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인의 조선가족실록] 권력·치정에 눈먼 인조 “자식 죽이는 것도 왕의 권한”
공포영화 뺨치는 궁궐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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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서 돌아온 소현세자 의문사
세자빈도 역모로 몰아 사약 내려
자리 불안감, 애첩의 사주 겹쳐
“개새끼 같은 게 임금의 자식인가”
소현의 어린 아들 둘 제주서 병사
무능한 리더십이 낳은 핏빛 비극
」
소현세자와 대신의 접촉도 막아
무엇보다 그는 독일인 신부 아담 샬과의 친교를 통해 서양 문물을 접하고 조선에 전하기를 희망했다. 그런데 차기 왕의 귀국을 열렬히 환영하던 연도의 백성들과 달리 아버지 인조의 반응은 차가웠다. 왕은 으레 치러야 할 세자와 대신들의 공식 접촉을 막았고, 세자가 북경에서 가져온 서적과 문물에 노여워했다. 무슨 일인지 세자와 세자빈 강씨를 보는 왕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세자가 죽었으니 그를 대체할 국가적 의례가 있기 마련이다. “원손(元孫)은 옥 같은 자질이 어려서부터 드러났고 청사(廳舍)를 설치하여 학문을 연구한 지도 이제 3년이나 되었습니다.”(1645년 5월 27일) 차차기 왕으로의 수업을 받아 온 소현의 장남 이석철의 위호(位號)를 정하자는 대신들의 요청에 왕은 이유 없이 화를 낸다.
다시 한 달 후 왕은 이경석·김육·이덕형 등 대신들을 불러놓고 차기 왕을 새로 정하겠다고 통고한다. 원손은 자질이 밝지 못해 나라를 감당할 만한 재목이 아니라는 것이다.(1645년 윤6월 2일) 놀란 대신들은 진강(進講)을 통해 원손이 재기와 자질을 갖춘 소년임을 확인했으며, 왕위 계승이 정도(正道)를 이탈할 경우 난(亂)의 복병이 될 수 있다며 강하게 대응한다. 하지만 왕은 합당한 이유를 대지 못한 채 “봉림대군을 세자로 삼는다”고 선언한다. 이 사건 또한 소현의 죽음만큼이나 많은 갈등과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무고한 세자빈 친정 일가도 희생
세자가 죽은 지 4개월 남짓 강빈의 궁인 애란이 무당과 통했다는 이유로 국문을 당하고 귀양을 갔다.(1645년 7월 22일) 이어서 강문성 등 강빈의 친정 형제 4명이 한꺼번에 먼 고을로 유배되더니 다시 절도(絶島)에 이배되었다. 드러난 죄상도 없는 강씨 형제들을 유배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는 대신들에게 왕은 “무식하고 오만하기(無識泛濫)” 때문이라 한다.(인조실록 23년 8월 26일)
그야말로 어이없는 죄목이다. 보름 후에는 강빈의 궁녀 계향과 계환이 저주(詛呪, 특정한 사람에게 재앙과 불행이 닥치기를 기원하는 행위)를 벌인 혐의로 내옥(內獄, 궁중 내부의 일을 처리하는 기관)에서 국문을 받다가 죽는데, 끝내 승복하지 않았다.(1645년 9월 10일) 과부가 된 며느리를 대하는 왕의 태도는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당시 궁궐 안팎의 사람들은 이 사건의 배후로 임금의 총희(寵姬) 소용 조씨를 의심했다. 유사한 패턴의 사건이 2년 전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소용 조씨를 저주한 혐의로 세 여성이 각각 거열형(車裂刑)과 참형(斬刑), 사사(賜死)에 처해졌는데, 왕은 총희를 위해 역적을 처단하는 수준의 권력을 남용한 것이다. 사관의 논평은 왕의 승은을 입은 후궁 이씨를 제거하기 위한 소용 조씨의 자작극으로 기록하고 있다.(인조실록 21년 4월 17일)
인조 사로잡은 소용 조씨의 간계
소용 조씨는 14살에 궁녀로 입궁하여 스무 살에 옹주를 생산하고 두 살 터울로 왕자 둘을 낳는다. 당시 인조는 심양에 억류된 자식들과의 생이별에 역위(逆位)의 두려움까지 겹쳐 심신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왕의 영혼을 장악한 소용 조씨의 무대가 펼쳐진 것이다. 이에 앞서 25년 부부로 산 인열왕후와의 사별로 전란이 끝나자 새 왕비를 맞이하는데, 곧 장렬왕후다. 16세에 44세 인조의 계비가 된 그녀는 막 아이를 낳기 시작한 소용 조씨의 타깃이 된 것이다.
조씨의 간계로 소생은 고사하고 왕과의 대면도 쉽지 않았던 장렬왕후는 7년 만에 별거를 당하게 된다. 왕비를 별궁으로 옮기는 것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 영의정과 우의정 등 모든 대신이 한 달간이나 적극적인 반대를 했지만 장렬왕후는 경덕궁(이후 경희궁)으로 옮겨졌다.
드디어 소현세자의 동생 봉림 대군이 왕세자로, 그 부인 장씨는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1645년 9월 27일) 이어서 28세의 소용 조씨는 정2품 소의(昭儀)로 승급되었다. 그런데도 소현세자빈에 대한 공격은 계속되었다. 임금의 수라상 전복구이에서 독이 나왔다며 강빈의 궁인 5명 등을 내옥에 가두어 형장을 가했다. 밝혀진 것은 없었다.(1646년 1월 3일)
천륜도 저버린 ‘망나니’의 칼춤
이로부터 한 달 후 왕은 “군부(君父)를 해치려 한 강씨”를 “천지 사이에 둘 수 없다”는 비망록을 내린다. 죽이겠다는 말이다. 왕이 지목한 강빈의 죄는 비단으로 적의(翟衣, 왕비 옷)를 준비했고 왕에게 분한 마음을 드러내며 문안의 예를 없앴으며 수라에 독을 넣은, 반역과 불효를 동시에 저질렀다는 것이다.(1646년 2월 3일)
이에 이경석과 최명길 등의 정승들은 “시역의 큰 죄는 의혹과 짐작으로 단정할 수 없으며” “아버지와 자식 간의 타고난 자애심은 어디에나 존재해 왔다”고 한다. 군주 권력이 망나니 칼춤을 추듯 해서는 안 되고, 인간이라면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天倫)을 해칠 수 없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화내고 의심하는 게 능사인 왕은 대신들을 향해 “시아비의 뺨을 때리는 일이 있다 해도 며느리를 옹호할 야만과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라고 하고, 또 “개새끼(狗雛) 같은 것을 임금의 자식이라고 우기니 모욕을 느낀다”고 한다.(인조실록 24년 2월 9일) 조씨에게 영혼을 빼앗긴 인조의 무도함에 신하로서의 한계를 느낀 대신들은 하나둘 조정을 떠난다.
인조는 강빈의 친정 형제들을 유배지에서 끌어올려 형장을 가하여 죽인다.(1646년 2월 29일) 대신들이 며느리의 친속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옛 제왕 중에는 골육의 변을 잘못 처리하여 후세의 기롱거리가 된 자가 있다고 하자, 왕은 “자식을 죽이고 신하를 죽이는 것은 군부(君父)가 본디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맞선다. 대신들이 “소현이 죽고 여러 고아들의 나이가 어린데 또 그 어미를 죽이면 울어대는 소리를 어찌 차마 들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자 왕이 말한다. “악독한 반역자를 그 울어대는 자식을 위해 용서할 수 있겠는가. 유모가 있는데 죽기야 하겠는가.”(1646년 3월 13일)
1646년 3월 15일, 강빈은 사사되었다. 종묘에는 “강이 역모를 자행하여 그 악이 가득 차 귀신과 사람이 함께 분노했고, 나라 사람들이 죽여야 한다고 하여 의리로써 처단한다”고 보고했다.(인조실록 24년 3월 19일) 또한 일흔에 이른 강빈의 모친 신예옥(申禮玉)을 형장으로 끌어내어 수차례 심문한 후 사형에 처했고, 강빈의 부친 우의정 강석기는 부관참시에 처했다.
어린 손자들을 사지로 내몰아
이듬해에는 소현의 세 아들 석철(12세)·석린(8세)·석견(4세)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섬의 풍토에 적응하지 못한 첫째와 둘째가 연달아 죽자 할아버지 인조는 “너무도 흉측하고 참담하다”는 논평을 내고 보양의 책임을 물어 나인들을 잡아다 엄히 국문하라는 전교를 내린다.(인조실록 26년 12월 24일) 어린 손자들을 사지로 내몰고 그 어미를 죽인 장본인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왕이 상식을 벗어난 심리와 행위를 보일 때마다 기록자들은 소용 조씨(최종 품계는 정1품 귀인)를 언급했다. 인조를 둘러싼 가족의 비극은 권력을 향한 조씨와 그 사돈 김자점의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씨는 대비(장렬왕후)와 왕(효종)에 대한 새로운 저주가 발각되면서 결국 사사되었다. 그녀의 나이 34세였다.
인조 이종(李倧)의 가족 경영은 필부(匹夫)도 비웃을 만큼 초라했고, 폭군도 주저할 잔인한 짓이었다. 스스로 “자식을 죽이고 신하를 죽이는 것은 군부(君父)의 권한”이라고 한 인조, 그는 무능과 왜곡으로 점철된 권력으로 자식을 죽이는 비극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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