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천국’ 알래스카에 연어가 사라진다… 기후변화 탓
왕연어 36년 만에 6분의 1로 줄어
효자상품 급감… 주민들 생계 타격
환경단체선 ‘어획 금지’ 소송 갈등
미국 알래스카가 ‘연어 천국’이라는 수식어를 잃게 될 위기에 봉착했다. 전(全)지구적 기후변화가 야기한 해온 상승과 댐 건설로 인한 환경오염, 과도한 낚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연어의 개체수 급감은 연쇄효과마저 일으키는 중이다. 연어를 먹이로 삼는 태평양 범고래 역시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됐고, 알래스카 원주민 문화도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어서다.
뉴욕타임스(NYT)는 19일(현지시간)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맥킨지의 연구보고서를 인용해 “알래스카에서 어획돼 가공업체에 판매되는 ‘왕연어(king salmon)’ 양이 지난 40년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며 “지난해 여름엔 알래스카 주요 하천으로 회귀하는 연어가 사상 최소로 기록됐다”고 보도했다. 올해는 전 세계 해수면 온도가 역사상 가장 높게 관측되는 상황이어서 한류 어종인 연어 개체수가 지난해보다 더 급감할 전망이다.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면 알래스카의 한 가공업체는 1985년 알래스카산 왕연어를 1320만 파운드(약 216억원)어치 구매했지만, 2021년엔 구매량이 260만 파운드(약 42억원)에 불과했다. 36년 만에 무려 6분의 1 토막이 난 셈이다.
태평양연어위원회는 2021년 보고서에서 워싱턴주 시애틀 주변 강에서 부화하는 왕연어 개체수가 1984년 이후 60% 감소했다고 밝혔다. 키나이강에서 매년 포획되는 왕연어 개체수도 2017∼2020년 사이 48% 이상 감소했다는 통계도 있다.
야생 왕연어는 알래스카를 대표하는 어종이자 관광자원이다. 알래스카 남동부 해안에만 900여척의 대형 트롤(저인망) 어선이 있는데, 이 어선들이 왕연어 어획으로 지역사회에 가져다주는 경제적 효과는 8500만 달러(약 1076억원)에 달한다.
왕연어가 알래스카 지역사회를 수백년간 지탱해 온 효자상품인 만큼 어획량 감소는 어민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다. 알래스카 동남부 펠리컨섬에서 태어난 에글스턴은 “우리 모두 겁에 질려 있다. 생계를 유지할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중”이라고 토로했다. 어류 생물학자인 마크 스토퍼는 “어민들 모두가 왕연어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며 “기후변화로 바다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됐다”고 했다.
알래스카 연어가 급감한 가장 큰 원인은 북태평양 해수 온도 상승이다. 알래스카 내 가장 큰 부족민인 클링깃족·하이다족 중앙위원회의 회장인 리처드 피터슨은 “유콘강을 오가는 왕연어는 우리에겐 광산 속 카나리아와 같다”며 “바닷물이 따뜻해진 게 이리 엄청난 피해를 낳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연어가 바다로 유입되지 않으면서 태평양 범고래도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다. 환경단체들은 멸종위기인 범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이들의 주 먹이인 왕연어 어획을 아예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는다.
워싱턴주 소재 전미 야생어류보호협회는 범고래 보호를 위해 알래스카산 야생 왕연어를 멸종위기종에 등재해야 한다며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연어를 잡지 않는 것만이 범고래와 연어를 모두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협회 전무이사인 엠마 헬버슨은 “알래스카에선 한쪽 면만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곳에 사는 많은 이들이 범고래와 왕연어 멸종을 정말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생태계를 보전해 왕연어와 범고래를 지켜야 한다는 환경단체의 이상과 왕연어를 생계수단으로 삼아온 알래스카 주민들은 이제 화해할 수 없는 갈등 상태에 봉착했다고 NYT는 전했다. 야생어류보호협회가 알래스카 주정부와 미 수산청, 알래스카 트롤어업협회를 상대로 야생 왕연어 어획을 금지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지난 5월 알래스카 왕연어 어획을 금지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으나, 피고 측 항소로 유예돼 어획기인 지난 1일부터는 어업이 가능한 상태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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