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장만 달라도 '차별' 항의…교사들, 강남·서초학교 힘들어해"
20일 1학년 담임 교사(24)가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에는 300여개의 근조화환이 가득했다. 사망 소식을 들은 교사들이 보낸 꽃들이었다. 전날 커뮤니티에서는 고인의 죽음에 학부모의 폭언이 영향을 미쳤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밤늦게 서울교사노조가 “고인이 학생 간 다툼 사안을 처리하며 거센 항의에 부딪혔다”는 내용의 성명문을 발표하며 추모 물결은 더욱 거세졌다. 학교 앞에는 “학교 민원을 총알받이처럼 받아내야 하는 교사”, “선배 교사들이 개선하지 못했다” 등의 메모가 붙어있었다.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을 계기로 교권이 추락한 현실에 대한 교사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아직 경찰이 사인을 조사 중이지만 교사들은 사망 장소가 학교인 만큼 “악성 학부모 민원 등 업무 스트레스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교원단체들은 관련 법 제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발장만 달리 생겨도 항의”…악성 민원 시달리는 학교
서울 강동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친한 교사가 대치동에서 몇 년 근무하더니 우울증에 걸려 나오더라. 대부분 이런 현실을 알고 있어서 강남·서초 학군은 기피 지역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한 공무원 익명 게시판에 자신을 강남·서초의 학교 교직원으로 소개한 글쓴이는 “전학 온 아이를 위해 신발장을 추가로 만들려면 기존 신발장에 하나가 돌출되는 형태로밖에 만들 수밖에 없는데, 그게 차별이라며 항의하는 학부모도 있을 정도”라고 썼다.
전반적으로 교권 침해가 늘어나는 추세도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탠다. 국회 교육위원회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교권 침해는 총 1만178건이다. 2018년 2454건이던 침해 건수는 2019년까지 증가하다가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잠시 주춤한 뒤 2021년에 다시 2269건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상반기(1학기)에만 1596건이 발생했다. 침해 유형으로는 모욕·명예훼손이 55.6%(5664건)로 가장 많았고, 상해·폭행(9.3%), 정당한 교육 활동 반복적으로 부당 간섭(8.4%) 순이었다.
최근에는 아동학대죄 등으로 고소·고발하는 학부모가 늘면서 교원들은 소송 압박까지 시달리고 있다. 지난 5월 교사노조가 조합원 1만137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가장 시급히 해결할 과제 1순위로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 처벌 등 법률에 의한 교육활동 침해 방지 대책 수립(38.21%)’이 꼽혔다. 교육활동을 하다 아동학대로 신고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교사도 5.7%(649명)였다. 최근 5년간 교권 침해로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교사도 26.6%(3025명)나 됐다.
또 다른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접수된 교권 침해 소송 사건 87건 중 44건(51%)이 아동 학대로 고소당한 경우”라고 밝혔다. 교총은 교사가 교육 활동 중 소송을 당하면 변호사비를 지원한다. 올해 지원액은 총 1억 6000만 원으로 역대 최고액이다.
“학생·학부모 무기는 느는데, 교사는 빈손”
서울의 한 초등교사는 “요새는 학생끼리도 싸우다가 ‘너 ○○죄로 고소한다’, ‘난 촉법소년이라 적용 안 받는다’는 얘기들을 한다”며 “대응할 무기가 학생들에겐 있는데, 교사에겐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한 서울의 초등교사는 “화장실에서 장난을 치는 학생에게 반성문을 쓰게 했다가 한 학부모로부터 협박성 전화를 받았다. ‘지금 이 전화는 녹음되고 있고, 내가 아는 방송국 사람에게 보낼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남아있는 학교 현장의 온정주의도 교권 침해를 부추겼다고 보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는 최근 교사 3명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발로 찬 A군을 교권보호위원회에 회부했다. A군은 3월부터 수업 중 욕설을 하거나 핸드폰을 사용하고 교사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일삼았다. 보드게임 중 화가 난다며 교사의 머리채를 잡기도 했다. 수업 중 찍은 사진을 달라고 떼를 쓰며 담임 교사의 정강이를 찬 적도 있다. 하지만 A군은 교권보호위원회 결과 출석 정지 3일의 처분만 받았다.
한 전직 교육청 관계자는 “한 학부모가 교실에 난입하고 담임 교사에게 폭언해서 경찰 조사까지 진행됐는데도 퇴임이 얼마 안 남은 교장은 교사의 나약함만 탓하고 있었다”며 “누군가에게 어려움이 발생하면 함께 도와주는 동료 문화와 관리자의 리더십도 사라진 지 오래다”라고 지적했다.
교원단체 “무분별한 민원, 교육청이 신고해야”
교총은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악성민원 등 중대한 교권침해에 대해서는 시도교육청이 반드시 수사기관에 고발해 학교와 교원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법 개정을 통해 시·도교육청에 아동학대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교사와 교직단체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해 어떤 부분이 미흡한지, 이를 보완하기 위한 추가 조치나 구체적인 매뉴얼은 뭐가 되어야 할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부모 단체와의 협의를 통해 매뉴얼의 타당성 검토는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민지·장윤서 기자, 정상원 인턴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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