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아이 괴롭히는 어린이집 학부모들, 이유가 참담하다
[조영준 기자]
▲ 영화 <한나 때문에> 스틸컷 |
ⓒ 호우주의보 |
01.
성별이나 인종, 능력과 국가 등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차별이 있다. 이 차별이 문제가 되는 것은 대체로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도록 속인된 것들을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차별을 받는 개인이 다른 집단이나 타인의 도움을 얻지 못할 경우 쉽게 무너지고 절망하게 되는 이유다. 차별이라는 단어로 한번 낙인이 찍히고 난 후에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조차 쉽지 않다. 아직 세상에 맞설 힘이 부족한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도 모자라고 어떤 방식으로 빠져나와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어른들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김달리 감독의 영화 <한나 때문에>에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문제로 어른들의 차별적인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아이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한나(유지아 분)는 다문화 가정 출신의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린이집 다른 원생들의 부모로부터 모진 대우를 받는다. 겉으로는 자신이 차별하는 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아이와 떨어뜨려 놓기 위해 뒤에서 애를 쓴다.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존재는 한나의 반을 맡고 있는 선생님 유영(연금선아 분) 뿐. 영화는 차별적인 시선과 대우로부터 한 아이를 지켜내기 위한 진짜 어른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한다.
02.
모든 어른이 아이 전부를 보호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어떤 어른은 특정한 아이만을 보호한다. 자신의 아이만 귀하고 사랑스러운 부모들. 같은 반 친구인 우진(김의연 분)의 엄마 역시 그중 하나다. 자신의 아들이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한나와 같은 반에 다녀야 하는 사실을 불쾌해한다. 꽤 강경한 쪽이다. 아들의 언어 발달이 느린 이유도 한나와 친하게 지내는 동안 옮은 것이며, 이 어린아이가 나쁜 의도로 성적인 행위를 한다는 소문까지 퍼뜨린다. (영화에서 설명이 되는 것처럼 실제로 유아의 자위행위는 촉감이나 단순한 호기심에 의한 것일 뿐 어른의 행위와는 전혀 다르다.) 모두 한나를 어린이집에서 내쫓기 위한 모함이다.
어린이집의 원장과 다른 선생님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나가 다른 문화에서 와서 배울 게 많다는 명목으로 제 나이보다 더 어린 친구들의 반으로 데려간다. 내보내지 않으면 어린이집을 옮기겠다는 다른 부모들의 협박에 나름의 중재안을 찾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피해를 받는 것은 아무 잘못이 없는 한나일 뿐이다. 영화가 내내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목소리를 듣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자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가해와 폭력 앞에 아이가 할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이 있을까.
▲ 영화 <한나 때문에> 스틸컷 |
ⓒ 호우주의보 |
이 작품의 중심에 놓여 있는 인물들은 모두 상대적 약자에 속한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제대로 된 항의 한번 할 수 없는 한나와 어린이집 원장과 부모들의 입김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선생님 유영 모두가 그렇다. 유영의 경우에는 정식으로 채용된 교사도 아니다. 현실에 떠밀려 자신의 꿈을 잠시 접어둔 채 하게 된 어린이집 선생님. 그렇기에 은근한 강요와 압박에 더욱 손 쓸 도리가 없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한나의 입장에서는 부당한 사실을 알면서도 도움을 주기 어려운 선생님 유영의 도움 없이는 그릇된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든 이중의 함정 속에 빠지게 되는 셈이다.
영화가 그런 유영이 어린 한나를 위해 움직일 수 있도록 제공하는 동력은 동질감이다. 유영 역시 한나와 마찬가지로 다문화 가정에서 자랐다는 설정. 현재 한나가 겪고 있는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그녀의 어린 시절 또한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리라는 예상이 가능한 지점이다. 다른 종류의 것이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차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일하면서 때마다 연극 무대를 찾아 오디션을 보는 유영이 매번 고배를 마시는 이유도 혼혈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한나의 상황을 지켜보며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 영화 <한나 때문에> 스틸컷 |
ⓒ 호우주의보 |
영화의 전반부가 이 사회의 망가진 자리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었다면, 이제 후반부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이 자리를 흔들고 뒤집어 놓는지를 지켜보는 구간이 된다. 다만 섣불리 복구나 회복의 자리까지 언급하지는 않는다. 어느 어린이집 기간제 교사의 행동 하나로 모두 바꿀 수 있는 종류의 가벼운 일이 아님을 진작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선생님 유영은 두 가지 트랙을 취한다. 부모들의 억측에 정확히 반박할 수 있는 근거(CCTV)를 제시하는 일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와 연극을 활용해 현재의 그릇된 상황이 지속될 수 없도록 뒤집어 흔드는 일이다.
독립 영화 특유의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유영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통쾌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어른들의 사정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선생님의 행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사회가 진짜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자신의 행동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말은 하지만 그런 어른들의 걸음 앞에 되려 파괴되고 무너지는 것들이 얼마나 더 많은지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나지만 유영의 싸움은 이제 시작일 것이다. 그녀의 대응에 더 악독한 대응을 해오는 부모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들의 집단행동 앞에 원장의 가혹한 요구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큰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놓지 않고 잘 성장해 온 유영이 자신과 닮은 상황에 처해 있는 한나의 손을 놓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창문 너머로 미소 짓는 유영의 마지막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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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작품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의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열두 번째 큐레이션 ‘내 일기장 속 영웅들’ 중 한 작품입니다. 오는 2023년 7월 30일까지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회원가입 후 시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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