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 된 이산가족 상봉, 실향민에겐 시간이 없다

이혁진 2023. 7. 20.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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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이 바라본 윤 정부 대북정책... 생존자 중 67%가 80세 이상 고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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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 기자]

"통일부 장관이 새로 바뀐다 하더라고."
"권영세 장관이?"
"하긴 바뀔 때도 됐지?"
"근데, 권 장관이 우리 실향민들에게 해준 게 뭐지?"
"....."     

고향을 이북에 둔 이산가족모임에서, 권영세 통일부장관이 그만둔다는 소식을 두고 최근 실향민들이 주고받은 대화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신임 통일부장관에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명했고, 오는 21일 인사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관련 기사: '통일부-외교부 통합' '김정은 체제 파괴' 주장한 통일부장관? https://omn.kr/24keh )

나는 실향민 2세다. 내 주변 실향민들은 지난해 윤 정부가 출범하면서 통일부에 대한 기대가 자못 컸다. 특히 권영세 실세 장관이 통일부를 관장하면, 그간 애타게 기다려왔던 이산가족상봉 등 남북대화와 교류에 있어 물꼬가 트일까 기대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권 장관도 북이 대화를 거부한다는 명분을 들어, 실향민 단체에 가는 곳마다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에 애쓰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다가 결국 물러났다.  
    
남북이산가족 신청자 중 약 70%가 작고
 
 2018년 8월 26일,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마지막날인 당시 26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 및 공동중식에서 남측 동생 강후남(79) 가족과 북측 언니 강호례(89)의 가족들이 대화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정부가 바뀌었지만 실향민 문제에서만큼은 진척이 없다. 성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올해부터 추석 전전날(매년 음력 8월 13일)을 '이산가족의날', 국가기념일로 정해 실향민들에게 위안을 준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산가족상봉 등 실향민의 오랜 숙원은 여전히 답보상태다. 한편으로는 이산가족만남은 이제 실효성 없는 구두선, 즉 행동 없는 말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우선 이산가족들의 고령화가 큰 문제 중 하나로 꼽힌다. 이는 통계가 증명하고 있다. '남북이산가족찾기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https://reunion.unikorea.go.kr)'에 따르면 올 6월 30일 기준, 상봉을 애타게 기다리던 남북이산가족 신청자(1988년~2023년 6월 등록분) 13만 3681명 중 9만 2767명, 즉 69.4%의 신청자가 작고했다. 이산가족상봉이 마지막으로 열린 2018년 이후 5년간 1만7342명이 사망한 셈이다.

현재 남북이산가족 중 생존자는 4만914명에 불과하다. 특히나 생존자 중 67%가 80세 이상 고령자들이다. 안타깝지만 이들 대부분 10년 내에 거의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이산가족문제가 바야흐로 새로운 접근방법을 요구하는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참고로 80세 이상 고령화율을 보면, 2018년 동월 기준 62.8%에서 올해 66.9%로 급증했다.

고령화 추세를 반영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실향민들이 애향모임에서 헤어질 때 서로에게 하는 말이 바뀐 게 바로 그것이다. 과거에는 "통일을 볼 때까지 기다리자"는 말이 유행했지만, 지금은 "다음 만날 때까지 건강하자"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통일은 멀어 보이고, 그새 고령의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다 하나둘 이승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아버지(현 93세)는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개성 인근인 고향 개풍군에 부모와 형제동생들을 두고 국군에 입대했다. 그게 가족과의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2000년 첫 이산가족 상봉행사 이후 매번 상봉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그리고 그리움 속에서 73년 세월이 흘렀다.

아버지는 "이산가족 대부분 돌아가셨는데 이제와서 고향에 가봐야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 걱정이다"면서 "이제 상봉을 기다리는 것도 지쳤다. 대다수 이산가족에게 상봉은 '희망고문'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실향민 인권'도 살피자     
 
 아버지는 1993년 8월 중국을 경유해 '백두산 천지'를 방문했다. 아버지가 당시 백두산에서 가져온, 소량의 천지에서 흘려내온 물과 화산석
ⓒ 이혁진
아버지는 이북에 두고 온 고향 가족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고향 예찬과 고향에 대한 향수는 여전하시다. '고향 가까이 묻어달라'는 실향민들의 유언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버지는 1993년 8월 중국을 경유해 '백두산 천지'를 방문했다. 이북고향과 가족들이 보고 싶어 부러 거기까지 찾아간 것이다. 그때 당시 가져온 소량의 천지물과 화산석을 가까이 두고 아버지는 '고향의 흙'이라 여기고 있다.
     
금강산은 통일이 되면 고향만큼이나 실향민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아버지께서 고향을 이야기할 때 늘 등장하는 명소이기도 하다. 1993년 가을 아버지가 유일한 혈육인 동생과 금강산에 올라 함께 찍은 사진은 통일과 귀향을 염원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왼쪽이 아버지이고 오른쪽이 함께 월남한 유일한 혈육인 작은아버지다. 1993년도에 두 분이 함께 금강산 관광을 가서 촬영한 사진.
ⓒ 이혁진
 
그러나 이제 그리운 금강산을 찾는 여행과 추억은 다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체제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차후의 남북교류와 접촉은 더욱 경색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산가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6월 30일 1983년 KBS TV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이 방송된 지 40년이 지났지만, 이제는 여기에 대해 어느 누구도 관심을 표명하거나 그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단적인 예다. 당시 생방송은 무려 138일, 총 453시간이나 방영돼 얼마나 국민들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선사했던가. 이 프로그램 관련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지정되기도 했다. 

당시 방송 당시, 아버지와 우리 가족들은 북에 두고 온 아버지 형제들 이름을 적은 피켓을 들고 행사장인 서울 여의도 광장으로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었다. 찾다가 서로를 겨우 알아보고 전화로 연락해, 이내 상봉하는 다른 가족들을 보고 함께 울고 웃으면서 우리도 상봉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갖고 생방송을 매일 끝까지 지켜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윤 정부의 대북정책과 통일전략은 강경모드이다. 향후 통일부 존폐론까지 거론되는 마당이다. 그러나 북한 주민 인권을 강조하고 탈북민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실향민 인권'도 전향적으로 다뤄야 할 시점이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이미 '디아스포라' 등 이산가족의 '고향접근권'을 기본적 인권으로 취급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실향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부터 실향민 역사를 바로 새겨야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한반도가 분단된 지 78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0년.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한국 역사의 피해자로 고향을 잃어버린 이들의 애환과 정체성은 기록되고 계승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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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스토리>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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