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읽기] 스윗함에는 죄가 없다
사탕수수는 잎 표면에 날카로운 가시가 많아 제대로 된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으면 수확이 어렵다. 과거에는 흑인 노예들이 사탕수수를 키워 노동 환경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문명화된 현대에선 용납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농장주들이 찾은 묘수가 사탕수수밭에 불을 지르는 것이었다. 사탕수수 줄기는 불에 강해, 잎만 태워버리면 수확이 쉬워져서다. 이렇게 광활한 사탕수수밭에 불을 질러 생산되는 설탕이 연간 잠실의 석촌호수 30개를 채울 분량인 1억9000만톤에 달한다. 지금도 사탕수수 노동자들은 새하얀 설탕 뒤에 숨은 검은 연기를 마시며 일한다.
물론 설탕 대신 감미료로도 단맛을 낼 수 있다. 그렇지만 최근 아스파탐을 둘러싼 발암 논란이 발목을 잡았다. 국제암연구기관(IARC)에서 아스파탐을 ‘인간에게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분류했는데, 그로 인해 감미료의 유해성 논란이 불필요하게 커졌다. 실제로 인간에게 유해할 정도로 먹으려면 아스파탐을 매일 2800㎎씩 먹어야 하는데, 동일한 단맛의 설탕으로 환산하면 500g짜리 설탕 한 봉지를 매일 먹는 수준이다. 설탕을 밥 대신 퍼먹는 게 아니라면 아스파탐을 유해할 정도로 먹기가 더 힘들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조직적인 감미료 반대가 일어나는 데는 사연이 있다. 감미료가 설탕 소비를 극도로 줄이기 때문이다. 아스파탐 1g은 설탕 200g의 단맛과 맞먹는다. 바꿔 말하면 설탕 200g을 쓸 곳에 아스파탐은 1g만 써도 된다는 의미다. 국내 소매가 기준으로 아스파탐 1㎏이 4만원이니, 설탕으로 환산하면 설탕 1㎏에 해당하는 단맛을 고작 200원으로 낼 수 있다. 진짜 설탕은 1㎏에 2000원. 아스파탐이 설탕보다 10배나 저렴한 것이다. 이러니 제국주의 즈음부터 업을 이어온 다국적 설탕 기업에겐 감미료 대중화가 기업의 존속을 뒤흔드는 심각한 재난이다. 감미료에 악의적 흑색선전을 펼 유인이 충분한 것이다.
안전에 관해서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이번 아스파탐 발암물질 분류 결정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라는 이례적인 성명을 냈고, 유럽식품안전국(EFSA)도 아스파탐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걸 재확인했다. 과거 사카린이 발암물질이란 누명을 뒤집어쓰고 퇴출당했다 복권된 일을 아스파탐이 똑같이 겪는 셈인데, 아스파탐의 진짜 죄목이 다국적 설탕 기업의 이익을 해친다는 점이라면 지나치게 음모론적인 접근일까.
근거가 희박한 발암 가능성보단 설탕에 의한 비만과 당뇨병 위험이 훨씬 더 건강에 나쁘다. 게다가 설탕 산업에서 발생하는 환경파괴와 노동 착취는 아직도 진행 중인 문제다. 건강과 윤리 양쪽에서 지은 죄는 설탕이 훨씬 더 많은데, 애꿎은 감미료만 매를 맞아 딱할 뿐이다.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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