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어린이와 놀이공간] 놀이터에도 사연이 있다
놀이터는 어떻게 생겨날까. 대개 놀이터는 학교나 공원 등 도시기반시설을 마련하거나, 택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공급된다. 택지 개발은 주택난 해소가 목적이다 보니 아이들의 놀이터는 고민 없이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추모나 기부, 지역 활성화 등 다소 낯선 이유로 놀이터가 탄생하기도 한다.
‘다이애나 메모리얼 플레이그라운드’(The Diana Memorial Playground)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놀이터 중 하나다. 런던의 중심부 켄싱턴 가든에 있다. 1997년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왕립공원관리기구(The Royal Parks)가 그녀의 이름을 따 조성했다.
다이애나를 추모한다는 슬픈 배경과 달리 놀이터는 동화 ‘피터 팬(Peter Pan)’을 모티브로 설계했다. 피터 팬의 작가 제임스 매튜 배리(1860~1937)가 놀이터가 설치된 켄싱턴 가든을 실제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피터 팬 이야기의 탄생 실화를 다룬 영화 ‘네버랜드를 찾아서’를 보면, 제임스 매튜 배리(조니 뎁)가 켄싱턴 가든에서 우연히 남편을 잃은 한 여인(케이트 윈슬렛)과 그녀의 네 아들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가 없던 제임스는 사내 아이들의 활달함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중 유난히 섬세한 영혼을 가진 피터에게서 영감을 얻어 그의 이름을 딴 피터 팬 이야기를 완성하게 된다.
놀이터에 들어서면 피터 팬에 나오는 거대한 나무 해적선이 실물 크기로 재현돼 있다. 아이들은 줄을 잡고 해적선에 올라 후크 선장이 된 듯 악당 표정을 하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 주변엔 모래와 바위, 물이 있어 배에 오르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도 즐겁게 놀 수 있다. 땅에 묻힌 보물 상자와 인디언 천막, 무서운 표정의 장승 등 피터 팬의 네버랜드(가상의 나라)를 만날 수 있는 요소가 놀이터 곳곳에 숨겨져 있다.
전체 놀이공간은 어른 키높이의 초목으로 구분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다른 영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놓칠 수 있어 불편하지만, 아이들에겐 새로운 놀이 공간을 발견하는 기쁨을 준다. 장애 아동을 위한 공간과 이들을 위한 음향 놀이시설도 있다. 놀이터는 무료이며, 시간대에 따라 줄을 서서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다이애나 메모리얼 플레이그라운드는 놀이터 디자인을 고민하는 어른들에게 동화도 모티브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선택지를 알려준다. 지역과 연관된 실제 사건이나 이미지를 재현하는 방식은 아이는 물론 시민들에게도 애정이 담긴 도심 공간으로 느껴지게 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지는 “탐사가 가능하고, 상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공간”이라고 평가했다. 한 해 100만명에 달하는 어린이와 보호자가 이 곳을 찾는다.
때로는 우연한 기부가 놀이터를 탄생시킨다.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 노자와에 있는 ‘뎃토히로바’ 플레이파크다. 철탑을 뜻하는 ‘뎃토’와 광장의 뜻하는 ‘히로바’를 합친 말이다. ‘철탑이 있는 곳’ 쯤으로 부를 수 있다.
뎃토히로바 부지에는 원래 고층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마을에 아파트가 건립되는 것을 반대한 어느 부호가 땅과 건물을 사들여 기부채납하면서 조성됐다. 처음부터 놀이터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사용처를 고민하던 야마가타 씨는 부촌이지만 인구가 고령화돼 활기가 사라진 마을에 아이들이 몰려드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야마가타 씨는 생을 달리했지만 그가 마을에 남긴 공간은 세타가야구 엄마와 아이들에게 실내공간이 있는 도심형 모험놀이터로 사랑받고 있다. 야마가타 씨 일가는 여전히 뎃토히로바 가까이 살고 있다.
놀이터는 지역에 활기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도 지어진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모험놀이터가 들어선 곳은 요트항이 있는 마리나 쇼어버드 공원이다. 오래전 버클리 시는 부둣가에 위락시설을 조성했지만 관광객이 적어 항 자체에 활력이 떨어지자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유도하기 위해 고물 놀이터를 조성했다. 이 놀이터에서는 누구나 나무판과 못, 망치, 톱, 페인트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나무와 관련한 모든 재료는 시민들로부터 기부를 받아 충당한다.
이곳은 1979년 개장 이후 45년간 미국의 아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매년 8만명이 찾는다. 민사 소송이 많아 모험놀이터가 몇 곳 없는 미국을 포함해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창조적인 놀이터, 세계 10대 놀이터로 꼽힌다.
영국 ‘텀블링베이 모험놀이터’도 낙후한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 고안한 사례다. 런던시는 2012년 올림픽이 끝난 후 주 경기장이 있던 런던 동부지역을 살기 좋은 신도시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45만㎡에 달하는 올림픽 공원의 북쪽에 텀블링베이 놀이터를 조성했다. 재미있는 놀이터가 들어섰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 놀이터는 15년 전 쓰레기 처리장이었던 런던 동부지역의 변화를 알리고 새로운 거주민을 유인하는 대표 시설이 되고 있다.
글·사진=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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