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원 공익위원 간사 "최저임금, 정부가 정하고 정부가 책임지자"
2024년 최저임금(9860원)을 결정한 올해 최저임금위원회는 심의에만 110일을 소요하면서 ‘역대 최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특히 지난 18~19일 열린 마지막 회의에선 15시간의 밤샘 논의를 거치고도 결국 노사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지난 5년간 최저임금위 공익위원 간사로 활동해왔고, 임기 내 마지막 최저임금 심의를 마친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20일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최저임금 제도가 가진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 중요한 시간”이라며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1986년 최저임금법 제정 이후 지난 36년간 반복된 ‘대리인 문제’가 올해 특히 극대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근로자위원도, 사용자위원도 실제로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와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사용자를 제대로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며 "각 위원별로 추천 주체도 다르다 보니 각자 소속된 단체·조합의 이해관계만 주장하면서 소모적인 논쟁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정작 실제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근로자·사용자의 의견은 배제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민주노총이 공익위원 중재안 9920원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라고 권 교수는 말했다. 노사 격차가 180원까지 좁혀지자 공익위원은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민주노총 소속 근로자위원이 이를 거부해 합의가 무산됐다. 결국 노사안 표결을 통해 이보다 60원 낮은 9860원이 최종 결정됐다. 권 교수는 “민주노총이 실리 대신 명분을 선택하면서 정작 최저임금 근로자들은 상당한 손해를 입어야 했다”며 “시간당 60원은 연 단위로 환산하면 15만480원으로, 최저임금 노동자 추정치(300만명)를 곱하면 무려 4500억원 수준의 손실이다. 여기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노동계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권 교수는 노동계와 경영계 인사가 직접 최저임금 심의에 참여하는 현행 구조 대신, 노사가 추천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구조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대리인 문제로 발생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27명(노·사·공 각 9명)으로 구성된 현행 위원 구성을 최소 9명, 많아도 15명으로 줄여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영국은 9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권 교수는 “예컨대 노동계는 최저임금 노동자를 오래 연구한 전문가를 추천할 수 있고, 반대로 경영계는 소상공인 문제에 연구해온 전문가를 추천할 수 있다”며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노·사·공 위원들이 객관적인 데이터를 토대로 논의하고 결정한다면 대표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명확한 최저임금 결정 기준을 마련해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현재 최저임금법상 결정 기준은 ▶근로자 생계비 ▶유사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소득분배율 등 4가지다. 하지만 권 교수는 “사실 유사근로자 임금을 정할 때 노동생산성과 생계비를 고려하는 등 기준이 서로 중복돼 있다“며 “상호배타적인 기준으로 재구성해야 객관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최저임금 결정에 참고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임금 관련 통계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궁극적으로 최저임금을 ‘정부가 결정하고 정부가 책임지는’ 구조로 가야 한다는 것이 권 교수의 생각이다. 권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차라리 정부가 노사 의견을 청취한 뒤 직접 결정하고, 대신 정치적으로 책임도 지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장관급 상설기구인 ‘국가임금위원회’를 설치하고, 산하에 ▶최저임금위원회 ▶공무원보수위원회 ▶공공기관임금결정위원회 등을 두는 구조를 제안했다. 그는 “최저임금 결정 시점도 10월쯤으로 늦춰서 경제성장률과 물가 등 최신 통계를 충분히 반영해 인상 수준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 교수는 늘 이슈의 중심에 섰다. 2021·2022년 최저임금위에서 제시했던 공익위원 산식은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로부터 반발을 사야 했다. 올해 첫 최저임금위 전원회의는 노동계의 거센 사퇴 요구로 파행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 “2019년 구원투수처럼 투입됐는데, 지난 5년 동안 최저임금 제도의 안정화와 예측가능성에 상당히 기여했다고 생각한다”며 “올해를 기점으로 최저임금 제도 개편에 속도가 붙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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