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프렌즈' 제작자가 복날 한국 온 이유…76만뷰 개고기 실태

나원정 2023. 7. 2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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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누렁이' 케빈 브라이트 감독
케빈 브라이트 감독이 18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다큐멘터리 '누렁이'를 위해 내한했을 때 구입한 개량한복을 입고 기자를 맞은 그는 다큐를 계기로 자주 드나들며 한국이 더 친숙해졌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미국 인기 시트콤 ‘프렌즈’(1994~2004) 제작자 케빈 브라이트(68) 감독이 복날에 맞춰 한국을 찾았다. 한국 개고기 산업을 4년간 자비로 직접 취재해 만든 다큐멘터리 ‘누렁이’를 들고서다.
앞서 ‘누렁이’는 2021년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 초청돼 “민감한 쟁점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접근했다”고 평가받은 바 있다. “개고기는 한국 문화‧역사”라는 ‘개고기 박사’ 안용근 전 충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의 주장을 비롯해 육견협회 관계자, 농장주 등 개고기 찬성파와 강형욱 동물 훈련사,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표창원 전 의원, 동물보호가 등 반대파 의견을 다큐에 고루 담았기 때문이다.
전국 1만여개에 달하는 개농장의 비위생적 사육환경, 연간 도살량이 최소 150만 마리 이상이라는 등 다큐 속 식용견 관계자가 밝힌 실태는 한국 사람들도 잘 몰랐던 내용이다. 식용견을 전기 침살로 감전사시키는 도축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같은 해 유튜브에 무료 공개한 ‘누렁이’는 누적 조회수 76만 회를 기록하며 논쟁을 일으켰다.

브라이트 감독은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연기된 한국 관객과의 대화 자리를 22일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누렁이’ 상영 후 다큐 출연자 및 관객들과 토론회를 개최하는 그를 18일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따로 만났다.


"결정권은 韓에…뜻 전하려 편집본 22개나 만들었죠"


그의 아내는 한국 개농장에서 구조한 개를 미국에 입양보내는 'DoVE(Dogs of Violence Exposed) 프로젝트'의 공동 설립자다. 브라이트 감독은 2년 전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한국이 교육 제도‧경제적 위상이 높은 나라로 알았는데 개고기를 먹는다는 말을 듣고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대면 인터뷰로 다시 만난 그는 외국인으로서 조심스러운 입장도 내비쳤다.
“개고기를 계속 먹을지 안 먹을지는 한국인들만이 결정할 수 있다”면서 “영화를 통해 한국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창피를 주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개고기에 관한 사실관계를 분명히 밝혀 결정을 잘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취지에 맞게 전달될 수 있도록 편집본 버전을 22개나 만들고 영화를 100번 넘게 보며 다듬었다”고 제작 취지를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다큐 '누렁이'엔 개농장의 개들을 구조하려 애쓰는 한국의 다양한 동물 보호 단체도 등장한다. 사진 저스트 브라이트 프로덕션스

Q : -‘누렁이’가 유튜브에서 폭발적인 조회수를 올렸는데.
“76만 번이나 봐주셨다는 게 감사하다. 대부분 반응이 긍정적이었다.”

Q : -육견협회 등의 반응은.
“과격한 반응은 없었고 실망은 좀 하셨다. 처음부터 영화에서 모든 입장을 다 보여줄 거라고 설명해 드렸는데, 개고기를 육성하거나 권장하는 영화가 될 거라고 기대하셨던 것 같다.”

다큐 '누렁이'에서 한국 동물 보호단체의 식용견 반대 시위 장면. [사진 웨버샌드윅 코리아]

Q : -개고기는 법적으로 식품 원료나 가축으로 분류되지 않은 채 법의 사각지대에 존재해왔다. 2년 전 다큐를 공개한 이후 크게 바뀐 점이 없다.
“모든 변화는 느리다. 개고기 문제는 특히 복잡하고 인식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 개고기를 먹는 게 한국의 이미지를 좋지 않게 만든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한다. 개는 가축이 아니고, 음식도 아니라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지금 이순간에도 수백만 마리 개들이 유통되고 있다. 식용견이 금지되면 농장의 개들은 다 어떻게 할 것인지, 철저한 계획과 시간이 필요하다.”


"犬도살 장면은 감정과 뇌 분리…육식 피하게 됐죠"

Q : -개농장의 잔혹한 현장을 다큐에 담았는데.
“개 도살 장면을 촬영할 때는 내 감정과 뇌를 분리해야 했다. 마음의 준비를 위해 다른 가축들의 도살 영상들을 미리 보기도 했는데 이후로 공장형 가축 사육 방식 자체에 회의를 품게 됐다. 가급적 고기를 안 먹고 해산물 정도만 먹게 됐다.”

Q : -다큐 속에서 반려견을 키우는 개소주집 사장처럼 식용견과 반려견을 구분하는 시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은 반려동물 산업이 20년 정도 밖에 안돼서 그렇게 분리하는 사고방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개고기 산업을 통해 수익을 얻는 종사자는 특히 생각을 바꾸기 어렵다. 하지만 다큐를 촬영한 6년 전 쯤에도 이미 세상이 변하고 있었고 개소주 가게 사장님도 과일즙, 건강 주스로 전환하고 있었다.”


"개는 사람들의 보호자·반려동물로 진화…가축 아냐"


케빈 브라이트 감독이 18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반려견 '호프(Hope)'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김현동 기자
브라이트 감독은 미국 자택에서 한국 개농장에서 구조한 개 ‘호프’와 ‘오스카’를 반려견으로 키우고 있다. 그는 “식용견이라는 개들을 집에 데려와 보면 반려견과 다른 게 하나도 없다. 저도 데려오기 전까지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Q : -시트콤 ‘프렌즈’를 즐겨 본 한국팬 중엔 브라이트 감독이 외국인으로서 개고기 문제에 목소리를 낸 데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이도 존재하는데.
“저는 스토리텔러다. ‘프렌즈’ 스토리텔러가 아니다. 다큐든 드라마든 좋은 스토리라면 영화로 잘 만들어 보여주고 싶다.”

Q : -한국 관객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누렁이’를 L.A. 한인타운에서 상영했었는데, 70대 정도로 보이는 한국 남성 관객이 일어나서 이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한국이 전 세계에 좋은 기여도 많이 했는데 개고기를 먹는 나라로 인식되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면서다. 사실 한국에 계신 분들도 개고기 산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이 영화를 수십만 명이 봤다는 건 변화의 시작점이란 생각도 든다. 또 ‘개는 가축이 아니다’라고 꼭 말하고 싶다.”

한국에 자주 오며 개량 한복을 입을 만큼 친숙해졌다는 브라이트 감독은 최근 광장시장에서 산낙지를 먹은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에게 개고기 이슈에서 자주 제기되는 질문을 던졌다. 소·돼지도 생명인데 왜 개만 가축이 아니라고 하는 것인가.
그는 “모든 개는 야생에서 왔지만, 마을로 들어오며 사람들의 보호자이자, 반려자가 됐다. 다른 동물은 그러지 않았다”며 말을 이었다. “공항에는 마약 탐지견이 있고 시각장애인을 인도하는 개들도 있어요. 이런 일을 하는 동물은 개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개는 반려동물로 진화했고 세계적으로 그렇게 인식되고 있죠. 한국도 그 대열에 합류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다큐 '누렁이'에서 개농장에서 구조된 개를 입양한 주인이 그 반려견과 함께 인터뷰하는 장면이다. 사진 저스트 브라이트 프로덕션스
케빈 브라이트 감독은 한국 개농장에서 구출한 반려견 호프와 오스카의 사진을 보여주며 "소위 식용견이라는 개도 다른 개와 다를 게 없다"고 강조했다. 사진 저스트 브라이트 프로덕션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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