 급여 정상화의 길이 열리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지금처럼 기재부에 목줄 죄어 실질임금이 깎이고 기재부 직원에 이것저것 요구당하며 살아야 한다"며 “왜 우리 한은이 통화정책을 자율적으로 하는데 일일이 기재부 저년차 공무원의 간섭을 받아야 하냐”고 호소했다. 유희준 노조위원장은 “소위 말하는 ‘연봉 1억’은 15년차나 돼야 받을 수 있는 금액”이라며 “금융권에 이런 조직이 없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한은이 국가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외부 통제 없이 내부에서 임금을 결정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발권력을 가진 한은은 다른 금융공기업보다 더 강한 공공성을 띤다”며 "최소한의 견제 장치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헌법재판소나 대법원 같은 헌법상 독립된 기관도 인건비를 포함한 예산을 정부가 편성하고 국회에서 최종심의 확정하는데, 법률상 독립기관인 한은이 외부 통제를 안 받겠다고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한은 내에서도 노조와 간부의 생각은 엇갈리고 있다. 급여 인상 필요성은 이창용 한은 총재도 강조한 바 있는 사안이지만, 기재부와 관계 유지 차원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운 모양새다. 국회 기재위 관계자는 “어차피 기재부가 반대하면 개정안 통과가 쉽지 않은데, 한은이 임금결정권 이관을 적극적으로 의제화해버리면 관계가 틀어질 거라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에 한은 노조는 "발 벗고 나서도 모자란 마당에 정작 당사자인 한국은행이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안타깝기 그지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영진이 더 민감하게 여기는 부분은 예산서 제출 관련 조문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은은 일반예산을 국회에 회계연도 30일 전에 보고(제출)해야 한다. 한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그때그때 국회에서 요구하는 항목에 관한 자료만 제공하면 됐는데, 법이 개정되면 처음부터 일반예산 전체 내역을 국회에 공개해야 한다”며 “경영진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한은에서 처우 불만에 따른 내부 핵심 인재 유출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 한병도 의원실이 한은으로부터 제출받은 직원의 근속연수별 퇴직(이직) 현황 자료에 따르면 한은 퇴사자는 2018년 99명에서 지난해 160명으로 약 60% 늘었다. 저연차뿐만 아니라 실력 있는 고연차도 더 나은 처우를 위해 조직을 떠나고 있다. 최근 김정성 조사국 물가연구팀장은 아세안+3 거시경제조사기구(AMRO)로 이직하기로 했다. 한은은 이전 고액의 연봉을 제의받고 블룸버그로 이직한 권효성 통화정책국 정책분석팀장 이후 조사국 물가팀장까지 이직하며 연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다만 이번 시위가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은 관계자는 “인력 유출은 한은뿐 아니라 공조직 전반에 퍼진 현상”이라며 “여타 금융공기업에 비해 보수가 낮은 건 맞지만, 국민의 눈높이에서 볼 때 평균 연봉 1억원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 ‘처우 개선’을 위한 개정안 통과라는 메시지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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