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 병상 아버지 위해 매일 치유 낭독… “마음 따뜻해져”

우성규 2023. 7. 2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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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아버지께 책을 읽어 드립니다’ 펴낸 김소영 전 허스트중앙 대표
김소영 전 허스트중앙 대표가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온누리교회에서 성경 통독과 인문학 공부를 통해 낭독의 기쁨과 글쓰기의 축복을 얻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새벽 다른 가족이 잠들어 고요한 시간에 먼저 부모님을 위한 기도를 드린다. 13년 넘게 전신 마비로 병상에 누워계신 80대 아버지, 옆에서 이를 수발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대소변을 받아내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조용히 휴대전화 녹음 버튼을 누른다.

오늘 읽을 책은 저자가 눈물로 써낸 ‘요즘 저는 아버지께 책을 읽어 드립니다’(두란노)의 한 대목. ‘가슴 뛰는 여정’의 챕터 제목과 ‘부모가 먼저 해야’의 소제목에 이어 “퇴사한 뒤, 소규모 공부 모임을 통해 인문학 수업을 듣던 때였다”를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읽는다. 낮고도 간절한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병상에서 휴대전화로 녹음파일을 듣는 부모님의 마음에 책의 내용이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낭독한다.


‘요즘 저는 아버지께 책을 읽어 드립니다’는 놀라운 책이다. 신앙, 가족, 경력 단절, 자녀 교육, 그리고 무엇보다 독서와 낭독의 위대한 효과를 증명하는 책이다. 저자인 김소영(52) 전 허스트중앙 대표를 지난 18일 그가 출석하는 서울 용산구 온누리교회 서빙고성전에서 만났다. 김 대표는 2001년 미국 와튼스쿨 경영대학원(MBA) 과정을 마치고 국내 대기업 및 중국판 ‘보그’ 잡지를 발행하는 콘데나스트의 중국 지사와 중앙미디어그룹 등지에서 전략실장으로 일했다. 최종적으로 2015~2016년 ‘엘르’ ‘코스모폴리탄’ ‘에스콰이어’ 등을 거느린 허스트중앙의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다.

“그룹에서 제가 역대 두 번째 여성 CEO였습니다. jtbc에서 한류 드라마를 외국에 수출하는 일도 했습니다. 일에 보람과 재미를 느끼며 성과를 냈었고, 여성 후배들의 기대도 높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두 아들에게 엄마가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당시 QT집 ‘생명의 삶’ 가운데 인형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방안에 가득한 예쁘고 빛나는 인형들 가운데 낡고 허름한 인형만 고집하는 아이가 이유를 물으니 ‘다른 인형은 좋아해 줄 사람들이 많지만, 이 낡은 인형은 제가 아니면 돌볼 사람이 없어요’라고 답합니다. 아이들이 생각났고, 어렵게 회사를 그만둡니다.”

이후 김 전 대표는 길과 고난과 교육이란 세 가지 주제를 붙들고 공부를 이어나간다. 2010년 2월 집 앞에 산책하러 나갔던 부친은 넘어지면서 목이 부러져 경추 3번과 4번 사이 신경이 훼손돼 사지가 마비되는 중상을 입는다. 하루아침에 움직이지 못하게 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이 고난의 끝에 있는 해답을 찾고 싶었다.

김 전 대표는 온누리교회 양육과정과 두란노 바이블칼리지 등을 통해 하루 10장씩 성경 통독을 이어간다. 그는 “이전까지는 성경을 읽어도 고난을 다룬 욥기에만 집중했었는데, 통독 후엔 창세기의 요셉처럼 긴 안목으로 인생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성경을 통해 확고한 기준을 알게 되니 흔들리지 않게 되고 행복과 감사를 느끼게 되는 동시에 나아가 주변인과 관계가 회복되는 경험, 즉 이게 바로 치유란 걸 깨닫게 된다.

당시 읽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한 대목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며,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빼앗기지 않은 영혼의 자유이다”란 문장을 통해 가슴 속 뜨거움을 맛보게 된다. 김 전 대표는 “성경 읽기와 인문학 공부를 통해 글을 쓰는 길로 나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김소영 전 허스트중앙 대표가 직접 그린 그림. 병상의 아버지 옆에서 책 읽어주는 자신의 모습이 담겼다. 김소영 대표 제공


병상의 부모님께 책을 읽고 녹음 파일을 보낸 건 코로나 팬데믹 때부터다. 20~30분 분량으로 주5일 낭독하면 한 달에 책 한 권이 끝난다. 김 전 대표는 낭독의 유익을 부모님보다 본인이 먼저 맛보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책 내용이 더 정확히 마음에 콕콕 박혀요. 책을 낭독하는 건 모 한 포기 한 포기를 뿌리까지 단단히 박히게 글자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눈으로 글자를 보고 그걸 소리로 내려면 눈 뇌 코 목 가슴 그리고 허리까지 여러 기관을 움직여야 하니 몸에도 좋아요.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돼요. 30분쯤 낭독하면 배가 고파지니까요. 청취자에 대한 책임감으로 책을 끝까지 읽게 되고요. 낭독하면서 들을 아버지와 엄마, 다른 가족을 상상하면 마음이 따뜻해져요. 매일 읽다 보니 낭독 기술이 날로 늘어서 전문 낭독자의 길이 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하하.”

김 전 대표는 다음 달 2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성우 서혜정 송정희씨와 함께하는 ‘한여름 밤의 낭독회’를 연다. 독서와 낭독으로 사람을 치유하는 이야기인 자신의 책을 낭독할 예정이다.

아버지에게 읽어준 첫 번째 책은… 로빈슨 크루소

김소영 전 허스트중앙 대표가 병상의 아버지께 읽어드린 첫 번째 책은 ‘로빈슨 크루소’다. 어느 날 갑자기 움직이지 못하게 된 부친과 간병으로 지친 엄마를 향해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낭독을 시작했다.

로빈슨 크루소는 고난으로 모든 것을 빼앗겼지만, 야생의 환경 속에서 목숨을 건진 신의 뜻을 구하며 감사를 찾는다. 그 겸허한 감사가 원동력이 되어 무기력하고 패기 없던 청년이 용기 있는 개척자로, 강인하고 지혜로운 리더로 거듭난다. 김 전 대표는 “로빈슨 크루소에게 유일하게 남아있던 책이 바로 성경”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낚시를 좋아했던 아버지를 위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퓰리처상 픽션부문 수상작 ‘노인과 바다’도 낭독했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라는 노인의 말, 자연이란 거대한 힘 앞에 경외심을 가지면서도 시련 앞에서 강인하고 끈질기게 버티는 정신력을 떠올렸다. 김 전 대표는 “계속해서 기도하는 노인의 모습이 나오는 걸 발견하고 역시 주님이 책 선정부터 이끄시는구나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부모님께 읽어드린 성경 속 목적지는 로마서였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 버전으로 낭독했다. 책 낭독을 수년째 이어오며 김 전 대표는 “엄마의 언어가 변했다”고 말했다. 예전엔 하나님이 어디 있냐며 화를 내시던 분이 이젠 밤새 기저귀를 여덟 번 갈고서도 그분의 더 큰 뜻이 있을 거라고 말씀한다고 전했다. 어머니 모연금씨는 추천의 글에서 “딸의 책 읽어주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하나님의 ‘힘내거라’ 하시는 목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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