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비주얼-메시지까지 다 잡았다, 영화 '바비'
[장혜령 기자]
▲ 영화 <바비> 스틸 |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어린 시절 대부분 소녀라면 인형놀이를 하며 자랐을 거다. 여기서 '대부분'이라 말한 이유는 소녀라서 모두 인형놀이를 즐겼다기보다 애착인형을 통해 나를 투영한 대상과 판타지 세계관을 만들고 그 세계 속에 빠져 하루를 보냈을 이가 많았을 거란 추측에서다.
<바비>는 배우 출신으로 연출 데뷔작 <레이디 버드>와 <작은 아씨들>을 만든 그레타 거윅의 신작이다. 파트너인 노아 바움백 감독과 공동각본 작업했다. 그레타 거윅은 여성의 시각을 반영한 고전 <작은 아씨들>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1950년대 출시되어 70년 가까이 사랑받고 있는 인형, 바비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냈을지가 무척 궁금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더 놀라웠다. 화려하면서도 주체적인 여성 서사가 <바비> 안에 들어있었다. 여성과 인류, 세대를 아우르는 이야기. 양성평등을 중심으로 재미와 비주얼, 메시지까지 동시에 잡고 있다.
샤워 중이지만 물이 나오지 않고, 음료수를 마시지만 쏟아지지 않는 디테일이 살아있다. 휠체어를 탄 바비, 인어 바비, 빅 사이즈 바비 등 다양성을 챙겼다. 험하게 놀아서 머리카락이 잘리고 얼굴에 낙서가 되어 있거나, 관절이 꺾여 버린 바비, 2차 성징으로 신체가 커지는 바비, 임신한 바비 등이 등장함은 물론이다. 생산이 중단된 바비의 흑역사도 빼놓지 않고 짚어낸다.
▲ 영화 <바비> 스틸컷 |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영화는 정형화된 바비(마고 로비)가 인간 세상으로 나가 켄(라이언 고슬링)과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바비는 모든 것이 완벽한 바비랜드에서 행복하게 지내던 중 죽음을 생각하며 몸과 마음이 달라지고 있었다.
단순한 오류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인형다움(완벽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힐에 꼭 맞게 설정된 까치발이 평평해지고, 매끈했던 피부에 셀룰라이트가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자 입 냄새가 만연하고 적정한 온도였던 샤워기 물도 차갑게 느껴졌다. 평화롭던 바비랜드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끙끙 앓던 바비는 다리가 찢어지는 바비(케이트 맥키넌)를 찾아가 실마리를 얻어 세상으로 돌진한다. 뒤틀려버린 인형 세계를 되돌려 놓으려 한다. 하지만 인형이 현실 세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바비랜드로 돌아가지만, 그곳은 켄의 지배하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 영화 <바비> 스틸컷 |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마텔사의 바비인형은 전 세계 소녀를 겨냥해 인종, 직업, 세계관, 가치관을 다채롭게 구성해 인기를 얻었다. 세계관을 들여다보면 페미니즘과 휴머니즘 철학이 중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창립자 루스 핸들러는 회고록을 통해 "바비에 대한 내 철학은 소녀가 무엇이든 되고 싶다면 될 수 있음이다. 바비는 언제나 여성의 선택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오프닝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패러디는 돌봄에 한정된 놀이가 한 단계 발전하게 됨을 의미한다. 결말에 와서는 창립자 루스 핸들러를 만나 탄생 계기를 듣는다. 루스는 딸 바버라가 종이 인형에 여러 캐릭터를 부여해 노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성인 여성 인형을 만들어 냈다. 바비의 이름도 딸 바바라에서 따왔다. 50년대 아기 인형뿐이었던 소녀를 자유롭게 하고, 모성 신화에 가둔 가부장제의 한정적 역할을 뛰어넘게 도와주었다.
하지만 여성을 향한 이중잣대로 오랜 시간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여성은 예쁘고 성격도 좋고 똑똑하며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만들어냈다.
여성의 롤모델을 제시했던 원래 취지와 반대로 흘러가기도 했다. 비현실적인 외모로 일반 여성의 자존감을 떨어트린다는 이유에서다. 적나라한 성인 여성의 신체는 성상품화와 직결되었고, '바비 인형 같은' 수식어는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며 예쁜 틀 안에 여성을 옭아매었다.
▲ 영화 <바비> 스틸컷 |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바비는 현실을 경험하며 인간다움을 배운다. 변하지 않는 게 완벽하다는 생각을 버린다. 인생은 계속 변해서 가치 있다는 성찰이다. 죽기 마련인 유한성은 아름답고 자연스럽기에 계획한 대로,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멋지다고 위로한다.
바비의 액세서리에 불과했던 켄 마저 정체성을 찾으며 '켄다움'으로 우뚝 선다. 불편한 하이힐을 벗고 편안한 버켄스탁을 신는 상황과도 맞물린다. 아름다움은 외모로만 판단할 수 없다. 각자 다른 내면을 인정하고 단단함이 결실을 맺을 때 반짝이는 고유함이 빛난다. 당신은 당신 자체로 존엄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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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장혜령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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