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21세기에 웬 귀신? 당신의 불안한 마음이 괴물로 키운다
무속과 민간신앙은 21세기 우리 곁에도 있다. 요즘 화제인 드라마 ‘악귀’에선 초자연적 판타지이면서 현실풍자 도구로, 최근 시즌3을 시작한 토크쇼 ‘심야괴담회’에선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깃거리로서 나타난다.
현재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계 캐나다 미술가 제이디 차의 개인전에서도 무속은 옛 한국 신화를 전달해주는 매개체다. 무속에서 영감을 받은 미술가들은 예전부터 많다. 직접 굿 퍼포먼스를 한 비디오아트 거장 백남준부터 무속 그림으로 민중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박생광, 전통 무속을 스크린에 담아 근대화의 폭력성을 돌아본 박찬경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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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토크쇼 등에 자주 등장
수많은 예술가의 상상력 자극
정치에선 ‘내로남불’ 공격 수단
불확실한 사회 되비추는 거울
」
무속에 대한 이중적인 시각
이렇듯 무속은 학문과 예술의 중요한 원천이지만, 실생활에서는 매우 껄끄러운 존재다. 무속 느낌이 풍기는 미술작품을 거리에 설치하면 어김없이 민원이 들어온다. 무속 사기 범죄가 종종 일어나다 보니 사람들은 무속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많이 드러낸다. 하지만 무속인 유튜브를 시청하고, 일이 잘 안 풀리면 점집에 가는 사람도 많다.
무속에 대한 이중성은 정치판에서 두드러진다. 상대 진영에 무속을 믿는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언제나 효과적인 공격이지만 그 공격 주체도 무속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은 게 밝혀져 역공을 당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반된 태도는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교국가 조선에서 무당은 여덟 종류 천민 중 하나였고, 왕실과 사대부가 무당을 가까이하면 바로 비난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적지 않은 이들이 암암리에 무속에 기대곤 했다. 그 드라마틱한 증거는 현재 샤머니즘박물관이 들어선 서울 구파발 금성당이다. 금성대군(세종의 여섯째 왕자. 단종 복위 운동을 하다가 처형)을 신으로 모신 신당이었는데, 왕실에서 이곳에 제물을 보내 왕의 건강을 빌었던 기록이 남아 있다.
21세기에 무속과 민간신앙이 새로운 매체를 타고 재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 사회가 정신없이 돌아가다 보니 불안감이 더 커졌지만, 미래에 대한 확실하고 낙관적인 답을 듣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은 인간의 심리는 예나 지금이나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귀신 물리친 고려 말 나옹 선사
그런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면 좋은지에 대한 지혜가 담긴 옛이야기가 있다. 조선 중기 문인 유몽인(1559~1623)의 『어우야담』을 보자. 나옹 선사(1320~1376)는 고려 말 공민왕의 왕사(王師)였으며 무학 대사의 스승이었는데, 그에 대해 다음 같은 민담이 전해온다.
어느 절의 주지로 새로 부임한 나옹이 절에 귀신이 붙어 있음을 간파했다. 불당에 있는 거대 목조 불상을 보더니 그것을 쓰러뜨리라고 명령했다. 승려들은 소원을 빌면 들어주는 영험한 불상이라면서 부처님이 노하실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러자 나옹은 “너희는 부처님을 믿는 것이냐, 불상을 믿는 것이냐”며 호통쳤다. 마지못해 승려들은 불상에 밧줄을 걸어 잡아당겼으나 100명이 달려들어도 꿈쩍하지 않았다. 모두 영험한 불상이라며 두려움에 떨었다. 나옹이 직접 받침대를 놓고 올라가 불상을 한 손으로 밀자 놀랍게도 불상은 즉시 쓰러졌다. 불상을 끌어내 불태우니 기이하게도 나무 타는 냄새가 아니라 노린 내가 온 산에 퍼졌다.
나옹은 말했다. “불상에 공양을 올리고 부처님이 아니라 그 물건을 믿으니 귀신이 불상에 붙어서 거짓으로 석가여래의 영험인 것처럼 꾸미는 일이 종종 있다. 처음엔 소원을 들어주지만 결국엔 절 전체가 화를 입는다.”
귀신도 울고 간 강직한 관찰사
조선 후기 야담집 『청구야담』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옛날 문경새재 산마루에 귀신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 그 주변 지역 관리들은 이들은 이곳을 지날 때 반드시 성대한 굿을 올렸다. 그러지 않으면 재앙이 닥친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느 날 신임 관찰사가 문경새재를 넘어가자 아전들이 굿을 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강직한 관찰사는 “그런 요사스러운 짓은 하지 않겠다”며 물리쳤다. 그러자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쳤고 사람들은 귀신의 소행이라며 두려워했다. 관찰사는 도리어 사당에 불을 지르라고 명했고, 아전들은 마지못해 사당을 불태웠다.
그날 관찰사는 새재를 내려와 역관에서 묵었는데, 꿈에 귀신이 나타났다. “네가 예도 올리지 않고 내 집까지 태워버렸으니, 만약 사당을 다시 세우지 않으면 너의 맏아들을 죽일 것이다.” 그러나 관찰사는 귀신을 꾸짖었고, 귀신은 “두고 보자”며 사라졌다. 다음날 놀랍게도 관찰사의 맏아들이 여독이 심해져 급사하고 말았다. 관찰사는 몹시 슬퍼했다. 얼마 후 귀신이 다시 나타나 둘째 아들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자 관찰사가 재차 꾸짖었다. 그러자 둘째 아들 또한 숨지고 말았다. 이후 귀신이 또 나타났다. 셋째 아들까지 죽이겠다 하니 관찰사는 “인명은 재천인데 한낱 귀신의 말 따위는 믿지 않는다”며 귀신을 칼로 베려 했다. 그러자 귀신이 울며 무릎을 꿇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저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다만 미래를 볼 수 있어 어르신의 두 아드님이 곧 수명을 다할 운명이라는 걸 알아 어르신을 협박한 것이었는데, 어르신에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아드님은 장수할 것입니다. 이제 어르신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부정하지 않되, 흔들리지 말아야
이 두 이야기는 귀신의 존재 자체는 인정한다. 하지만 귀신은 인간의 나약한 마음에 기생해서 힘을 키우며, 올곧고 굳센 마음으로 무시하면 감히 인간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깨우친다. 즉 부정하지는 않되 휘둘리지는 않는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현대인이 무속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통 무속은 학문과 문화의 중요한 자양분이 되고, 가벼운 오락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에 빠져들면 귀신을 괴물로 키워주는 꼴이 된다.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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