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김혜수 "해녀들과 물속 교감…지금도 눈물나요"
37년차 배우 "눈물나게 고민"
전세계 최초 수중 해녀 액션 도전
배우 김혜수(52)가 가는 길에는 뜨거운 의리가 있다.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에서도 그렇다. 그가 연기한 춘자는 당차고 멋지다. 후지지 않다. 주인공으로 끝내주는 여자들의 우정을 그리는 중추적 역할을 한다. 14살에 식모살이를 하며 먹고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해온 춘자는 군천에서 해녀로 물질을 하며 살아간다. 김혜수가 아닌 춘자는 상상 불가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혜수는 "춘자는 외로운 캐릭터"라고 바라봤다. 이어 "에너지 넘치고 밝아 보이지만 사실 내면은 불안정하고 위태롭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시원한 바다 달군 해녀들의 뜨거운 의리
오는 26일 개봉하는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해양 범죄 활극이다. 김혜수·염정아는 1970년대 평화롭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사는 해녀 춘자·진숙으로 호흡을 맞춘다.
배역에 대해 말하던 김혜수의 얼굴에서 몰입 이상의 애정이 느껴졌다. 그는 "단짝 해녀 진숙(염정아 분)은 춘자를 거둬준 가족이자, 단짝 친구, 그 이상인 존재다. 어쩌면 진숙이 춘자의 전부일 수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진숙은 생존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발버둥 치면서 살아온 춘자에게 따뜻하고 안락하게 곁은 내어주는 존재"라고 말했다. 이어 "춘자는 진짜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기를 마음껏 드러내면서 사는 건 힘든 일 아닌가. 춘자가 유일하게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진숙이 유일하다. 진숙은 춘자의 삶을 구원해준 유일한 사람이고 가족이고 전부니까"라고 했다.
영화 '베를린'(2013) '베테랑'(2015) '군함도'(2017) '모가디슈'(2021)를 연출한 천만 감독 류승완이 메가폰을 잡았다. 김혜수는 류 감독에 관해 "열려있는 연출자"라고 했다. 작품 준비 과정에서 배우의 의견을 묻고 시나리오에 유연하게 반영하길 반복했다. 이를 통해 서로의 신뢰가 쌓이면서 좋은 결과물로 이어졌다.
김혜수는 "촬영을 준비하면서 '소년심판'을 촬영했다. 류 감독과 문자로 많은 부분 소통했다. 시나리오에 관한 여러 의견을 나눴는데, 빠른 속도로 많은 것을 수정 보완해줘서 굉장히 좋았다"고 말했다.
춘자는 자신을 오해하는 진숙에게 소리친다. "너 나 몰라?" 장면을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강렬하게 가슴에 꽂히는 장면이다. 이는 김혜수와 염정아의 아이디어로 완성된 장면이라고 했다. 휴차 때 류승완 감독과 만난 두 배우가 즉흥적으로 상황에 몰입해 나올 법한 대사를 말했고, 감독이 이를 현장에서 분주히 적었다. 그렇게 명장면이 탄생했다.
김혜수는 "우리는 서로 자매처럼 다 아는 사이니까, 춘자가 진숙에게 묻고 싶었을 거 같다. 너는 나를 알지 않냐고. 다른 사람 다 그렇게 볼 수 있지만, 너는 나를 알아야지. 그걸 묻고 싶을 거 같았다"고 말했다.
춘자가 진숙에게 "죽었는지 살았는지 안 궁금했냐"고 묻는 장면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김혜수는 "진숙의 사연에는 다들 공감하지만, 춘자가 억울한지에는 관심이 없을 거 같았다. 그게 슬프더라.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어도 진숙만큼은 안 궁금했냐고 묻고 싶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권상사를 연기한 조인성과도 현장에서 느낀 감정을 토대로 관계성을 만들었다. 김혜수는 "권상사와 춘자는 서로 협력하고 이용하는 관계다. 대본을 보면서는 예측하지 않았는데, 현장에서 리허설하면서 느낀 감정이 있었다. 우리도 모르는 미묘한 것들이 나올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춘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뭐든지 했을 거다. 둘은 사랑인지 몰랐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촬영장에서 처음 조인성의 눈을 보며 연기하던 순간이 선명하다고 했다. 김혜수는 "눈을 보는데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무서웠다. 멋지고 서늘하달까. 잊히지 않는다. 배우는 눈이 제일 중요한데, 함께 연기하며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앞서 김혜수는 제작보고회에서 "박정민이 '밀수'에서 인생 배역을 만났다"고 밝힌 바. 그는 "내 말이 맞죠? 나 빈말 안 한다니까"라며 웃었다. 이어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앞에 있으면 흥분된다.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우리가 힘차게 제대로 가고 있다고 느낀다. 박정민을 보고 그랬다. 계속해서 연기하는 모니터를 돌려 봤다"고 했다.
물밑에서 교감…우정 그 이상 값진 경험
'밀수'가 다른 배역과는 달랐다고 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고, 해녀를 연기한 여러 배우와 연기한 촬영장도 남달랐다고 떠올렸다.
김혜수는 "처음에는 개인적인 흥미에서 출발했는데, 이후 촬영장에서 경험한 것들이 굉장히 진했다"고 했다. 이어 "공동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팀에서 내 역할은 뭘까, 팀원으로서 정체성에 관해 굉장히 많이 고민한 현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하게 나를 이끌어온 힘이 있었다. 앞으로도 연기하면서 그 부분을 상기하면서 할 수 있겠다. 그게 '밀수'의 가장 큰 의미"라고 강조했다.
'밀수'는 해녀의 터전인 바다가 배경이 된 만큼 수조 세트, 수면 세트를 비롯해 바다 현지 촬영까지 물에서 진행된 촬영이 많았다. 이를 통해 남다른 팀워크도 느꼈다고 했다.
김혜수는 "수면 세트장에서 배 두 척을 띄우고 촬영한 장면이 있었다. 매니저, 스태프, 여자, 남자 할 거 없이 촬영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붙어서 손으로 당겨서 배를 돌려가며 찍었다. 감동적이었다"고 떠올렸다.
특히 해녀팀의 분위기가 좋았다. 김혜수는 이를 당시를 떠올리며 느낀 감정을 말하다 눈시울을 붉혔다. 그때의 감정이 다시 올라오는 듯했다. 그는 "나와 내 파트너인 염정아만 알 수 있는, 우리 둘이서만 느낀 일체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고 말을 이었다.
"수중 세트장에 둘이 들어가서 서로 눈을 바라보면서 둘이서 사인을 주고받은 후 연기를 했다. '슛'을 우리가 직접 한 거다. 살면서 처음 경험했다. 염정아를 내가 배우로 좋아하지만 어떻게 다 알겠냐. 아무리 서로 신뢰하고 의지하더라도 물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그 순간, 온전히 상대가 느껴졌다. 그 순간에는 내가 그 사람 같고, 그 사람이 나 같았다. 정말 좋았다. 어디에서 이걸 경험하겠냐."
김혜수는 '밀수'가 힘든 현장이었다고 떠올렸다. 현장에서 행복하다는 생각은 안 했다고. 그 정도로 많이 노력하고 고민을 거듭한 촬영장이었다는 뜻이다. 그는 "분 단위로 연기를 생각하고 체크해야 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내 연기를 체크하는 건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촬영장에서 모니터를 안 보는 배우도 있다. 그런데 나는 본다. 그래서 괴롭다. 아무리 현장에 준비를 많이 해가더라도 내 민낯을 보는 건 괴롭다"고 말했다.
연기 눈물 나게 괴로울 때 있지만, 그래도 한다
19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한 김혜수는 37년간 숱한 배역을 오갔다. 그런 베테랑 배우의 입에서 들려온 "괴롭다"는 고백이 생경했다. 이를 언급하자 그는 "때론 '진짜 안 되네' 느낄 때도 많은데, 눈물 난다. 그래도 해야 한다"고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자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왔다. 누군가는 20년 넘게 노력해도 못 하는 걸 타고난 배우들도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 못 하는 단점도 있다. 경계해야 할 것도 많다"고 했다.
'밀수'는 후반부 해녀들의 수중 액션이 압권이다. 한국영화를 포함한 모든 영화를 통틀어 차별될 만큼 흥미롭다. 김혜수는 "전세계에서 유일하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해녀가 우리나라에만 있지 않나. 어디에도 없는 액션"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콘티를 보고 '헐' 했다. 이걸 우리가 한다고? 배우들이 다 연기했다. 무엇보다 장면을 가장 치밀하게 준비한 건 감독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영화 사상 처음 하는 작업이었는데, 배우들은 훈련을 통해 준비하면서 컨디션을 조절하고 연기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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