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장기불황 위기 日·中…한국이 얻을 교훈
반도체 명성 회복에 나서는 日
韓, 게임체인저 소부장에 주력해야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시대적 배경은 1980년대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일본 버블경제를 상징하는 메타포가 가득하다. 주인공인 치히로의 아버지 차는 '아우디'다. 일본 자동차 시장은 토요타 등 자국 브랜드 비중이 90%가 넘을 정도로 '수입차 무덤'이지만, 일본 최고 호황기였던 시기 외제 럭셔리 브랜드 아우디를 모는 그는 버블경제를 대변한다. 치히로 부모가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호화롭게 차려진 음식을 보고 허락 없이 허겁지겁 음식을 먹다가 돼지가 돼버리는 설정은 버블경제에 취해 흥청망청 소비에 나섰던 세대에 대한 비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작품은 마녀 유바바에게 치히로라는 이름을 뺏긴 뒤 '센'이라는 새 이름을 가진 종업원으로 일하는 주인공이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갖가지 탐욕에 맞서고 결국 치히로라는 이름(자아)을 다시 찾기까지 여정을 그렸다. 일본에서 현재까지 역대 흥행 순위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뜨거운 호응을 얻었는데, 과거 전성기에 대한 향수를 지닌 일본인들에게 버블경제에 대한 은유적 경고와 반성은 물론 과오를 반복하지 말자는 자성의 목소리까지 전달했기 때문일 것으로 풀이된다.
문득 20여년 전 국내에서 개봉했던 이 영화가 떠오른 것은 최근 중국 경제가 과거 버블경제의 일본과 유사한 흐름을 보이는 부분이 있어서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약발이 빠르게 소진되고 부진한 경제지표 발표가 이어지면서 중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불황을 의미하는 '대차대조표 불황'에 진입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차대조표 불황은 저금리 시대에 빚을 낸 가계·기업이 자산 가격 하락으로 부채 상환에 집중하다가 발생하는 경기침체 현상을 말한다. 대차대조표상의 대변 항목인 부채는 급격히 늘어나지만 차변의 자산(부동산) 가격이 계속 하락하면서 결국 경기가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1980년대 초반 일본은 고성장을 거듭하며 최고의 호황기를 누렸다. 일본이 대미무역에서 엄청난 흑자를 기록하자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제재에 나섰다. 이로 인해 엔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수출 경쟁력이 급감, 일본은 마이너스 성장률로 전환하게 된다. 무역 악화로 경기가 침체되자 일본 정부는 금리 인하, 부동산 경기 부양에 나섰고 엄청난 빚을 내 부동산 등 각종 자산 투자에 나섰던 가계와 기업은 결국 버블이 꺼지면서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된다.
올해 강한 반등을 기대했던 중국 경제의 성장세가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치는 이유의 핵심은 부동산이다. 중국 비금융기업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60%에 달할 정도로 팽창했는데, 이는 부동산 업체의 부채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이 소비나 투자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향후 중국 경제성장의 가늠자일 수밖에 없지만, 부동산 불안이 지속되면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급부상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다각적 움직임도 과거 일본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미·중 갈등 속에서 일본은 최근 경제 회복과 더불어 새로운 돌파구 찾기에 여념이 없다. 한국의 주력분야인 반도체·배터리 산업 투자를 대폭 강화하면서 과거 반도체 명성을 회복하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1980년대 전성기 일본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점유율은 50%에 달했지만 현재는 9%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한국이 취약한 반도체 소재·장비 분야 글로벌 점유율이 각각 55%, 35%에 달할 정도로 이미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일본이 미국과 손잡고 반도체 산업 재건에 올인한다면 상황은 급반전될 수 있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과 공급망 재편 영향으로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국내 반도체 장비와 소재 국산화율은 각각 20%, 50%에 불과하다. 지정학 시대 생태계가 중요한 반도체 산업에서 소부장이 뒷받침되지 않는 왕좌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장기침체 위기에 진입한 중국과 여기서 벗어나려는 일본의 틈바구니 속에서 반도체·자동차 산업을 무기로 성장해 온 한국이 이제 가장 들여다볼 분야는 소부장이다. 소부장 산업은 수익구조가 복잡하고 설비·장비에 대한 막대한 자금투자가 필요한 만큼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않는 한편 벤처캐피탈 등 민간 참여도 독려해야 한다. 소부장이 새로운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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