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사업자, 국가예산 빼먹기…6년간 7000억 입찰담합
백신 관련 사업자들이 담합을 통해 입찰 가격을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담합에 참여한 회사만 32곳에 달할 정도로 제약사와 의약품도매상 사이에서 담합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입찰 담합 규모는 총 7000억원에 달했다.
20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광동제약·녹십자를 비롯한 32개 백신 관련 사업자의 입찰 담합과 관련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409억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2013년부터 시작한 이들의 담합은 2019년 적발될 때까지 이어졌다. 담합을 통해 참여한 입찰 횟수만 170차례에 이른다. 낙찰 예정자와 들러리 회사, 입찰 가격을 정해놓고 입찰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입찰 담합이 이뤄진 건 모두 정부 예산으로 진행하는 국가예방접종사업 관련 백신이다. 인플루엔자·간염·결핵·파상풍·자궁경부암 백신 등 담합 품목만 24개에 달했다. 정부가 비용을 지원하는 사업에서 담합이 이뤄지다 보니 비싸진 백신 구매 가격만큼 정부 예산 부담으로 돌아갔다.
공정위는 2019년 한국백신 등을 시장지배적지위 남용으로 검찰에 고발했는데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담합 정황을 발견해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했다.
백신 제조사(글락소스미스클라인), 백신 총판(광동제약·녹십자·보령바이오파마·SK디스커버리·유한양행·한국백신판매 등 6곳), 의약품도매상으로 구분된 백신 입찰 참여자는 각자 역할을 분담했다. 2016년 전까지는 전체 백신 물량의 5~10%인 보건소 물량만 정부가 구매했기 때문에 입찰 규모가 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의약품도매상끼리 돌아가며 낙찰 예정자를 합의했다. 2016년 전체 백신 물량을 정부가 구매하기로 하자 백신 총판이 직접 입찰에 참여해 의약품도매상을 들러리로 세우고 낙찰을 받았다. 백신 제조사는 낙찰가격을 높여 공급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담합을 지시하고, 직접 들러리를 섭외하기도 했다.
170건의 입찰 담합 중 실제 낙찰로 이어진 건 147건이다. 이 중에서 80%에 달하는 117건에서 낙찰금액이 기초금액을 넘어섰다. 기초금액은 조달청이 입찰 이전 계약가를 참고해 정하는 시장가격이다. 담합 없이 경쟁을 통해 이뤄진 입찰에선 통상 낙찰가격이 기초가격보다 낮다. 담합이 실제로 정부의 구매 가격을 높였다는 의미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입찰 담합으로 인해 정부 예산이 효율적으로 집행되지 못했다”며 “백신 입찰 시장에서 장기간에 걸친 담합 관행이 만연하면서 들러리 섭외나 입찰가격을 공유하는 게 쉬웠고, 담합이 더욱 고착되는 악순환이 지속했다”고 말했다.
세종=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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