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왜 질타만 할까
[하성태 기자]
▲ 폭우 및 제방 유실로 침수(15일 오전 8시 45분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사고 이튿날인 7월 16일 밤까지 실종자 수색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
ⓒ 소중한 |
"지금 당장 (대통령이) 뛰어가도 (호우) 상황은 크게 바꿀 수 없다."
지난 16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해외순방 중 취재진과의 브리핑 자리에서 했다고 알려진 발언이다. 집중호우로 전날까지 충북 청주시 오송 지하차도 사망자만 10명이 넘게 확인되는 등 전국적으로 인명 피해가 속출한 늘어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국내 수해 상황을 고려해 우크라이나 방문 취소를 검토하지 않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 뒤 나온 이 발언은 수해 이재민들과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국정 운영을 책임지는 대통령실의 이런 해명은 이후 '무정부상태'란 자조와 비판을 자처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의 의중을 담았다고 볼 수 있는 대통령실의 메시지가 일종의 사인으로 작용한 걸까.
"거기 (일찍)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20일 오전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충북도청 내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합동분향소을 찾아 내놓은 해명 중 일부다. 불과 나흘 전 대통령실 메시지를 옮겨 놓은 듯했다. 오송 지하차도에서만 14명, 충북 지역에서만 1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고 당일 늦장 대응 등 충북 지역 재난 대응 총책임자인 김 지사를 향한 국민적 질타가 쌓여가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그러면서 김 지사는 "모든 문제는 유가족의 심정으로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밝히도록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책임 소재에서 본인을 제외시키는 듯한 '유체이탈화법'에 가까운 무책임한 말이었다. 이 역시 해외 순방에서 돌아와 재해 복구 지시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의 화법과 닮아 있었다.
▲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해외에서 산사태 소식을 듣고, '그냥 그 주택 뒤에 있는 고런 산들이 조금 무너져 가지고 민가를 좀 덮친 모양이다', 이렇게만 생각을 했지 이렇게 막 바위가 산에서 굴러 내려올 정도로 이런 걸 저도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봐 가지고요.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지난 17일 수해 복구 현장을 찾은 윤 대통령이 피해를 입은 예천 주민에게 건넨 위로다. 대통령실은 '지각 귀국' 논란 일자 해외 순방길에서 윤 대통령이 실시간으로 호우 피해 상황을 보고 받고 대책을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시간 보고를 받은 것이 맞느냐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1년 전인 작년 8월,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서울 신림동 침수피해현장을 찾아 "왜 대피가 안 됐나 모르겠네"라며 의아해했던 태도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이후엔 질타의 연속이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한화진 환경부장관에겐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으면 (물 관리 업무를) 국토부로 다시 넘겨라"라며 역정을 냈다. 지난 18일 비공개 국무회의자리에서라고 한다.
윤 대통령의 질타는 환경부에 그치지 않았다. <중앙일보> 이날 윤 대통령이 경찰을 향해 '현재 경찰을 비롯한 관계 기관과 지자체 등이 책임 떠넘기기만 한다'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당시 지역 관할 경찰서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경찰청 보고에 대한 반응이었다.
이는 하루 앞선 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자리에서 현장 공무원들을 향해 "집중호우가 올 때 사무실에 앉아만 있지 말고 현장에 나가서 상황을 둘러보고 미리미리 대처하라"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윤 대통령의 무책임한 질타는 계속됐다. 수해 복구를 위한 재정 대책을 언급하면서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 정치 보조금을 전부 삭감하라"는 엉뚱한 지시를 내놨다. 50명 넘는 사상자를 낸 참사 앞에 기존 반복해왔던 정치적·이념적 수사를 앞세운 것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해당 발언을 한 대통령실 관계자를 해임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인재를 넘어 관재란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이 와중에 국정운영 최고 책임자인 윤 대통령은 일말의 책임을 통감하는 발언을 내놓은 적이 없다. 대통령실도 마찬가지다.
▲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를 찾아 산사태 피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
ⓒ 연합뉴스 |
서울 강남 지역 침수 피해를 두고 2022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 맞느냐는 국민들의 한탄이 터져 나왔던 게 불과 1년 전이다. 정부가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수해 예방 대책을 지시할 시간은 충분했다. 윤 대통령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태원 참사 이후 대응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당시 참사 직후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은 윤 대통령은 "뇌진탕" 운운하며 미흡한 상황 인식을 온 국민 앞에 드러냈다. 이후 이태원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 역시 경찰을 비롯한 일선 현장 인력을 향해 질타를 쏟아내며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자세로 일관했다. 사태 발생, 질타와 책임 떠넘기기, 감사와 수사, 일부 책임자에 대한 선택적 처벌의 과정이 반복되는 모양새다.
더 큰 문제는 재난에 대처하는 윤 대통령과 정부의 이러한 국정운영과 통치 스타일이 쉽사리 변할 것 같지 않다는 데 있을 것이다. '검사동일체 원칙'과 '검찰 무오류 신화'로 점철된 그 스타일 말이다.
책임보다 질타를 앞세우는 윤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근래 들어 돌출된 것도 아니다. 집권 이후 노골적일 만큼 일관적이었다. 여소야대 국회도, 재난 일선 현장의 경찰과 공무원들도, 수능을 관장하는 교육부도, 노조나 시민단체까지 모두 질타의 대상일 뿐이었다. 국정 운영의 총책임자인 대통령이 질타에 뒤따르는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메시지다. 도지사도, 장관들도 이런 메시지에 영향을 받는 것 아닐까.
반복되는 참사 앞에서 국민들의 불안과 분노를 키우는 것은 누구인가. 적어도 내년 총선 전까지, 대통령이 질타와 호통 대신 반복되는 참사 앞에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로 국민 불안을 해소시키는 장면을 기대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그러는 사이,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섰던 해병 장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뒤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국가가 국민들 좀 그만 좀 죽였으면'이라는 국민들의 한탄은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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