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교사, 생전 “학부모 수십 통 전화…소름 끼쳐” 토로

김판 2023. 7. 2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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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사노조, 교사 극단적 선택 관련 제보 공개
학교측 ‘면피 입장문’에 동료 교사들 분노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마련된 임시 추모공간에서 추모객들이 고인이 된 A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최근 한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그 원인을 두고 다양한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아직 경찰이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배경과 관련해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사이 동료 교사들은 고인이 학부모들로부터 민원에 시달린 정황들을 증언하며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교사노조, “학폭 민원에 시달렸다” 제보 공개
서울교사노동조합은 21일 SNS를 통해 서이초 사건과 관련한 동료 교사들로부터 전달받은 여러 제보 내용들을 공개했다. 제보 내용을 종합하면 고인은 교실에 공격적인 성향이 있는 아이가 있어 힘들어했고, 학부모 민원에도 시달렸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이 21일 SNS를 통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접수한 제보 내용을 공개했다. 서울교사노동조합 SNS 캡처


제보 내용에 따르면 극단적 선택을 한 A교사는 교실에서 연필로 다른 학생의 이마를 긋는 사건이 벌어진 뒤 가해자 혹은 피해자 학부모로부터 개인 휴대전화로 수십 통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A교사는 “내가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 준 적이 없고, 교무실에도 알려준 적이 없는데 내 번호를 어떻게 알고 전화했는지 모르겠다. 소름 끼친다. 방학 후에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야겠다”고 동료 교사에게 말했다. 또 고인은 “출근할 때 그 학생의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 사건과 관련해 학부모가 교실로 찾아와 A교사에게 “애들 케어를 어떻게 하는거냐” “당신은 교사 자격이 없다”고 발언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A교사는 요즘 근황을 묻는 동료 교사들에게 “작년보다 10배 더 힘들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 OO 아빠인데, 변호사야” 법조인 자녀 많은 서이초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에 추모객들이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동료 교사들은 A교사의 극단적 선택이 지금의 열악한 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며 분개하고 있다. 특히 학생과 학부모가 모두 민감한 학교 폭력 이슈들이 많은 데다가 학부모들의 과도한 민원과 폭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특히 서울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서이초 교사들은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다고 한다. 최근까지 서이초에서 학교 폭력 업무를 담당했던 한 교사는 서울교사노동조합에 학폭 사안 처리 당시 한 학부모로부터 “나 OO 아빠인데 나 뭐 하는 사람인지 알지? 나 변호사야!“라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 교사는 학폭 민원과 관련한 대부분의 학부모는 법조인이었고, 학부모 민원이 많아 대부분의 교사들이 서이초 근무를 어려워 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교사는 서이초의 저경력 교사들에 대해 “경력이 있었던 나도 힘들었는데 저경력 교사가 근무하기에는 매우 힘든 학교”라면서 “울면서 찾아온 후배 교사에게 위로를 해주고 도움을 준 적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러지 못했다”며 자책했다고 한다.

“‘함구해라’ 학교 지시 있었다” 학교 대응도 논란 키워

학교 차원의 대응에도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 교사는 “학교 차원에서 ‘함구하라’고 해서 그냥 있다”라고 서울교사노동조합에 제보했다. 동료 교사들은 학교가 사안을 축소하기에만 급급하다며 진상 규명을 통해 교육 현실의 민낯을 직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일 오후에는 A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동료 교사들이 서이초를 직접 방문했지만, 이를 막아서는 학교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앞서 서이초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여러 의혹이 제기되자 학교장 명의로 입장문을 발표했다. 학교장은 입장문을 통해 “해당 학급에서는 올해 학교폭력신고 사안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학급에서 발생했다고 알려진 사안은 학교의 지원 하에 다음날 마무리됐다”는 모호한 설명을 내놨다.

하지만 이같은 대목은 사안을 축소하려는 듯한 인상을 줘 동료 교사들의 비판을 받았다. 한 동료 교사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통해 “신고를 하지 않았을 뿐 학급에서 학폭 사건이 일어났고 담임이 중간에서 상담하고 중재하고 처리하는 중이었다”며 “말장난”이라고 비판했다. 정신 신고 절차만 없었을 뿐이지 학폭 사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또 A교사가 1학년 학급을 맡은 것을 두고도 학교는 “담임 학년은 본인의 희망대로 배정된 것”이라며 “담당 업무는 학교폭력 업무가 아닌 나이스 권한 관리 업무였으며 이 또한 본인이 희망한 업무”라고 강조했다. 동료 교사들은 “학교가 자꾸 A교사의 ‘희망’을 언급하며 학교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한다”며 “결국 A교사의 개인적인 이유로 이번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의도가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마련된 임시 추모공간에서 추모객들이 고인이 된 교사 A씨를 추모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A교사가 목숨을 잃은 서이초에는 동료 교사들의 추모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동료 교사들은 20일 서이초 정문 앞으로 근조화환을 보냈다. 이날 오후 10시쯤에는 근조화환이 약 1500여개까지 늘어났다. 또 이날 하루 동안 약 2300명이 서이초를 방문해 추모한 것으로 추산된다.

경찰도 A교사와 관련한 여러 소문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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