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들고 눈물의 추모… “교사를 보호해주세요”

임지혜 2023. 7. 20.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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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화환들 사이로 추모하러 오는 교사들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재직 중인 초등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20대 교사 A씨에 대한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20일 추모를 위해 현장을 찾은 교사들은 아이들과 교사가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오후 20대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앞을 찾은 교사들은 “A씨의 죽음에 공감한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추모행사 시간은 오후 3시였지만, 오전부터 추모 현장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오후 3시가 가까워지자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검은 옷을 입은 교사들이 국화꽃을 들고 학교 앞을 가득 채웠다.

현장은 눈물바다였다. 세종시에서 왔다는 30대 교사 김모씨는 “남 일 같지 않다”며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어 왔다는 김씨는 “운이 좋아서 여기 있는 것이지, 저 선생님이 나였을 수도 있겠다고 항상 생각한다”며 “차라리 (교사를) 그만두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화꽃을 들고 추모를 기다리는 대기행렬에선 눈물을 흘리며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교문 앞에 시민들과 교사들이 차린 추모 공간에 추모객과 취재진이 몰리면서 한때 소란이 벌어졌다. 일부 교사들은 안전한 추모를 위해 충분한 추모 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학교 측에 주장했다. 실제 방문증을 끊고 교내에 진입하려 했으나, 학교 측이 건물 문을 잠그면서 소란이 일었다. 방문증을 작성한 서울 영신초등학교 교사 최모씨는 “현재 추모 공간이 위험하고 사고가 날 수 있을 것 같아 교문을 열고 추모 공간을 더 만들어 달라는 건데 안 된다고 한다”며 “(해당 초교 교사로 추정되는 교직원이) 내부에 학생들이 있어 이해해달라고 한다. 이해는 하지만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일부 교사들이 학교 측에 교내 추모 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사진=임형택 기자

오후 4시가 지나자 추모 공간보다 추모객이 더 많아졌다. 교문에는 더 이상 포스트잇(추모 쪽지)을 붙일 공간도 없었다. 교문 밖에서 오랜 시간 추모 순서를 기다린 일부 교사들은 “(학교 내부에) 추모 공간도 안 만들어주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앞서 교내에 진입한 일부 교사들은 다른 추모객들도 입장하게 해달라고, 교문 밖 교사들은 교내 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후 학교 측이 학교 교문 안쪽에 임시 추모 공간을 마련하며 상황이 정리됐다.

이날 추모 현장을 찾은 대다수 교사는 교사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교육 당국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김 교사는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많이 없다”라며 “학교폭력 사건이나 악성 민원이 발생했을 때 담임교사가 감당해야 한다”고 했다.

교사의 정상적인 교육활동이 ‘아동학대’로 신고되고, 교육당국으로부터 어떠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경기도 한 초등교사 B씨는 학교 주변을 전부 둘러쌀 정도로 늘어선 근조화환을 가리키며 “이렇게 많은 근조화환이 온 이유는 지금 (교사들이) 죽을 것 같은 상황이기 때문”이라며 “교사는 교육부나 교육청, 학교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초등교사 C씨는 “교사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는 현장에서 매우 큰 문제”라며 “모든 출발점이 학교폭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학부모가 자녀를 방어하기 위해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문에 붙은 추모 쪽지.   사진=임형택 기자

이날 현장을 찾은 한 교사 D씨는 교실에서 다툰 학생들의 학폭 신고 과정에서 아동학대로 신고받아 휴직 중이라고 밝혔다. 26년간 교직에 있었다는 D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반 아이들에게서 떨어지게 됐다”라며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연락할 때마다 슬프다”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는 “변호사 선임도 전부 교사 개인이 해야 한다”라며 “학교와 교육청, 교육부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다. 억울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 교사 E(20대)씨는 “악성 민원이 있어도 담임 교사가 다 짊어져야 하는 시스템이라서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들은 힘겨워하고 있다”며 “온갖 황당한 요구나 부탁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교사 자격을 운운해 교사로서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많다”고 털어놨다. 이어 “A씨를 둘러싼 일을 진상 규명하고 관련자들을 다 처벌하면 좋겠다”며 “또 학부모 민원을 교사가 전부 감내하는 게 아니라, 교육당국이 함께 해결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B씨도 “일부 학부모는 연락해서 아이 점심 약을 먹여달라고 하거나, ‘누구 옆에 앉혀달라’고 요구한다”라며 “학생에게 선크림을 발라달라고 요청하는 학부모도 있다”고 말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초등학교에서 숨진채 발견된 A씨를 추모하기 위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 방문했다.   사진=임지혜 기자  

추모를 위해 이날 오후 5시27분 학교를 찾은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정당한 교육활동을 하더라도 이를 위축하는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학생의 학습권과 인권 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교사가 정상적인 교육 활동을 해도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등 위축되는 일이 있는 걸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말이다. 이어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춰야 한다”라며 “학부모 민원이 정당하고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뤄지도록 인식과 문화를 같이 개선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차관에 따르면 다음날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의 간담회를 통해 교사들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장 차관은 “참담하고 비통한 일이 발생한 데 대해 교육 정책을 책임지는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며 “유명을 달리하신 선생님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장 차관은 “떠나라”고 항의하는 교사와 시민들의 목소리 속에 도착 10여분 만에 현장을 떠났다. 

한편 서울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었던 A씨는 지난 18일 오전 학교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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