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100세 키신저 박사 100차례 중국 방문…특별한 의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을 만났다. 시진핑 주석은 회담에서 키신저 전 장관의 100세 생일과 중국을 100차례 방문한 것을 언급하며 “두 개의 100이 합쳐진 이번 중국 방문은 특수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고 관영 중국중앙방송(CC-TV)이 회견 영상과 함께 보도했다.
시 주석이 ‘두 개의 100’을 언급한 것은 자신의 대표적인 집권 공약인 ‘두 개의 100년’을 연상시킨다. 창당 100주년이던 지난 2021년까지 빈곤을 퇴치하고, 건국 100주년인 오는 2049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말한다. 1923년 5월 27일 생인 키신저 전 장관의 생일을 빌어 자신의 공약 달성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댜오위타이 국빈관 5호각에서 진행된 이날 회견에는 왕이(王毅) 정치국위원과 마자오쉬(馬朝旭) 부부장 등이 배석했으며 25일째 모습을 감춘 친강(秦剛) 외교부장은 역시 보이지 않았다.
시 주석은 “키신저 박사는 막 100세 생일을 보냈다. 당신의 중국 방문도 이미 100여 차례가 됐다”며 “이 두 개의 ‘100’이 한 데 모인 이번 중국 방문은 특별한 의의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52년 전 중·미 양국은 중요한 전환점에서 마오쩌둥 주석, 저우언라이 총리가 닉슨 대통령과 당신 본인과 탁월한 전략적 안목으로 중·미 협력의 정확한 결정으로 중·미 관계 정상화 프로세스를 시작해 세계를 바꿨다”고 강조했다. 키신저 전 장관의 당시 미·중 데탕트를 다시금 재평가한 발언이다.
시 주석은 이어 “중국인은 인정과 의리를 중시한다”며 “우리는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를 잊을 수 없으며 당신이 중·미 관계의 발전과 중·미 양국 국민의 우의 증진을 추동한 역사적 공헌을 잊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
시 주석은 계속해서 미·중 관계 정상화를 원하는 중국의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그는 “중·미 양국은 다시 한번 십자로에 섰다”며 “양국은 다시 선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미는 완전히 상호 성취하고 공동 번영할 수 있다”며 “관건은 상호존중·평화공존·협력호혜 세 가지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자신이 주장한 이른바 신형대국관계를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시 주석은 또 “당신과 미국의 식견 있는 인사들이 계속해서 중·미 관계가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오도록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에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압력을 행사해 달라는 권유로 보이는 발언이다.
키신저 전 장관은 “시 주석이 내가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지도자를 만났던 댜오위타이 5호각을 회견 장소로 선택해 감사하다”며 “현 정세에서 ‘상하이 코뮤니케’가 확정한 원칙을 마땅히 준수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이 중국에 갖는 극단의 중요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관영 신화사가 보도했다.
이날 회담이 이뤄진 댜오위타이 5호각은 북문과 가까운 서양식 건물로 지난 1971년 7월 9일 당시 48세였던 키신저 전 장관이 비밀리에 베이징에 도착한 당일 오후 저우언라이 총리를 만났던 역사적인 장소다. 이듬해인 1972년 2월 21일부터 28일까지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이뤄졌고 미·중 수교는 그로부터 7년 뒤인 1979년 체결됐다.
시 주석은 친중 성향의 키신저 전 장관을 최근 베이징을 방문한 바이든 정부 장관들과 달리 환대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 당국자들이 다양한 수준의 냉담함과 중국 측 카운터파트 혹은 국영 매체의 잔소리에 직면했던 것과 달리 키신저는 과장되게 환영받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시 주석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상석에 앉아 접견했으며,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존 캐리 기후변화 특사는 만나지 않았다.
시 주석과 키신저 전 장관의 만남은 이번이 9번째다. 시 주석은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앞둘 때마다 중국에 우호적인 키신저 전 장관을 만나왔다. 지난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워싱턴 회담을 앞두고 시애틀에서 만났으며, 지난 2018년 11월엔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트럼프 대통령과 아르헨티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의 대비해 조언을 구했다. 따라서 이번 댜오위타이 회견은 오는 11월 15~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 정상회담 계기 바이든·시진핑 회담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키신저 카드'가 바이든 행정부에 영향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현재 대중국 정책 입안자로 한·미 핵협의그룹(NCG) 출범을 위해 한국을 방문 중인 커트 캠벨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키신저의 당시 결정을 워싱턴이 내린 가장 낙관적인 배팅이었다고 평가절하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차르로 불리는 캠벨 조정관은 지난 2018년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중국 심판(The China Reckoning)’에서 “닉슨과 헨리 키신저 안보 보좌관 모두 데탕트가 베이징과 모스크바 사이에 쐐기를 박고 중국이 미국에 가까워질 것으로 추측했다”며 “닉슨이 화해의 첫발을 내디딘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예상은 모두 틀렸다”고 결론지은 바 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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