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팔도 이야기 여행 ③ 제주도 친환경 여행
특히 우도 상황이 심각하다. 1년에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우도에 들어가면서 하루 3∼5t씩 쓰레기가 배출되고 있다. 제주관광공사가 우도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활동이 ‘일회용 컵 없는 우도 만들기’ 캠페인이다. 지난해 8월부터 우도 카페 12곳에서 다회용 컵을 사용 중인데 반응이 좋다. 지난해 말까지 다회용 컵을 사용한 사람은 8613명. 반납률은 94.1%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제주도를 망가뜨리는 주범은 관광객, 바로 당신이다. 하여 제안, 아니 부탁한다. 제주도를 여행하실 때 제주를 아끼는 마음을 담아주시라. 제주도를 사랑하는, 나아가 지구를 생각하는 제주도 여행법을 소개한다.
올레길 작은 쉼터, 폐플라스틱 벤치
지난 4일 오전 10시30분 제주도 송악산. ‘2023 바당길, 깨끗하길’ 캠페인이 열렸다. 캠페인 참가자 60여 명이 송악산 아래 일본군 진지동굴 주변에서 약 20분간 모은 쓰레기만 트럭 한 대 분량이었다.
‘바당길, 깨끗하길’은 ㈔제주올레와 한국관광공사가 진행하는 플로깅(Plogging·길을 걸으며 쓰레기 줍는 활동) 캠페인이다. 4일 행사는 올해 치른 5회째 캠페인으로, 참가자들은 제주올레 10코스 약 2.5㎞ 구간을 걸으며 쓰레기를 치웠다. 한국관광공사 김만진 제주지사장은 “제주올레 캠페인에 쓰레기봉투·장갑·집게 등 장비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올레는 친환경 활동에 진심이다. ‘그린올레’라는 이름으로 1년 내내 쓰레기를 치운다. ‘바당길, 깨끗하길’ 캠페인 말고도 여러 기업·기관과 함께 그린올레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행사가 ‘클린올레’다. 제주도민과 올레꾼이 둘째·셋째 토요일 올레길을 걸으며 쓰레기를 치우는 정기 행사다. ‘나꽁치(나부터 꽁초를 치웁시다)’와 더불어 10년도 더 된 친환경 활동이다. 4일 행사에 참여한 박조은(26)씨는 “부모님과 함께 제주올레 27개 전 코스를 22번 완주했다”며 “클린올레 행사도 13년째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올레에는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의자 ‘모작 벤치’도 있다. ‘모작’은 ‘매듭’이란 뜻의 제주 방언으로, 2021년 락앤락과 함께 제작했다. 현재 제주올레 코스 4곳에 모작 벤치가 설치돼 있다. 사람 한 명이 앉을 수 있는 방석 크기 의자 한 개를 만드는 데 폐플라스틱 16㎏이 들어간다고 한다. 모작 벤치 디자인은 제주올레 이정표 간세를 디자인한 오준식 디자이너 작품이다.
㈔제주올레 안은주 대표는 “제주올레 공식 안내소를 방문하면 쓰레기봉투를 나눠준다”며 “클린올레 모바일 스탬프 27개를 모으면 클린올레 완주 메달과 완주증서도 준다”고 말했다.
헌책 30만권 도서관도 둘러볼까
탐나라공화국은 남이섬 신화 강우현(70) 대표가 제주도에서 10년째 일구고 있는 테마파크다. 쓰레기를 재활용해 기발한 관광 상품을 개발했던 주인공답게 강우현 대표는 제주에 내려가서도 세상에서 하나뿐인 업사이클 테마파크를 만들고 있다.
2019년 제주 중문관광단지의 랜드마크였던 풍력발전기가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날개가 파손됐다. 망가져 쓸모없어진 풍력발전기를 강우현 대표가 갖고 갔다. 그리고 멀쩡한 날개 두 개를 세워 정문 옆에 세웠다. 멀리서 보면 깃털 같기도, 날카로운 날개 같기도 한 탐나라공화국 입구 조형물이 사실은 폐기 직전의 풍력발전기 날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풍력발전기 본체는 지난달 ‘하늘등대’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강우현 대표는 풍력발전기 본체를 세워 20m 높이의 원형 기둥을 만들었다. 그리고 기둥 위에 24시간 빛을 쏘는 등대 조형물을 설치했다. 제주도를 비추는 빛을 강우현 대표는 모두 108명에게 분양했다. 한 개에 999달러(121만원)씩이었는데, 분양 공고가 나간 지 1주일 만에 완판됐다. 강우현 대표는 “풍력발전기 기둥으로 일단 등대를 세웠다”며 “등대 불빛에 인공지능을 활용해 제작한 영상을 쏘는 야간관광 명소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탐나라공화국은 가위 업사이클링 공화국이라 할 수 있다. 중문관광단지에서 죽은 야자나무 180주는 화분으로 변신했고, 농가에서 버린 돼지 여물통은 조명기구로 거듭났다. 공사장에서 갖고 온 맨홀과 유리 조각은 각각 조형물과 벽돌이 되었고, 귤을 담았던 나무상자는 컵 받침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전국에서 모은 헌책 30만 권으로 헌책 도서관을 세운 강우현 대표는 그 도서관에서 책을 테마로 축제를 연다. 탐나라공화국은 지난해부터 제주도 교육청의 업사이클 위탁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두 발로 제주 시내서 한라산까지
산지천이라는 하천이 있다. 제주 구도심을 가로지르는 하천으로 제주항 왼쪽 어귀에서 제주 북쪽 바다와 몸을 합친다. 그 산지천 맨 아래 다리가 ‘용진교’다. 이 용진교에 새벽마다 수상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이름하여 ‘제로 포인트 트레일(Zero Point Trail)’ 도전자다. ‘제로 포인트 트레일’은 해발 0m 지점에서 시작해 한라산 정상(1947m)까지 31㎞ 길이의 트레일을 오로지 두 발로 걷는 어드벤처 프로그램을 말한다. 동력의 도움을 일절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레저 활동이라 할 수 있다. 2019년 같은 이름의 스타트업을 유아람(39) 대표가 설립했고, 이듬해부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라산 도전 일정은 다음과 같다. 새벽 4시 산지천 용진교에서 참가자 미팅을 한다. 여기에서 간단한 규칙과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참가자들은 제주 시내를 지나 관음사 입구까지 13.5㎞를 올라간다. 여기에서 한라산 등반 코스가 시작된다. 백록담까지 오른 뒤 성판악 코스로 내려온다. 관음사 탐방로 코스 8.7㎞ 구간을 오르는 것도 힘든데, 제로 포인트 트레일은 굳이 사서 고생을 한다. 19일 현재 한라산 코스 완주자는 1600명이 넘는다. 유아람 대표의 말이 재미있다.
“제로 포인트 트레일에 성공해도 사실 완주증 주는 게 전부다. 그래도 인기가 높다. 열띤 호응에 힘입어 설악산·지리산·서울에서도 제로 포인트 트레일을 시작했다. 6월 24일 지리산 코스를 열면서 한라산·설악산·지리산을 모두 도전하는 ‘쓰리 픽스(Three Peaks) 챌린지’를 시작했는데, 최근의 집중 호우에도 18일까지 39번째 완주자가 나왔다. 완주자 중에 78세 어르신도 계신다. 참가자가 모이면 썩는 재질의 쓰레기봉투를 나눠 준다. 나는 참가자들에게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흔적을 남기자고, 먼저 길을 걸은 사람이 깨끗하게 치운 흔적을 남기자고 말한다.”
제주도=글·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병간호 딸에겐 한 푼 안 줬다…엄마 유언장의 배신, 방법은? | 중앙일보
- 울산선 열자마자 호흡곤란...'독극물 의심' 우편물에 적힌 내용 | 중앙일보
- 해병대 어이없는 실수…고 채수근 상병 빈소, 아버지를 夫로 표기 | 중앙일보
- "이 멋진 걸 엄마 아빠만 봤다니"…54세 김완선에 빠진 MZ 왜 | 중앙일보
- 퇴직 후 월 330만원 쓰려면…27년간 월 75만원씩 부어라 | 중앙일보
- '의원 연루설' 맘카페 유포자, 한기호 앞에서 눈물로 선처 호소 | 중앙일보
- "서영교 딸은 미혼이다"…서이초 교사 사망 관련 의혹 일축 | 중앙일보
- 만취 상태로 택시 태워진 20대 여성…이 한마디 덕에 위기 탈출 | 중앙일보
- 35살이 왜 어린이보험 가입해?…금감원이 던진 이 질문 | 중앙일보
- 성병 진단 후 일부러 여성과 성관계…20대 남성이 받은 처벌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