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자이’는 어쩌다 동네북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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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만 해도 '순살자이'라는 멸칭까지 얻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GS건설이 지난 5월 9일 '아파트 전 현장 구조 정밀안전점검 나선다'는 제목으로 배포한 보도자료는 자진납세하듯 내놓은 일종의 자백서였다.
GS건설은 설계도면부터 확인했을 것이다.
GS건설은 5월 자료에서 "설계사 업역인 구조 설계 자체에 대하여도 철저하게 재확인"하겠다며 설계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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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만 해도 ‘순살자이’라는 멸칭까지 얻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GS건설이 지난 5월 9일 ‘아파트 전 현장 구조 정밀안전점검 나선다’는 제목으로 배포한 보도자료는 자진납세하듯 내놓은 일종의 자백서였다. 전달 29일 밤 지하주차장이 붕괴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공사 현장을 조사해 보니 ‘설계와 다르게 시공된 일부 부분’을 발견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하지만 뭐가 어떻게 잘못됐는지는 말하지 않은 채 “단순 과실이 원인(인 것)으로 자체 조사됐다”고 애써 선을 그었다. 이렇게 두루뭉술 넘어가고 싶었던 시공 오류가 순살자이의 어원이 된 철근 누락이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인 아파트에서 뼈대인 철근을 빠뜨린 건 심각한 문제다. 비유 그대로 뼈 있는 치킨을 주문했는데 순살치킨을 내놓은 격이다. 게다가 누락한 철근은 전단보강근이라는 안전장치였다. 콘크리트 바닥(슬래브)이 하중을 못 이기고 끊어지는 걸 전단이라고 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심는 철근이 전단보강근이다. 사고 지하주차장은 기둥이 곧바로 슬래브를 떠받치도록 설계됐다. 이 방법으로 짓는 건물이 안전하려면 기둥·슬래브 연결부에 전단보강근을 넣어야 한다. 안 그러면 슬래브가 기둥에 뚫리듯 아래로 푹 꺼질 수 있고, 그렇게 내려앉은 위층 무게에 아래층도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붕괴된다.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1, 2층이 이렇게 무너졌다.
GS건설은 설계도면부터 확인했을 것이다. 거기에 전단보강근은 없었다. 요리로 치면 ‘레시피’가 엉망이었다. 사고 부위 말고도 전단보강근을 넣어야 할 곳 중 절반이 ‘순살’로 설계돼 있었다. 건축사사무소는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고 한다. GS건설은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설계는 발주자(시행사) 소관이다. 현행법상 건설사는 발주자가 던져준 도면대로 지을 뿐이다. GS건설이 자체 조사를 결심한 건 ‘우리는 도면대로 시공했을 뿐 문제는 주요 철근이 누락된 설계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발주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였다.
정작 조사 후에는 다시 전세가 불리해졌다. 도면상 제대로 그려진 곳까지 전단보강근을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선 철근 수 세는 게 일이었다. 그게 끝나야 감리를 부를 수 있었고, 감리가 ‘제대로 안 됐다’고 하면 그날 공사는 종 치는 거였다.” 한 건설사 직원의 이 설명은 검단 아파트 현장이 얼마나 엉성했는지 짐작게 한다. 국토교통부 조사위원회가 발표한 건축 설계·시공·감리의 총체적 부실은 이미 그때 확인된 사실이었다.
다 같이 잘못했는데 혼자 뒤집어쓰고 있으니 억울한 면은 있을 것이다. GS건설은 5월 자료에서 “설계사 업역인 구조 설계 자체에 대하여도 철저하게 재확인”하겠다며 설계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달 사과문에선 “설계를 직접 발주한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모두 “1차 잘못은 LH에 있다”는 복선을 깔고 있었지만 알아주는 여론은 없었고 LH도 입을 꾹 다물었다. 국토부도 시공사 책임이 더 크다는 쪽으로 몰고 있는 분위기다. 건설사들이 우려했던 일이다. LH와 국토부는 한배를 탄 이들이었고 감리회사는 LH 전관이 많기로 소문나 있었다.
그렇게 GS건설은 ‘철근 빼먹은 건설사’로 각인됐다. 이제는 자이 아파트에서 물이 새거나 고이기만 해도 자초지종 불문하고 기삿거리가 된다. 빛나는 방패 같던 ‘자이’ 브랜드가 동네북이 된 것이다. 신뢰를 얻기는 어렵고 한번 쌓으면 공고하지만 전부를 잃는 건 한순간이다. 다 잃는 계기는 신뢰를 가볍게 여겼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강창욱 산업2부 차장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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