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때문에 휴직 하기로 했습니다
너무 조급하게 좋아지려고 하면 안 된다.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우울증 환자는 어떻게든 빨리 좋아지려고 애를 쓰는데 그 마음이 너무 커서 회복 속도가 더딘 것을 견디지 못한다. 우울증의 자연 경과라는 것을 고려하면 환자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치유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일하느라 지쳐서, 번아웃에 빠져서 혹은 직무와 관련된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생겼다고 휴직 기간에 무조건 쉬겠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사례도 종종 본다. 자신에게 아무런 힘이 남아 있지 않으니 내버려 달라고 하면서 휴직 기간 내내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면 저절로 나을 거라 여긴다. 그렇지 않다. 휴직 초기에는 휴식이 필요하지만 비활동적인 상태가 지속되면 복귀할 시점이 되어도 심신에 활력이 차오르지 않아서 나중에 애를 먹게 된다.
우울증의 원인을 찾아서 뿌리를 완전히 뽑아버리겠다며 골방에 틀어박혀 심리서적과 유튜브만 들여다 보며 휴직 기간을 다 써버리는 환자도 있고, 쉬는 동안에 자신의 나약한 성격을 띁어 고치겠다며 심리상담에만 매달리는 환자도 봤다. 단기간에 수 십년에 걸쳐 굳어진 성향이 쉽사리 바뀔리 없다. 대개 휴직 기간은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에만도 넉넉하지 않다. 심층적인 문제에 파고 드는 것이 정해진 시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수 있는지 미리 신중하게 고려한 뒤에 시도하는 게 좋다.
신체적 체력을 키우는 건 짧은 기간에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정신력도 자연히 키워진다. 우울증에서 회복하려면 정신력을 길러야 하는 것 아니냐, 라고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체력 커지면 정신력도 길러진다. 직장 생활에서 스트레스 받더라도 체력이 강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잘 견딘다. 우울증도 덜 걸린다.
호주의 맥쿼리대학교 연구팀이 3개월 동안 운동을 꾸준히 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했다. 운동을 꾸준히 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일을 미루는 습관도 줄어들고, 약속 시간도 더 잘 지켰다. ‘제 때 일 해라’ ‘충동구매 하지 마라’, ‘약속 잘 지켜라’라고 미리 지시를 한 것도 아닌데, 3개월 동안 운동을 꾸준히 한 사람들은 저절로 이런 행동 변화가 일어났다. 휴직 기간 동안 “체력을 기르겠다”는 것을 목표로 행동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것이 우울증 환자가 일차적으로 전념해야 할 목표다.
과연 이전처럼 회사로 돌아가서 일을 잘할 수 있을지, 일하다가 스트레스 받아서 우울증이 재발할 위험은 없는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이 모든 것을 정확하게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므로 회복되었다고 판단되면 회사로 돌아가서 어느 정도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직접 겪어 보는 수밖에 없다. 어려움이 남아 있다면 그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지 의사와 상의해가면서 더 치료하면 된다. 회사에도 이런 부분을 설명하고 과중한 업무는 당분간 유예시켜 달라고 협조를 구한다. 복직이라는 것 자체가 또다른 변화이자 스트레스이다. 처음에는 심리적 곤란을 느끼는 게 정상이다. 우울증이 치료되어서 복직하면 전처럼 활기차게 바로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 안 된다.
환자의 주관적 느낌과 의사의 객관적 판단을 토대로 우울증상이 70~80% 정도는 없어져야 업무 복귀가 가능하다. 완치가 되었더라도 막상 업무에 복귀하면 ‘아직 낫지 않았구나’라고 느낄 수도 있다. 업무 속도나 능률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건 다반사다. 이런 현상이 보편적이다. 복직하고 2~3개월에 걸쳐 서서히 기억력, 판단력, 집중력이 더 호전되고 업무에 완전히 적응하려면 이 정도의 시간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복귀하자마자 “그동안 못 했던 것을 다 해내겠다, 내가 없는 동안 하지 못 했던 일을 한꺼번에 처리해야 한다”는 욕심은 갖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할 수도 없거니와 이런 부담이 크면 스트레스가 되어 우울증 재발 위험을 키운다.
회사로 돌아가는 게 부담스럽다고 복귀를 미루면 정신적으로는 더 약해진다. 사회생활에 적응하다 보면 남아 있던 증상도 시나브로 좋아진다. 정신과 치료만으로 우울증이 100% 좋아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 맞는 일을 함으로써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지는 것이다. 일이라는 게 힘들기는 해도 인간은 일을 해야 심리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망치질을 자꾸해야 놋그릇이 튼튼해지고 커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도 바로 일을 통해서다.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업무에서 성과를 내고 그것으로부터 성취감을 느껴야 마음의 맷집도 커진다. 돈을 벌고 자기 힘으로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자존감의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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