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키신저 만나 "기로에 선 中·美 윈-윈해야"

김상도 2023. 7. 2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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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오후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중국 지도부가 가장 신뢰하는 미국 인사'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을 접견했다.

특히 시 주석은 키신저 전 장관이 1971년 극비리에 베이징을 방문해 저우언라이 총리와 회동했던 국빈관 5호 건물에서 그를 영접해 극진히 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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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 “미·중관계는 세계평화, 인류사회 진보와 직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20일 오후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 환담하고 있다. ⓒ 중국 CCTV 홈페이지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오후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중국 지도부가 가장 신뢰하는 미국 인사’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을 접견했다. 특히 시 주석은 키신저 전 장관이 1971년 극비리에 베이징을 방문해 저우언라이 총리와 회동했던 국빈관 5호 건물에서 그를 영접해 극진히 환대했다. 중국 최고 지도자가 키신저 전 장관을 이곳에서 만난 것은 처음이다.

중국 관영 중앙TV(CCTV)는 이날 “시진핑 주석과 키신저 박사가 만나는 장소는 그가가 과거 저우언라이를 만났던 국빈관 5호 건물”이라며 “반 세기가 지났지만 중국은 여전히 라오펑유(오랜 친구)와의 우정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키신저 전 장관이 1971년부터 현재까지 100여 차례 중국을 찾았고, 이번 방문은 100세 이후 첫 중국 방문이라고 덧붙였다.

시 주석도 회담에서 “키신저 박사가 얼마 전에(5월) 100세 생일을 맞은 데다 지금까지 100회 이상 베이징을 방문했다"며 "이 두 개의 '100'이 합쳐져 이번 방중에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양국 국민 간 우정의 역사적 공헌에 대해 오랜 친구인 당신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더욱이 덕이 있는 사람은 장수한다는 의미의 '대덕필수'(大德必壽)라는 성어를 거론하며 덕담도 건넸다.

시 주석은 이어 "52년 전 마오쩌둥 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가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그리고 당신과 함께 탁월한 전략적 비전을 가지고 중·미 협력이라는 올바른 선택을 내려 중·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며 "이는 양국에 이익이 됐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변화시켰다"고 전했다. 미·중이 공급망·대만문제 등으로 극심한 파열음 내고 있는 가운데 시 주석이 직접 나서 양국관계를 재정립했던 과거를 끄집어내며 미국에 우호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그는 "중·미관계가 또다시 기로에 서게 됐으며, 우리는 다시 한번 선택해야 한다"며 "양국은 함께 성취를 이루고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상호 존중, 평화 공존, 상생 협력 등 세 가지 원칙이 이를 위한 핵심"이라고 밝혔다. 시 주석은 또 "중국은 미국과 공존할 수 있는 올바른 길을 모색하고 양국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하도록 촉진할 용의가 있다"며 "이는 양측 모두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71년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해 댜오위타이 국빈관 5호 건물에서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를 만나고 있는 모습. ⓒ CCTV 홈페이지 캡처

키신저 전 장관은 이에 “중국을 방문하게 돼 영광”이라며 “우리 양국의 관계는 세계 평화와 인류 사회 진보와 직결돼 있다”고 화답했다. 그는 "이번 회담 장소를 과거 중국 지도부를 처음으로 만났던 댜오위타이 국빈관 5호실로 정해준 중국 측에 감사를 표한다"며 "미·중은 곧 세계 평화 및 인류 사회 발전과 맞닿아 있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지난 18일 중국 방문 직후 가장 먼저 미국의 제재 대상인 리상푸 국방부장을 만났고, 19일에는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회담했다.

중국인들로부터 ‘인민의 라오펑유’로 불리는 키신저 전 장관은 1970년대 ‘미·중 데탕트’의 주춧돌을 놓은 주역이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던 1971년 7월 취재진을 따돌리기 위해 칭병(稱病)하고 극비리에 베이징을 방문해 저우언라이 총리와 양국 관계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핑퐁외교(1971년 미·중 탁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또한 그가 설계했다. 키신저의 방중은 이듬해 2월 방중한 닉슨 대통령과 마오 주석의 회담으로 이어졌다. 이때 두 정상은 공동성명인 ‘상하이 코뮤니케’에 서명했고, 이것이 연락사무소 설치(1973년), 미·중 수교(1979년)의 디딤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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